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문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교수님께 처음으로 책 제목을 들었을 때 많이 어색하지 않고 익숙하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시절 실제로 제목과 같이 좋은 선생님들 밑에서 배웠었기 때문일까? 라고 생각해 보았지만 수업이 끝나고 도서관에서 책표지를 보고는 그만 미소를 지어버렸다. 과거 내가 잘되길 바라던 마음으로 어머니께서 빌려오셨던 책 중에 하나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과거의 일기장을 보니까 내가 중3때 썼던 독후감이 있는 것이 아닌가. 재미있는 마음에 책을 가볍게 읽었다.
이 책의 배경은 아직 더럽기 만한 처리장에 살며 히메마츠 초등학교 다니는 어린아이들에게서 생기는 이야기들이다. 그리고 그곳에는 부임한지 얼마 안 되어 가녀리고 예쁜 고다니 선생님과 말이 적고 더러워서 아이들이 주위에 같이 있지 않던 데쓰조, 이 두 사람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데쓰조는 내성적이 아이이다. 부모님은 돌아가시고 할아버지와 단둘이 처리장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 처리장에 살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었다. 그 이유는 그곳은 너무 더럽다며 사람들이 기피하는 ‘파리’ 라는 존재가 많이 있는데 그것을 데쓰조가 애지중지 키웠기 때문이다. 이것 때문에 놀림도 받고 학교에서도 위생상의 문제로 데쓰조를 나무랐다. 하지만 데쓰조에게는 키울 수밖에 없었다. 할아버지의 말을 인용하자면 ‘데쓰조가 파리를 기르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산으로 데려가면 데쓰조는 곤충을 기를 겁니다. 강으로 데려가면 물고기를 기르겠지요. 하지만 나는 아무데도 못 데려갑니다. 이 녀석은 쓰레기가 모이는 여기밖에 모르고, 여기는 구더기나 하루살이, 그리고 기껏해야 파리밖에는 없는 뎁니다.’ 이러한 이유처럼 데쓰조는 파리를 키울 수밖에 없었다. 데쓰조에게 있어서 파리는 더러운 존재가 아닌 우리가 키우는 강아지, 고양이처럼 평범한 애완동물로 보이는 것이다. 이렇듯 이상한 데쓰조를 고다니 선생님은 이해해 나갔다. 물론 그 과정에 있어 데쓰조가 선생님을 문다던지, 할퀸다던지 등의 시련을 겪어가면서 데쓰조와 교감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마음을 연 데쓰조와 선생님을 파리도감을 보며 파리를 외우거나하는 사소한 일들을 공유하면서 돈독해졌다. 하지만 이건 그냥 흥미위주가 아닌 평소 수업에는 저조한 참여를 보여 공부에 소홀한 데쓰조를 파리도감을 같이 보면서 가르친 것인 것이다. 그리고 고다니 선생님 덕분에 파리에 대한 또렷한 지식이 없던 데쓰조는 공부이외의 파리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을 하나하나 쌓아 갔다. 그리고 이런 데쓰조의 지식은 쓸모없는 게 아니었다. 햄공장에서 청결을 최대한 유지하고 원인을 찾으려했는데도 파리가 꼬여 고생한다며 데쓰조에게 파리퇴치 의뢰를 했는데 데쓰조는 단박에 이 원인을 찾아 사건을 해결한 것이다. 이것은 다른 사람이었으면 간단히 해결 못 했을 것이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파리의 특성을 잘 알고 있던 데쓰조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좋게만 푸릴 것 같았던 데쓰조와 처리장 아이들에게 않 좋은 일이 닥쳐버렸다. 그것은 바로 처리장의 이전이었다. 기존의 약속과는 다르게 주민들에게 더 않 좋은 대책을 제시한 것이다. 그래서 처리장 주민들을 대대적으로 반발을 하였다. 더불어 처리장 이전 때문에 가장 피해를 보게 되게는 것이 어린 아이들이다. 강제적으로 이전을 하게 되면 학교를 옮기거나 멀리서 차에 치일 위험을 감수하고 다녀야 했기 때문에 많이 불편해지는 것이다. 게다가 한창 좋은 선생님과 교감을 통해 발전하고 있던 기회를 박탈당하게 되는 상황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편에 서서 시위에 참가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열성적이고 진심어린 선생님들을 위해 주민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서명운동을 하였다. 그리고 이것을 제출하러가며 내용이 끝난다.
옛날에 이 책을 보았을 때의 기억으론 이 책은 결국 주민들이 승리하여 아이들이 계속 그 학교에 다니게 되는 것으로 기억했다. 하지만 책을 보면 그렇게 된 것이 아닌 그렇게 될 것같은 분위기를 암시하는 밝은 모습의 아다치 선생님과 아이들에게서 나타나며 끝을 맺었다. 평소 읽던 동화책에서 ‘그들은 행복하게 되었습니다. 식의 끝맺음이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더 행복해보였다. 실제로 저렇게 끝났다 해도 신데렐라가 왕자와 이혼했을지도 모르는 게 아닌가? 차라리 확실히 정의 되지 않아 개방적인 결론을 생각할 수 있게 한 이 결말이 지금 보니 더 맘에 들게 다가왔다.
또한 이 책은 교사가 되는 사람에게 필요할 것 같다. 아이들 모두 자신만의 보석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꼭 교사와 학생에 국한된 것이 아닌 전체 사회에서도 겉모습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닌 총체적인 그의 면모를 보고 판단해야한다는 것도 알려주는 것 같다. 왜냐하면 고다니 선생님이 데쓰조의 일방적인 면모만 보고는 그냥 더럽고 내성적인 아이로 정의 지었다면 데쓰조의 재능을 묻혔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리고 마치 헬렌 켈러와 설리번을 보는 느낌도 들었다. 마냥 재능을 발견한데에 그치지 않고 그 재능을 꾸준히 개발해주고 그런 아이를 이해해주는 모습이 닮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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