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와 극영화의 상관성에 대하여
다큐멘터리는 한국어로 번역하면 기록물이라는 뜻이다. 즉 다큐멘터리는 카메라로 기록된 어떤 현실의 일부분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그 일부분은 아마도 연출자가 보여주고자 하는 세계의 요약일 것이다. 가령 티티컷 폴리 같은 영화를 떠올려 보자. 티티컷 폴리는 단순히 정신병원에서 일어나는 학대를 다루는 것이 아니다. 물론 드러나기는 그렇다. 오직 정신병원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루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출자가 그러한 현실을 포착한 것은 단순히 정신병원의 학대를 고발하고픈 정의감이라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그것은 정신병원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그 당시 현실세계의 상황을 정확하게 반영하기 때문이라고 판단한 연출자의 의도에 기인한다. (억압, 감시, 소수자를 대하는 다수의 위선적 태도.. 는 정신병원 바깥에서도 일어나는 일들이다. 정신병원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상황들은 그 당시 사회의 감춰진 현실을 정확히 극적으로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다큐멘터리는 정확히 말하면 극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다시 부족한 필자가 다큐멘터리에 대한 의미를 재정의 하면 “현실 세계를 반영할 수 있는 축약적인 성격이 있는 현실의 단면, 그리고 그것이 극적인 성격을 띨 수 있는 매력적인 표상이어야 한다는 것.” 이다. 즉 다큐멘터리는 모두 극적인 성향을 가져야 한다. 결국엔 다큐멘터리도 영상이고,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방식은 극영화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반대로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모든 극영화가 다큐멘터리의 요소를 가지고 있을까? 확실하지 않다. 왜냐하면 기준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영상의 발전은 단순 기록에서 복잡한 극영화로 전이 되었다는 것이다. 초창기 영화는 다큐에 가까웠다. 물론 표현적인 양식의 영화들이 같이 등장하기는 했지만, 그것 또한 극적인 방식으로 다룬다기 보다는 표현적인 행위를 기록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이다.
즉 극영화는 다큐로 출발하여, 문학, 연극, 미술과 결합하면서 좀 더 복잡한 성격을 띠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우리는 극영화에는 다큐멘터리의 흔적이 남아있다고 말할수 있게 된다. 하지만 다큐멘터리가 극성을 띠는 것 과는 다르게 극영화에서 다큐멘터리의 방식이 드러나는 것은 흔하지 않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극장에서 보고싶은 것은 현실이라기 보다는 조작된 현실, 즉 관객에게 관심을 기울일 만한 극적인 양식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극영화에서의 다큐멘터리적 요소는 종종 방법론적으로만 사용될 뿐 대개 은폐된다.
그렇다면 극영화에서 다큐멘터리적인 방법론은 어떻게 사용되는가? 필자는 하나의 영화를 정하지 않고 다큐의 방법론을 차용한(물론 그 기준도 이제는 모호해졌지만) 몇 가지 영화들을 골라서 이야기 하고자 한다.
첫 번째 다큐영화에서 끌어온 유용한 촬영형식은 핸드헬드 기법이다. 초창기 영화에는 핸드헬드라는 것이 없었다. 진정한 핸드헬드의 시작은 아마도 전쟁을 기록하려는 카메라맨들의 시도였을 것이라고 판단한다.(확실하지는 않다) 그들은 역동적인 상황속에서 영상들을 기록해야 했고, 당연히 영상은 엄청나게 흔들리며 부정확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촬영방식은 나름의 긴박성, 사실감을 제공했고 영상으로서의 미덕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기록 방식은 순간적인 현실을 빠르게 포착해야 하는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당연히 차용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식으로 핸드헬드는 처음에는 긴박한 현실의 빠른포착을 위해 발전했다. 그리고 감정의 흐름을 중시하는, 혹은 춤추듯 흐르는 리듬을 중시했던 동유럽 감독들에 의해 아름다운 형식으로 개발되었지만 그들의 작업 방식은 다큐라기 보다는 하나의 춤에 가까웠다. 아름답지만 현실적인 포착과는 거리가 먼 계획적인 움직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롱테이크, 핸드헬드의 방법론을 다큐와 가장 가깝게 연관시킨 감독 들 중 한명이 바로 다르덴 감독이다. 다르덴 형제는 그러한 핸드헬드 방식을(물론 이것도 계획 된 것이겠지만) 급박한 현실을 다루는 데 사용한다. 가령 로제타의 오프닝에서 보여주는 연출의 핸드헬드 방식은 오직 촬영방식 하나만으로 소녀의 닫혀있는 마음을 긴박한 표현으로 정확히 기술해낸다. (문을 연달아 닫고 나가버리는 소녀의 행위를 따라가는 것 만으로도 우리는 기존의 극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오직 카메라의 움직임 만으로도 그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것은 극적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대사 없이 몸동작과 카메라의 떨림만으로 영상의 의미를 전달하는 다큐멘터리의 성격과도 매우 유사하다고 말 할 수 있다.) 감독의 다른 영화들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다르덴 감독의 영화를 보면서 극적인 구축이 아니라 오직 카메라를 쫓으면서 캐릭터를 이해하고, 이야기를 이해한다. 이러한 방식은 다큐멘터리에서 차용한 형식중에서 훌륭하고 창의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는 비전문배우들의 기용이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다큐멘터리에는 배우가 나오지 않는다(배우를 다룬 다큐멘터리라 하더라도 그 다큐는 배우가 아니라 그라는 인간에 초점을 맞춘다) 이 역시 다큐멘터리의 유산으로서 우리는 비전문 배우들이 카메라에 설 때 드는 미묘한 이질감,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는 듯한 순수한 움직임에 매료된다. 그리고 종종 극영화 감독들은 그것을 정확히 활용하고 관객들을 매료시킨다.
비전문 배우의 기용이라면 빠지지 않는 극영화 감독 로베르 브레송의 영화 무세트를 떠올려보자. 무세트는 전혀 연기를 하지 않아본 배우를 기용한 영화다. 우리는 그러한 영향을 영화에서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배우는 연기를 하지 않고 뻣뻣하며, 아름답지도 않고, 대사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녀는 마치 카메라를 장악하기 보다는 수동적으로 기록되는 것 같은 느낌을 주며, 그런 면에서 우리에게 불안감을 야기시키기도 한다. 우리는 그녀의 이끌림을 받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가 그녀를 따라가는 동안 그녀를 관찰한다. 그녀의 연기 방식은 누구에게도 없는 개인의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은 배우가 이끄는 영화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샷과 샷이 이어지며 자연스럽게 연기하게 되는 효과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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