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ill life 스틸 라이프 영화 감상문
처음으로 접한 지아장커 감독의 still life로 본 중국의 모습은 나에게 상당한 충격을 안겨 주었다. 이 영화는 분명히 2006년도 지금으로부터 고작 5년 전에 만들어진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시대와는 너무나도 큰 차이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방값은 하루에 고작 1.2위안에 불과하며 주인공이 찾아간 정착사무소의 컴퓨터는 90년대에나 사용되던 도스컴퓨터였다. 노동자는 안전시설이 제대로 구비되어있지 않은 노동환경 속에서 콘크리트더미에 깔려 죽고 노동자들이 그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 하루 종일 힘겹게 일해도 받는 일당은 50~60위안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중국에 대해 많은 배경지식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내가 아는 중국은 현재의 중국은 전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GDP가 높으며 지금도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어 세계사회에서 미국과 대적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유일한 나라라고 평가 받고 있는 나라이다. 그리고 수도 베이징의 물가는 한국과 비교해봤을 때 결코 싸지 않다고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영화를 통해 본 2006년 즈음 샨샤의 모습은 믿기 힘들 정도로 처참 했다. 이 같은 모습이 남자주인공 산밍이 본 사회풍경이었다면 여자주인공 센홍이 접하는 사회모습은 조금 다르다. 남편을 찾기 위해 떠난 여정에서 만난 것은 현대기술의 집약체처럼 보이는 화려한 건물들과 그러한 건물에서 유유히 춤을 추며 즐기는 부유한 사람들, 24억짜리의 프로젝트를 진행중인 사업가 등이었다. 이렇게 2006년즈음의 동일한 시간 같은 샨샤에서 일어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산밍과 센홍이 접하는 풍경은 너무나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베이징 컨센서스에서 중국인들 조차 중국의 변화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구절이 있었다. 매일매일 건물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현대식 건물을 세우는 부유한 사람들과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여전히 예전의 생활방식을 고수하는 가난한 사람들이 샨샤에는 공존하고 있었다. 이 전혀 달라 보이는 두 부류의 사람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바로 돈이다. 영화 초반에서부터 말도 안 되는 강의를 억지로 보여주고는 돈을 거의 빼앗다시피 가져가는 무리들, 주인공이 찾는 펑지에가 이미 수몰되어 정착사무소에 가야만 하는 사정을 알지만 요금을 더 부과하기 위해 일부러 돌아가는 오토바이 운전사, 돈이 많은 회사의 여사장과 바람이나 건설회사의 임원으로까지 진급한 남편. 도덕과 윤리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들이 공통으로 추구하는 것은 돈과 물질문명이다. 중간 지점 없이 극과 극만이 존재하는 불안정한 상황과 과거의 가치와 새로운 가치의 괴리로 무엇이 진정한 가치인지 알 수 없어졌기 때문에 사람들은 점점 돈이라는 눈에 보이는 가치에만 맹목적으로 집착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렇게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영화는 주인공들의 미래에 대해 일말의 희망을 남기고 있었다. 센홍은 바람난 남편을 스스로 버리고 상하이로 떠나 새로운 삶을 시작할 것이고, 산밍은 빚 때문에 매어있는 가족을 되찾기 위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위험한 광산 일을 하면서 돈을 모을 것이다. 마지막 씬 중에서 하늘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사람을 통해 이들의 삶이 평탄하지는 않을 것임을 알 수 있다. 영화는 과히 희망찬 미래는 아니지만 사람들은 그래도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리고 자신만의 속도로 자본주의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며 끊임없이 살아갈 것임을 암시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영화 스틸라이프는 굉장히 많은 뜻을 함축하고 있는 영화이다. 한 평론가는 이 영화에 대해 완전하다는 평가마저 내렸다고 한다. 그에 비해 나는 빈약한 배경지식으로 인해 아마 내가 이해한 영화의 모습은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산을 보지 못하고 나무에만 주목하는 오류로 영화 전체를 왜곡해서 이해했는지도 모를 노릇이다. 그래도 지금의 내가 이해한 스틸라이프는 적어도 이렇다. 아마 시간이 지나 내가 좀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다시 한번 이 영화를 보고 싶다. 그때는 지금보다는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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