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패스트 푸드의 제국
노란 더블 아치, 빨간색으로 쓴 버거 킹이란 글씨.. 굳이 패스트푸드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설명을 듣다보면 누구나 떠오르는 그런 이미지가 있을 것이다. 혹 떠오르지 않는다면 빨간 머리에 빨간 코, 노란 옷을 입은 우스꽝 스러운 광대, 하얗게 바랜 머리에 인자해 보이는 웃음에 넉넉한 몸매의 할아버지, 막 동화속에서 튀어나온듯한 말괄량이 삐삐를 연상케하는 케릭터는 어떠한가? 주위의 어린이들에게 같은 질문을 던진다면 답은 더 명쾌하게 나오리라 예상한다. 아이들에게 패스트푸드는 이미 맛있고, 즐겁고, 놀이거리인 장난감까지 제공해주는 이상적인 장소로 여겨지기 일쑤다. 이처럼 패스트 푸드는 우리 생활속에 친근함을 가진 좋은 식품으로써 각인되어 있다. 또한 우리는 저 마크는 친근한 케릭터만 보더라도 머릿속에서 어렵지 않게 그 프랜차이즈의 패스트 푸드를 떠올리게 된다. 더 무서운것은 우리 머릿속에서 사고의 연쇄작용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패스트 푸드를 떠올리는 순간 그 음식은 믿을 수 있고, 시간을 절약할 수 있으며 다른 음식에 비해 저렴하기까지 하다고 말이다.
멕도날드,버거킹,웬디스,하디스 미국을 대표하는 이런 패스트 푸드 프랜차이즈들이 전 세계에 수백 수천이 넘는 매장을 거느리고 수십만의 노동자를 고용한 그들은 정말 바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구세주와 같은 존재들일까? 멕도날드사가 1968년 1000여개 남짓의 매장에서 이제 전세계 117개국에 2만 8000여개의 매장을 거느린 거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것은 우연일까? K모사가 자랑하는 11가지 양념이 곁들여진 치킨의 조리 비법은 꼭 영업상의 이유로만 비밀일까? 의문은 꼬리를 물고 이어지기 마련이다. 2000년들어 미국인들이 패스트 푸드를 통해 소비한 비용은 약 1100억 달러에 달하며 이는 미국인들은 평범한 날에도 성인의 4분의 1이 패스트 푸드 레스토랑을 찾는다는 얘기이다. 이를 일주일로 환산하면 이들은 일주일 동안 햄버거 세 개와 프렌치 프라이 네 개를 먹는다는 뜻이다. 더욱이 이런 현상은 패스트 푸드의 본 고장인 미국에서 가장 심하긴 하지만 과거 냉전시대에 미국의 가장 큰 적이었던 동유럽의 공산주의 국가들의 작은 도시들부터 동양으로 넘어와 역시 공산주의를 표방해 미국의 큰 주적중 하나인 중국의 도시들에 이르기까지.. 심지어 관광업을 주업으로 삼는 태평양의 작은 섬나라들에 이르기까지 패스트푸드점이 들어서지 않은곳이 없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느낀것은 그들의 우스꽝스런 삐에로 뒤에 얼마나 큰 비밀이 있는것인지 였다.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패스트 푸드가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서 말이다. 왜 그들이 제국주의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지에 대해서 책을 읽으며 두가지 정도의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하나는 역사적 배경,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생물학 및 도덕적 문제였다.
첫째, 패스트 푸드 산업이 그렇게 단기간에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고, 빠른 성장을 기록한 요인은 무엇일까? 단순히 그들이 광고하는데로 그 음식이 저렴하고, 영양의 균형이 맞으며 시간이 부족한 현대인의 취향에 맞아서일까? 그들이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 말을 주장하고 있다고 얘기하고 싶은것은 아니다. 패스트 푸드는 언뜩 보기에도 빨리 먹을 수 있고, 다양한 내용물로 인해 영양가를 얻을 수 있을거 가다. 가격적인 면에서는 점점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지만 나머지면에서는 여전히 충분히 매력적이다. 하지만, 이런 요인들만으로는 여태까지의 기록적인 성장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 그렇다면 우린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패스트 푸드 산업은 엄청난 노동 착취를 하고 있다. 법정 노동 시간을 어기는건 예사고 어린 학생들을 고용해 그들에게 최저 임금을 주지 않는일도 허다하다. 몇 달을 근무한 직장에서 일방적으로 해고 당하는 일이 부지기수이며 그들이 퇴직금을 받는것도 아니다. 또한 노동중에 일어나 사고와 재해에도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거대 기업의 힘을 보여주어 무마시키려 한다. 자유시장 제도의 수호자처럼 미국을 대표해서 전 세계로 퍼진 이 세력들은 뒤로는 의회나 백악관과 지극히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또한 패스트 푸드는 산업화라는 하늘이 주신 기회조차 놓치지 않았다. 산업사회가 되면서 현대인들은 예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일에 투자하게 되었다. 거기다 수많은 여성들이 직장을 구해서 일하게 되었고 가정에서 여성의 짐을 덜어줄 수 있을만한 수많은 산업이 발전해가는 상황에서 남겨진 아이들이나 시간이 부족한 성인들을 위해 간편한 식사를 제공하는 이 새로운 먹거리에 현대인들이 열광하게 된것은 그리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이렇게 패스트 푸드는 이미 미국의 한 음식의 차원을 넘어서서 세계화, 전지구적인 자본주의화, 그리고 미국화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가 되어있는 것이다. 