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 품(品)에 대한 얼뜨기 생각
품(品)의 형이상학적 측면
어떻게 탈주선을 그릴까? 그것은 이미-항상 한계점을 가지고 있지만, 게임이나 놀이의 의미로써 유희의 탈주선이다. 고통의 유희, 내 생각의 한계를 확인하는 작업이다. 그런데 이 번 놀이에서는 사방으로 뛰는 생각이 항상 경계선에 부딪힌다. 다른 마당에서 놀다가도 품(品)으로 돌아오는 과정이다. 말뚝(品)에 메어진 소, 줄 만큼만의 영역을 맴도는 과정의 연속이다.
자전에서 품(品)의 자원(字源) 설명은 회의(會意), 기물(器物)를 본뜬 ‘구(口)’셋을 합쳐서, 저마다의 개성을 지닌 물건의 뜻을 나타내고, 국어사전에서는 품격(品格)과 같은 뜻으로 ‘사람된 바탕과 타고난 성품’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품(品)의 성격을 ‘깊이’로 이해하면 어떨까? “그 사람은 깊이가 있어, 혹은 그 작품은 깊이가 느껴져”라는 식으로 평한다면 그것 또한 품(品)의 다른 이름이다.
, 등의 저자인(는 영화로 만들어 졌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파트리크 쥐스킨트/김인순 옮김, 『깊이에의 강요』, 열린책들, 2007.
라는 아주 짧은 단편 소설이 있다. 내용을 대략적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소묘를 뛰어나가 잘 그리는 젊은 여인이 초대 전시회에서 어느 평론가에게 ‘그녀의 작품에는 깊이가 없다’라는 말은 듣는다. 그녀는 그 말을 곧 잊어버렸지만 이틀 후, 신문에 그 평론가의 비평이 그대로 실렸다. 그녀는 작품의 깊이를 찾기 위해 미술 관련 이론서를 탐독하거나, 서점에서 가장 깊이 있는 책을 점원에게 요구하여 비트겐슈타인의 책을 받아 들었지만 어찌할 수 없었다. 깊이를 찾는데 실패했다. 그녀는 상속 재산으로 나폴리로 여행을 떠났고 돈이 떨어지자, 139m 높이의 텔레비전 방송탑에서 뛰어 내려 자살한다.
결국 그녀는 자신에서나 작품에서 ‘깊이’를 찾지 못하고 자살에 이른다. 그녀는 작품에서의 깊이를 자신에게서 찾았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작품과 인품의 연관성을 볼 수도 있다.
논어에는 “質(본바탕)이 文(아름다운 외관)을 이기면 촌스럽고, 文이 質을 이기면 史(겉치레만 잘함)하니, 文과 質이 적절히 배합된 뒤에야 군자이다.” 雍也 第六 “子曰 質勝文則野 文勝質則史 文質 彬彬然後 君子”
成百曉 譯註, 『論語集註』, 傳統文化硏究會, 2005. p.174.
라는 구절이 있다. 이것은 인품(人品)의 형성에 관한 구절로 볼 수도 있다. 야성적인 바탕과 교육이 적절히 잘 어울려야 좋은 인품을 이룰 수 있다.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