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바보 예수를 읽고 바보 예수 줄거리 바보 예수 독후감 바보 예수 느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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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바보 예수를 읽고....
저는 바보예수라는 책의 내용을 말하기 전에 저는 기독교 다닌다는 사실을 밝히고 싶습니다. 기독교에서 바보예수라는 말은 인정할 수 없는 말이다. 예수님을 모욕하는 말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은 다른 관점에서 말하는 것같다. 이 책은 표지그림이 해학적 분위기를 띄고 있다. 엄숙한 신적 존재로만 박제되어 있던 예수의 이미지를 어릿광대의 모양으로 뒤바꾸어 놓은 이 불경한 책은 실상 복음서에 있는 예수의 모습을 그대로 살리고자 노력했다. 그만큼 오늘날의 교회가 복음서에 녹아 있는 예수의 모습과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음을 이 책은 반증하고 있다. 미국 백인교회는 바울서신을 흑인교회는 복음서를 주일설교 본문으로 선호 한다고 한다. 그만큼 예수는 가난한 자, 소외된 자, 눈물 흘리는 자의 친구로 이 시대에도 사역하고 있다. 그 예수를 하나님으로, 주로 고백하는 교회가 실상은 예수와 가장 어울리기 힘든 모습을 지향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 시대 교회의 비극일지도 모르겠다. 조지프 그라시는 이런 말을 하였다. 사실 우스워 보이지 않는 성경적 믿음은 전혀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라고 말을 했다. 신앙의 본질적 문제로 받아 안아야 할 많은 이야기들이 오늘날 교회안에서 이미 배척받고 있는 실정이다. 공동체를 어떻게 꾸릴서 있어, 세상의 그릇된 가치를 버려야 한다는 당위는 옳지만,그렇게 살수는 없는 거 아냐, 예수를 믿기는 하겟지만 따르지 못하겠는걸, 이라고 말을했다. 오늘날 신앙의 본질적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그것을 이루어가고자 발버둥치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세상으로부터 뿐 아니라 교회의 명목적 신자들로부터로 비웃음과 조롱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그 비웃음과 조롱은 실상 예수를 향해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가 이미 그러한 삶을 사셨고, 우리에게도 그 삶으로 초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조롱하고 있는 그 존재를 믿겠다고 하며, 자신에게 은혜를 달라고 매달리고 있으니 이 얼마나 모순된 희극인가. 수세기 동안 교회는 예수님을 복음서에 나오는 모습보다 덜 위험하고 덜 공격적인 분으로 만들며 그 분을 기다려 왔다. 예수를 길들여 왔다는 것, 그것은 신자들이 제 아무리 정교한 이론을 가지고 예수를 조종하는 위치에서 이용하고 왔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바보가 되지 않고서야 어찌 이 무너질듯한 시대를 구원할수 있는가. 전통과 관습, 이데올로기, 시대의 코드에 지배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많은 이들에게 예수는 시대를 전복하는 변화적 삶으로의 초대를 성실하게 하고 계시다. “너 나와 함께 바보짓 하지 않을래? 하나 아쉬운 것은 , 변화적 삶으로의 초대라는 구호와는 달리 책 안에는 이 시대의 대한 알맹이가 부재하다. 무엇이 이 시대를 왜곡한 근원인지를 질문하고, 그것을 변혁해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며, 그것을 이뤄내기 위해 애쓰고 수고한 이 시대의 바보들을 찾아내는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 다시 또 2000년 전에 예수에게로만 눈을 돌리게 만들고 있음이 일말의 안타까움으로 남긴다.
