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파이돈』을 읽고 - 줄거리 & 논평 -
- 줄거리 & 논평 -
- 『파이돈』의 줄거리 -
파이돈은 에케크라테스와 파이돈의 대화로 시작한다. 에케크라테스는 파이돈에게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시던 날, 소크라테스와 나눈 대화와 그의 행동에 대해서 묻고, 파이돈이 그 날을 회상하여 말해 주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소크라테스의 사형이 있던 날, 소크라테스를 따르는 많은 사람들이 소크라테스가 갇혀 있는 감옥으로 찾아온다. 그리고 그들이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에, 소크라테스는 “철학 정신을 가진 사람은 누구든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하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살은 옳지 않다.”라는 말을 하게 된다. 이 모순에 대해서 케베스는 “왜 자살을 해서는 안 되지만 철학자는 죽을 각오가 되어야 하는가?”라며 의문점을 제기하게 되고, 그들은 죽음과 영혼에 관해 대화하게 된다. 케베스의 이러한 물음에 대해서 소크라테스는 인간은 신들의 소유물이므로 신이 부를 때까지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은 죽고 난 뒤에 더 선한 신들과 더 좋은 사람들에게로 떠난다는 신념이 있기 때문에 전혀 슬프지 않다고 한다.
소크라테스는 죽음이라는 것은 육체와 영혼의 분리라고 생각했다. 또한 그는 인간의 육체적 감각이나 욕망은 인간이 진리와 지식의 획득하는 것을 방해하는 요인이 된다고 했다. 그러므로 영혼이 육체를 벗어나 자기 자신으로 응집하여 홀로 있을 때 영혼의 정화가 이루어지는데, 소크라테스는 이것을 지혜에 도달했다고 보았다. 또한 두려움 때문에 생기는 용기와 방종하기 때문에 생기는 절제라는 덕목은 지혜를 가져야만 참된 교환이 이루어지는데, 이는 지혜를 추구하는 참된 철학자만이 정화된 삶을 살고, 저 세상에서도 좋은 주인과 벗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의미 한다. 즉, 진정한 철학자들만이 죽음을 기쁘게 받아들인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케베스는 사람이 죽은 다음에도 영혼이 여전히 존재하며, 힘과 지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한 재 논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영혼은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갔다가 이 세상으로 되돌아와서 죽은 자로부터 다시 태어난다고 주장하는 옛 이론에 대해 언급하면서 저 세상에 영혼이 존재한다는 것을 논증해나갔다. 그는 먼저, 분할과 결합, 냉각과 가열, 좋은 것과 나쁜 것은 사실 반대되는 것으로부터 나오고, 갑에서 을로 을에서 갑으로 되는 변천과정이 존재한다는 점을 확인하였다. 이를 이용하여 삶과 죽음 또한 반대 물로부터 생기는 것으로, 죽은 것이 살아 있는 것으로부터 생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살아 있는 것은 죽은 것으로부터 생긴다는 결론을 얻어 죽은 자의 영혼은 어떤 곳에 있다가 거기서 되살아난다는 첫 번째 논증을 하였다. 그리고 그는 두 번째 논증을 시작하기에 앞서 상기설에 대해서 언급한다. 상기는 시간이 흐르고 부주의로 말미암아 이미 잊었던 것을 회복하는 과정을 말하며 지금 우리가 상기하는 것은 예전에 배운 일이 있었다는 것을 말한다는 것이 상기설이다. 그는 이것을 이용하여 두 번째 논증을 시작한다. 대등하다는 것과 대등 자체의 본질과는 차이가 있다. 대등한 것들은 대등 자체 도달하려고 하지만 이에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인간은 단순한 유사성과 절대적 대등함을 단번에 알 수 있다. 이것은 다시 말해서 인간은 감각을 통해 지각하기 전에 절대적 대등을 알고 있어서, 이 기준을 적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즉 태어나기 전부터 모든 관념을 알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그러나 상기설에 따르면 이미 배웠던 지식이나 올바른 이성을 가지고 있어야 만이 망각했던 어떤 다른 것의 개념을 획득 할 수 있다고 했으므로 이것은 결국 영혼이 인간의 형태를 취하기 이전부터 육체 없이 존재했고, 지능도 갖고 있다는 점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러한 소크라테스의 논증이 있은 후에도 케베스와 심미아스는 영혼이 육체를 떠나면 영혼이 소멸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면서 소크라테스에게 이러한 두려움을 없애달라고 말한다. 