이들의 발전사는 미국이 그렇게나 외치는 팍스 아메리카나나 아메리칸 드림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는 것이다. 미국 일리노이주에 있는 멕도날드 본사에 있다는 일반적인 미국 국기가 아닌 멕도날드의 노란 더블 아치가 그려진 이상한 미국 국기는 바로 그러한 관점을 바탕에 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바로 생물학 및 도덕적 문제이다. 마치 예전에 해가지지 않는 나라라던 대영제국이 신사의 이미지를 내걸고 저질렀던 수많은 만행들처럼 FDA로 대변되는 미국 식재료 및 음식의 청결성이 그리 도덕적이지도 깨끗하지도 않다는 점이다. 시장경제를 표방하는 나라에서는 무조건 조금이라도 더 싼 제품이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건 삼척도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지만 바로 내가 오늘 저녁에 먹을 것이 그러한 식품이더라도 아무 거리낌없이 먹을 수 있을까? 책에서 묘사되는 소의 도축장면은 사진을 보지 않더라도 글을 읽으며 역겨움이 느껴질정도로 강렬했다. 감정을 배제하고 원시시대부터 행해져왔던 그런 일상을 진행하듯이 소 한 마리를 죽이고 자르고 걸어서 옮기는 그들의 모습에선 소를 도축하는 공정이 개체의 규격화가 이루어지지 않아 자동화, 기계화가 어렵다지만 닭을 도축하는 기계화 그것 이상으로 기계적으로 느껴지기 충분했다. ‘도살 담당’ 노동자는 하루 8시간 반동안 소의 목을 찌르는 일을 10초에 한번씩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었다. 바닥에 피가 고여 발목까지 잠기는 그런 곳에서 과연 인간성이 발휘될 수 있을까? 타격담당, 도살담당, 족쇄 담당, 관절 절단 담당, 등뼈담당등 일일이 다 열거하기도 힘든 수많은 분업화의 명함들은 이 작업들이 얼마나 원시적이고 야만적인지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더욱이 컨베이어 벨트나 가죽 벗기는 기계등 수많은 자동화가 이루어졌지만 가장 수작업이 많이 가는 작업이 바로 소 도축 작업이다. 유비쿼터스 사회가 눈앞에 다가왔다고 연일 매체에서 보여주는 이 시점에서 소 도축방법은 지난 100년간 거의 발전없이 이런 비 윤리적이고 비 위생적인 방법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이다. 또한 매일 8시간 반동안 반복되는 동작 ( 하루에 1만회정도 ) 에 시달리는 소 도축 노동자들은 미국 노동자들의 반복 외상 확률 평균보다 35배나 더한 위험에 노출 되 있었다. 근무를 마치고서도 집에 돌아가 마치 뜨개질을 하듯 칼을 가는 책속의 한 노동자의 모습에서 이미 소들이 생명으로써 대우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 노동자( 주로 미국에 이민와서 특별한 기술을 갖추지 못한 이주 노동자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 들조차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받지 못하는 인상이었다.
어떻게 하면 이런 현상들이 조금이나마 해소 될 수 있을까? 채식주의자? 그런 극단적인 방법을 생각해내지 않더라도 우린 이미 훌륭한 해결책을 알고 있다. 바로 슬로푸드이다. 우리 나라에서 슬로푸드는 보통 ‘천천히 먹기’나 ‘유기농’ 정도의 의미로 이해되어왔다. 과연 그게 슬로 푸드의 진정한 의미일까? 슬로푸드의 진정한 의미는 단순히 유기농에서 그치지 않는다. ‘좋고, 깨끗하고, 공정한’ 먹을거리를 먹자는 운동이다. ‘좋음’은 감각적으로 맛있어야 함을 뜻하고, ‘깨끗함’은 생산 과정이 환경에 유해를 끼치지 않음을 뜻한다. ‘공정함’은 생산 유통이 사회 정의에 맞아서 윤리적으로 문제를 일으키지 않음을 뜻한다. 이러한 세가지가 충족되어야 비로서 ‘슬로푸드’가 되는 것이다. 의미를 알고나면 단순한 유기농 식재료는 슬로푸드의 극히 일부분을 채운것에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한국에서는 크게 알져지지 않았지만 1986년 맥도널드에 반대 운동을 시작하며 1987년 ‘슬로푸드 선언’을 발표할 정도로 성장했고, 이미 그 전에도 존재했던 역사적으로도 급조된 대안이 아닌것이다. 한때 우리나라에서 ‘신토불이’ 운동이 강하게 불어닥친적이 있는데 슬로푸드는 바로 이 신토불이 정신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 가장 좋은 먹을거리는 앞에서 나온 조건을 충족시킨 우리땅에서 난 우리 먹을거리라는 말인 것이다. 모두가 더 빨라지길 원하고, 간편하걸 찾으며 그릇된 외국산 먹을거리가 들어옴을 온 국민이 반대하고 행동으로 보여준 이 시점에 ‘슬로푸드 운동’은 정말 좋은 대안이 될 수 있고, 온 국민에게 널리 알려도 좋을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가끔은 느림의 미학이 주는 생활이 잃어만 가는 우리의 인간성을 되찾아 줄 것이다. 그저 잘 꾸며진 매장에 들어가 줄을 서서 빨리 나오는 음식을 먹을때가 아니라 그 음식의 먹을거리가 어디에서왔고, 어떻게 만들어지며 우리 사회와 지구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생각해보고 먹을 시대가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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