예수의 어리석음이라는 개념이 불쾌하게 느껴지는 사람들은 어쩌면 거룩한 어리석음이라는 기독교의 오랜 전통을 잘 모르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간단히 말해서 거룩한 바보는 동시대인들이 결코 발견하지 못하는 위대한 영적 자질을 일컫는 용어이다. 사람들은 그분의 특이한 행동과 유머와 부드러운 친절이 어리석음의 증거가 아닌 거룩함의 증거라는 사실을 결코 이해할 수 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복음서 저자들이 제시한 원래의 예수님을 재발견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새롭고 혁신적이라고 여길 만한 매우 놀라운 관점을 발견할 수 가 있다. 나는 예수님을 바보라고 생각하는 것이 매우 충격적인 관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우리는 계속해서 바보짓을 하는 그분을 복음서에서 발견한다. 그것은 사실 기독교에서 가장 잘 지켜진 비밀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전설적인 특성에 익숙해 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을 항상 엄숙하고 신비적이며 초연한, 그래서 거의 유령 같은 분으로 여기는 것이다. 나는 우리가 성경이 예수님의 대해 말하는 정보에서 너무나 동떨어져서 실재한 인물에 대한 현실감을 잃어버렸다고 말하고 싶다. 예수님은 바보였다. 그리고 그분이 바보라는 사실이 그분을 가장 매력적이게 한다. 예수님은 죄와 용서에 대한 우리의 개념을 재구성하신다. 예수님은 죄란 잘못된 일들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인간의 본성이라고 말씀하시며 우리 관점을 재구성하신다. 죄는 성숙과 완전을 향한 우리의 성장을 제한하고 늦추는 조건이다. 이 내용의 예로 들수 있는 것은 선한 사마리아를 예로 들수 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힐 때 이 어린양들에 행동을 용서해달라고 했습니다. 이 내용은 잘못된 일은 죄가 아니고 우리의 본심이 선하게 있지 않고 악하게 있으면 그것이 바로 죄란 내용이다. 예수님은 용서에 대한 우리의 개념을 재구성 하신다. 용서란 어떤 종교체계의 충실한 추동자가 얻는 권리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사랑이며 십자가의 형태로 주어지는 공짜선물이다. 어떤 두 사람이 돈을 빌리는 것을 예로 들면 한사람은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돈을 빌리는 것과 또 다른 사람은 부모님을 위해 돈을 빌린다. 자기의 이익을 위해 돈을 빌리는 사람은 그 돈으로 가게를 차리고 장사를 하는데 장사가 잘 안돼면 그 빌린 돈을 갚지를 못 할 수가있다. 그러면 이사람은 어디서 돈을 벌기위해 돈을 훔치거나 살인을 할 경우 가 많아진다. 이런 경우는 예수님이 이사람에게 용서를 주는 것이 아니라 천벌을 줄것이다. 한편 부모가 펺찬으셔서 약값도 얻지 못하는 사람이 돈을 빌리는 경우 그 돈으로 부모님 몸에 좋은 약을 사다드린다. 그런데 막상 사주면 집안형편이 안 좋아서 돈을 구하기가 힘들 수가 있다. 그래서 아들은 밖에 나가서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 밖에서는 일을 하고 집에서는 부모님을 챙겨주는 이 모습을 예수님이 하늘에서 지켜보고 있을 수도 있다. 이 모습을 보면 언젠가 이 아들에 효심을 봐서 은혜를 줄 수도 있다. 이 두 재구성 사이의 긴장에 일정 수준의 균형이 필요하다는 것
이다. 이것을 발견할 때 자신의 삶과 주변 사람들의 삶 속에서 창조적이고 가치 있는 것을 생산하며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새로운 삶을 살도록 고무 된다고 믿는다.
저는 이 책 바보예수를 읽고 나서 느낀 점은 처음 이 책을 살 때에는 바보 예수라는 말에 엄청 흥분 했습니다. 책을 서점에서 사고 집에서 책을 읽었습니다. 이 책을 읽고 예수님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옛날에는 예수님은 그냥 우리를 위해 죄를 사하여 주셨다는 것만 알았었는데, 우리에게 용서와 은혜를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 수련회에 가서 은혜와 용서를 받았었다.
제가 원래 고등학교 때에는 교회를 잘 다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교회 수련회를 가서 예배와 찬송을 드리면서 깨달았습니다. 교회를 다니기 전에는 말썽만 피우고 그런 아이였는데, 교회를 다니면서 행동들이 많이 달라졌다. 부모님과 말도 잘하고 집안일도 잘 도와 주게됬다. 그래서 하루하루가 즐거워진 것 같다. 하늘에서 하나님이 지켜본다고 생각하면 모든 행동들이 조심스러워 졌다. 일상생활이 양보가 된 것이다. 어떤 친구들은 자기 이익을 위해 자기 먼저 한다고 막 달려오는데 난 이제 친구한테 먼저 양보하곤 한다. 얘기가 내 일상얘기로 빠진 것 같다. 요즘 우리나라 사람은 예수를 바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 이유를 생각 해 보았다. 요즘 길거리나 전철에서 예수를 믿으라고 강요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예수님의 이미지가 깎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사람들 너무나 강요를 해서 사람들이 나쁜 말이 오가고 한다. 예수님의 이미지를 손상시키면 안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수님은 바보가 아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다. 우리를 흙으로 만들어서 탄생하게 하신 우리 아버지이다. 그런 분을 바보라고 하는건 내 생각으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