소크라테스는 아름다움의 본질과 같은 참된 존재는 항상 불변하며 오직 정신을 통해서만 파악되고 형태가 없어 보이지 않는데 이것은 영혼에 가깝다고 주장했다. 또한 사람, 말, 옷 등은 언제나 변화하는 상태에 있는 것이며, 감각을 통해 지각할 수 있는 보이는 것, 이것은 육체에 가깝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영혼이 육체를 지각의 도구로 사용할 때, 영혼도 육체에 의해 방황하고 혼미에 빠지지만, 영혼이 자기 자신으로 돌아와 반성하면, 순수하고 영원한 불변의 영역으로 들어가 변하지 않은 것과 사귀게 되는데 소크라테스는 이 상태를 지혜라고 생각했다. 소크라테스는 심미아스와 케베스에게 쾌락이나 고통의 감정이 강렬하여 이를 진리로 여기게 되는 상태에 이르러 영혼이 육체에 속박 당하게 되면 영혼이 육체와 같은 습관과 기호를 지니게 되고 신적이며 순수한 것과 사귀지 못하게 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참된 애지자의 영혼은 육체로부터 분리되어 철학이 인도하는 대로 자신을 집중시키고 쾌락과 욕망 등을 멀리하여 악으로부터 해방되길 바라기 때문에 영혼이 육체를 떠날 때 소멸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하게 된다.
한참 뒤, 심미아스와 케베스는 또다른 의문을 제기한다. 심미아스는 영혼은 하모니로, 육체는 하프로 비유 하여, 하모니는 하프로 연주한 여러 음들의 조화로 이루어진 것인데 하프, 즉 육체가 없어지거나 망가진다면 하모니인 영혼이 가장 먼저 소멸할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하모니는 하프의 각 부분의 연주 뒤에 오는 것이지만, 영혼은 인간의 형태나 육체를 취하기 전부터 존재하였으므로 순서적으로 어긋남을 논증했다. 또한 영혼에는 정도의 차이는 없으나, 분명 선하고 악한 두 가지 영혼이 존재한다. 그러나 조화에는 나쁜 조화와 좋은 조화가 없고 모두 동등한 조화만이 존재하므로 조화와 영혼은 연결 될 수 없다. 마지막으로 영혼이 조화라면 영혼을 구성하고 있는 줄들의 긴장, 이완, 진동에 어긋나는 선율을 낼수 없다. 그러나 영혼은 정념을 반대하는 등 영혼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이끌어 갈 수 있으므로 심미아스의 주장은 모순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케베스는 인간의 영혼은 육체라는 옷을 입고 소모되면 다른 육체로 갈아입는데, 만일 영혼이 지쳐서 결국 죽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즉, 영혼이 전적으로 불멸이고 소멸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면 저 세상에서도 영혼이 완전히 소멸할 것을 두려워할 것이고 이것은 진정한 진리의 길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모든 사물에는 이데아가 존재하며 다른 사물은 이데아를 나눠 갖는다고 하였다. 예를 들어, 아름다움이라는 본질이 존재하며 다른 아름다운 것들은 아름다움 자체를 분유하고 있는 한에서만 아름답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데아는 불변하는 것이며, 반대물과 반대를 초래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인정하지 않는다. 그 결과 생명을 주는 영혼은 그와 반대 되는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불사, 불멸하는 것이 된는 것이다. 이로써 소크라테스는 케베스의 의문에도 영혼은 소멸하지 않는 존재라는 사실을 논증해낸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알고 있는 지구를 설명하면서 영혼이 저 세상에 가면서 거치는 과정과 악한 영혼과 선한 영혼이 저 세상에서 받는 판결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모두 마친 소크라테스는 결국 독배를 마시고 “크리톤, 나는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 마리를 빚졌네. 갚아주겠나?”라는 말을 남긴 채, 눈을 감았다. 그리고 파이돈은 에케크라테스에게 소크라테스는 당대의 가장 현명하고 가장 올바르고 가장 훌륭한 사람이었다는 말을 하며 책이 끝이 난다.
-『파이돈』의 논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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