서평 한국 노동계급의 형성
본 책은 한국 노동계급의 형성과 노동운동의 역사, 특히 원인을 필연적이었다라는 가정하에분석하고 있다. 물론 본 글에 들어감에 있어 주제를 이와 같이 맞추어 보아야 하는 것이 당연하였지만, 사실 내가 책을 읽어 내려감에 있어서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던 부분은, 과연 노동운동이 그리 바람직한 행위인가에 대해 알아보고 싶다.
지금까지 살면서 수많은 책과 자타공인된 지성인들은 노동운동에 대한 정의성에 대해서 당연한 듯이 말하는 것을 목격하였고 그렇게 교육받았다. 하지만, 머릿속에선 늘 의구심이 지워지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과연, 노동운동은 정당화 되어 마땅한 개념인 것인가? 어쩌면 이것은 사회적 통념에 대한 단순한 반항심에서 야기된 잡념일 가능성도 있지만, 또한 살펴보고 싶은 것이 사실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대부분의 언론활동은 좌파 쪽에 가깝다. 기성세대까지는 모르겠으나 최신을 살아가고 있는 젊은이의 한사람으로서 접하게 되는 미디어들은 대부분이 기득세력을 대변하기보다는 사회주의적 성격을 띄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고 본다. 물론 어느 시대나 언론은 비 기득권의 편에 서긴 해왔지만 대통령까지도 극단적으로 야유를 받는 이 시대는 그 정점이 아닐까 싶다.
이 세력의 성장을 대한민국 건설이후 최초의 대규모 민중시위인 4.19혁명에서부터 찾을 법도 하지만 책에서 기술하듯이 개개인의 지위신장 및 생활 질의 향상을 위한 운동은 80년대 노동운동으로 부터 시작되었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이 노동운동이란 개념과 함께 약간은 반자본주의적인 성격의 세력의 성장은 사회 전체에 있어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가에 대해 고민해보는 것은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그렇다면 노동운동은 무엇을 위하여 행해지는 것일까? 그 해답은 간단하다. 자본가에 의한 착취에 대항하여 노동자들이 펼치는 극단적 실력행사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과연 많은 사회주의자들이 주장하듯 노동운동이 착취에 견디다 못한 최소한의 생존권 보장을 위한 절실한 행위로만 볼 수 있을까? 나는 노동운동에 대한 사회 통념이 매우 편협하고 이기적인 시각으로 미화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생물은 자신의 생존의 문제에 대해 매우 진지한 태도를 보인다. 그것은 때론 이기적인 형태로 나타나는데 자본가의 소위 말하는 착취를 그 예로 들 수 있으며 인간은 이기적이다는 이론은 그것을 정당화시켜주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 역시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 그들도 생물이며, 그 중 동물인데다가 가장 이기적이라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들 또한 생존권 확보의 문제선상에서는 윤택하고 부유한 삶을 원할 테고 그 것을 위한 싸움은 끊이지 않고 일어날 것이라는 얘기다.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철도파업이 이 논리의 좋은 예가 되지 않을까 싶다. 아이러니하게도 사회주의, 즉 사회 평등을 외치는 자가 실제로는 매우 자유주의적인 이데올로기를 위하여 투쟁하는 형태가 되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 있어 조직이라는 개념의 최상위 단어는 국가라고 한다. 정치, 경제, 외교 등의 역할을 담당하며 개개인의 권리와 이익을 보장해줄 수 있는 조직인 국가는 명실 공히 사회라는 공동체의 최고봉이다. 따라서 사회운동의 사회에 대한 영향 및 결과는 국가전체의 변화로 살펴 볼 수 있다고 간주하고 사회운동과 국가전체에 대해 생각해보려 한다.
결과론적으로 말하자면, 노동운동 등은 매우 개인주의적인 행위로서 개인의 목적을 위해 계약적으로 움직인 결과로 밖에는 인식하기가 힘들다. 물론 그 여파가 사회 전체의 개인들에게 미치기도 하였지만, 결국 그 또한 개인의 입장에서 이득이 된 것이었을 뿐, 사회적으로 플러스 요인은 없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물론 노동운동을 사회운동으로 확장시켜 고려하였을 경우 민주주의적 이상 실현에 한 몫을 했다고 말할 수 있으나, 과연 태초 노동운동의 저의가 그곳에 있었으리라는 것은 억측일 가능성이 있다. 한국의 경제는 노동운동이 활발히 진행된 80년대 이후 사실상 성장을 멈추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3대호황으로 전두환 집권시절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이루었으나, 그것은 유가하락, 올림픽 등의 외부요소의 작용이었을 뿐, 국가 자체가 성장성을 갖추었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정치적으로도 마찬가지이다. 군사정권과 노동에게 통제적이었던 시장은 전혀 구조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군사정권은 반독재 체제를 유지하였고, 시장체계는 IMF시절까지 통제적으로 유지되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노동운동 자체는 사회의 변모를 꾀하였을지 모르겠으나 변화는 없었으며 오히려 노사 간의 갈등을 초래하면서 아쉽게도 국가 구성원의 결속력을 약화시켰다는 것이 나의 의견이다.
노동운동은 애초에는 처우개선 및 인간다운 삶의 영위에 있어 곤란함을 갖던 빈곤층 노동자들이 단합하여 투쟁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 세끼를 충분히 챙기고 이제 세계 정상급의 생활환경을 구축된 현 시점에서도 무엇을 위하여 그들은 투쟁하는가? 도리어 식당에서 월 100만원도 안되는 저임금으로 힘들게 살아가는 여성노동자들 및 가계곤란자들은 투쟁조차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최초의 노동운동의 의미는 퇴색되고 변질되었다고 생각한다. 일 년이 멀다하고 파업을 강행하는 지하철 등의 국가 기관 및 자동차 공장등의 일반기업은 자주 시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어째서 그들은 충분한 삶의 질이 보장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파업 등의 극단적인 방법으로 의사표시를 하고 있다. 과연 그들은 얻을 것을 얻었을지 몰라도 그것은 과연 사회전체에 이로운 일이었을까? 한시바삐 움직이는 세계의 경제는 이러한 주춤함을 봐주고 있지 않을 것이다. 마치 추격전과도 같은 현대 시대에 며칠에서 몇 달간의 공백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타격일 수도 있다. 국가경쟁력의 약화를 굳이 스스로 초래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