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 삶과 사람
인간은 완벽함에 목말라 있고 그것을 목표로 하여 살아가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아주 먼 옛날부터 만물에 대한 최종 근원, 완전지(知), 최고선, 완벽한 아름다움 등을 세대를 거듭해 추구해 왔다. 기술과 과학의 발전을 통해 인간은 조금 더 정교하게, 가까이 목표에 다가갔다고 생각했으나, 그러한 발전이 이어질수록 인간은 완전할 수 없다는 것을 조금 더 명확히 알게 되었다. 즉 기술·과학의 발전이 오차를 줄일 수는 있겠지만 오차를 없앨 수는 없다는 것이 조금 더 자세히 증명되어 온 것이다. 어떠한 발전을 통해서도 완전함에 다다를 수 없는, 불완전할 수 밖에 없는 인간에게, 그리고 하나의 인간인 나에게 있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봤다.
아름다움이란 존재하는 것일까? 아름다움이 없다고는 하지 못 할 것이다. 포착하기는 쉽지 않지만, 우린 어떤 대상이나 상황에 대해 아름답다는 표현을 쓸 수 있고, 그러한 표현이 공통적으로 지시하고 의미하는 게 있다면 아름다움은 없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아름다움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내가 언제 아름답다는 말을 주로 쓰는지에 대해 고민해 봤다. 내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이란 그렇게 특별한 것이 아니다. 우리 주변에서 피는 꽃이나 손을 잡고 길을 걷는 노부부, 도시의 공원에서 볼 수 있는 분수 등 현대를 살고 있는 누구나 다가갈 수 있는 그런 소박한 것들을 나는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아직까지 세계적 ·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지니고 있는 몇몇 미술 작품이나 조각상을 보고 쉽게 아름답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거의 없다. 그래서 여느 명작 또는 걸작이라 불 리는 것들을 보고 나서도 이게 왜 유명한지, 어떻게 명작이나 걸작이 되었는지에 대해 찾아보고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이고 이유에 대해 이해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면 아름다움이란 이런 식의 학습으로 이뤄지는 어떤 것일까? 흔히 ‘아는 만큼 보인다’라고들 하지만 나는 아름다움을 학적 체계와 지식의 추구를 통해서 배운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대상에 대해 느낀 아름다움을 체계화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을 가지지 않았던 선조들이나 우리가 지식이라고 부르는 것을 가지지 못 했던 야만인들도 그들의 방식대로 미를 추구했고 그들의 방식이 역사적으로 지니는 의미나 가치가 있듯이 말이다.
그리고 우리가 쓰는 아름다움이란 무엇인지, 아름다움은 어떻게 알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다 우리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아름다움의 특징, 아름다움의 본질이란 존재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흔히 이전의 철학자들은 어떤 것에 대한 본질, 그 근원을 찾기 위해 수없이 많은 노력을 해 왔다. 그러나 나는 아름다움의 본질이 아름다움을 보여주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아름다움은 전통의 철학자들이 근원을 찾고자 했던 방식으로 추구할 것이 아니다.
이렇게 정리해 본 아름다움에 대한 나의 생각을 칸트의 미학을 통해 전개해 보도록 하겠다. 칸트가 미학에서 아름다움을 정의내리고자 한 것을 네 가지로 요약해 봤다.
① 아름다운 것은 보편적으로 기분 좋게 하는 것 『소크라테스에서 포스트모더니즘까지』, 461쪽
② 취미는 대상을 평가하는 기능이거나 어떤 관심과 무관하게 기쁨이나 혐오를 수단으로 하는 재현의 한 가지 유형이다. 그러한 기쁨의 대상을 우리는 아름답다고 부른다. 『소크라테스에서 포스트모더니즘까지』, 4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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