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적으로 생각하기』
사회화는 우리의 삶에서 끝없이 일어난다. 변화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며, 다시 생겨나기도 한다. 그래서 끝없이 일어나는 사회화에 맞춰서 우리는 그에 적합한 새로운 규범을 요구한다. 그러나 그렇게 재적응을 하는 동안에 다른 문제에 직면하게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나는 우리가 새로운 규범을 얘기할 때 자신의 자유가 최대한 보장받는 쪽으로 그 이야기의 방향을 이끌어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자유가 타인의 자유를 속박시키는 희생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고안해내야 한다. 내가 생각한 방법 중 한 가지는 서로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하여 절충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일방적인 의사소통이 아니라 쌍방향적인 의사소통을 하게 되면 한 사람의 자유가 다른 사람의 자유를 속박하는 모순이 조금이나마 줄어들게 되지 않을까. 아니면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 만약 자신이 행동의 주체이던 입장에서 간섭이나 속박의 대상이 된다면 누구라도 싫을 것이다. 옛날, 롤스의 정의에서 쓰였던 것처럼 원초적인 입장에서, 무지의 베일에 휩싸인 채로 생각을 하게 된다면 공정한 판단을 내릴 수 있게 되리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으면서 다른 부분보다 좀 더 흥미를 갖고 지켜본 부분이 있었다. 예전 강의 시간에 윤봉길 의사에 관한 얘기가 나온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입장에서는 혁명의 선두주자였던 그가, 다른 나라의 입장에서는 테러리스트가 되는가.’에 관련된 질문은 고등학교 때부터 내 안에서 생각할 만한 건더기를 주는 주제였다. 이 책에서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편견’에서 찾는다. 편견이란, 적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인정하길 거부하고 현실적이고 가상적인 악덕을 확대하려는 의도이다. 우리에게는 그 당시 ‘광복’이라는 동일한 목표가 있었다. 그 당시에는 광복이란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절실한 꿈이었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좀 더 외집단을 향한 적개심을 가질 필요가 있었고,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통합의 이미지를 만들어야 했다. 외집단을 더 배척할수록 운동가들은 목표를 위해 뭉쳤을 것이고, 외집단을 경계했을 것이다. 조국을 사랑한 선량한 운동가의 희생이 다른 운동가들의 명분을 고취시켜 주었을 것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을 만약 외집단이 했다면 또 말이 달라진다. 정당화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상황에 따라서, 또는 입장에 따라서 똑같은 행동이 다르게 판단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목표를 위해서 생명을 희생한 헌신적인 운동가가 일본의 입장에서는 테러리스트가 되는 것이다. 주관적인 생각이 될 수 있는 편견이 위협의 요인이 되기도 하고 우리의 일상적인 선을 규정지을 수도 있다니 굉장할 따름이다.
또 다른 흥미로운 부분도 있었다. ‘가치, 권력 그리고 행위’에 관련된 내용이었다. 모든 사람들은 매우 다양한 자유의 정도를 갖는다. 그리고 그 자유의 정도는 사회 불평등을 의미하며 사회 불평등은 권력을 가진 정도에 따라 나뉜다. 위에서 말했다시피 한 사람의 자율성은 다른 사람이 타율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었음을 뜻할 수도 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행위가 내가 목표를 달성하는데 시도하는 행위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하면서 타자와 상황을 이해해 나가고 정당화하기도 하며 그러는 동안에 가치의 우선순위가 변하기도 한다. 자신의 우선순위가 변했다는 것은 본인의 합리화에 따라서 가치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물론 책임이 따른다. 하지만 이 책임이 따르지 않는 경우도 있다. 바로 ‘합리적 정당성’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권력자의 뜻에 복종만 했을 뿐”이라며 명령에 따른 선택이었음을 강조했다. 일전에 제주 4.3사건과 관련한 웹툰을 본 적이 있었다. 너무 끔찍해서 살아남으신 분들의 인터뷰 등을 찾아보았던 기억도 난다. 무차별적으로 제주도민들을 살해한 군인들의 행동이 명령에 따른 선택이어서 면죄부를 받을 수 있는 것이었다면 억울하게 죽어야만 했던 제주도민의 한은 누가 풀어줄 것인가. 행위자들이 행위의 책임을 갖지만 자유의 책임에서는 벗어난다는 말. 이 얼마나 무책임한 말인가. 그렇게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지 말고 그들의 도덕적 판단이 과연 옳았던 것인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종교와 관련된 것도 사회학과 관련이 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우리는 언제나 수많은 선택지와 마주해 있고, 그 선택지 중 몇 가지를 택하는 것은 자유롭다. 그러나 그 선택에 대한 확신은 늘 불확실하다. 그래서 우리는 그 불확실함을 종교에 대한 맹신으로써 극복하려 한다. 종교라는 것 자체가 믿음을 기반으로 하는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우리는 오른쪽 갈림길과 왼쪽 갈림길에서 고민할 때 오른쪽 갈림길을 선택하고는 ‘이 길이 과연 맞는 길인가?’하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종교적인 생각을 함으로써 생각을 새롭게 돌리면 그 불안감을 완화시킬 수 있다. 시험 전 날이나 면접 전 날 같이 중요한 날이 며칠 안 남은 시점에서 신에게 기도를 올리는 등도 생각을 전환함으로서 초조한 마음을 달래기 위한 수단으로 볼 수 있다. 나도 종종 큰일을 앞에 두고 조급해질 때면 신에게 기도를 올리는 식으로 마음을 달래기도 하고, 불안감을 없애고자 노력하기도 한다. 자기합리화의 일종이라고 생각하지만 누군가가 들어준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해진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다. 종교에 속한 사람들은 법적으로 강제된 계약적인 의무 없이 소속감을 가지기도 하는데 이 소속감은 공동체가 커질수록 더 커진다. 점점 더 끈적해지고 민감해지는 것이다. 어쩌면 종교전쟁은 이 소속감이 너무 커져버린 탓에 일어난 것은 아닐까, 생각되기도 한다.
사회학은 습관적인 것, 일상적인 것에 대한 간섭에서 시작되는 것이지만 사회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익숙한 것을 익숙지 않게 보기 시작하는 것이라고 이 책에서는 말한다. 익숙한 것은 우리의 사고회로를 마비시키고 일상적인 구속을 당연시 받아들이게 하기 때문이다. 나는 익숙한 것이지만 그것에 대한 고정된 생각을 버리고 세상을 유동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는 것이 『사회학적으로 생각하기』의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서 우리는 일상적인 우리의 행동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위치와 조건에 맞는 행동에서 나오는 가능성에 초점을 두어서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알고 적용하는 지식에 미래를 더함으로써 재가공 하는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
사회학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이해를 중점으로 둔다. 그 이해는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관용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그래서 사회학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나 자신과 타자,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을 더 잘 알게 도와준다. 조금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줘서 오히려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다. 이 책을 사회학이 뭔지 잘 모르는 입문자들이 읽어서 좀 더 사회학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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