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에대한 나의 생각 표명
‘법’이라는 것은 대략적으로 말하면 ‘사람들이 공동체를 만들어 살아가는 것에 있어서 그 공동체의 이익이나 종속, 발전을 추구하기 위해 지켜야할 최소한의 규율’ 정도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야생에서 혼자 살아가기엔 다른 동물들에 비해 너무 약한 탓이든, 아니면 홉스의 주장대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피해가기 위한 목적이든 간에 사람은 사회를 만들어 생활을 영위해 나갔으며, 또 그러한 사회를 유지해 나가기 위해서든 좋든 싫든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규칙을 정하고 그것을 지키는 것은 필수 불가결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공동체의 존속을 위한 것과 공동체를 이루는 구성원들을 위한 것 사이에는 어떠한 괴리가 있는 것 같다. 그 둘의 이해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여기서 법이라는 것은 애초에 지배층의 피지배층에 대한 통치 수단으로 출발했다는 것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시민혁명 이전에 어느 인류역사를 보더라도 부락→부족→국가로 발전해 나가는 시기에 통치자는 남이 넘볼 수 없는 무력을 가졌거나 엄청난 재산을 쥐고 있는 사람이었고, ‘국가’라는 공동체는 그러한 절대 권력을 가진 사람의 것이었지, 대다수를 이루는 민중은 그저 지배, 통치의 대상이었을 뿐이었다. 그러한 공동체가 봉건제나 절대 왕정 체재를 갖추게 되었더라도 여전히 통치의 무게 중심은 왕과 그를 가까이서 따르는 몇몇 귀족들에게 쏠려 있었고 민중들은 최소한의 사유재산권이나 생존권만을 보장받을 수 있을 따름이었다.
중국의 역사 중에서 춘추전국시대는 무수히 세워지고 또 쓰러졌던 나라들만큼이나 다양한 사상들이 동시대에 유례없는 각축을 벌인 시대이기도 하다. 각 나라들의 흥망사는 그 나라가 채택하고 있는 사상의 흥망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혼란을 극복하고 전토를 통일하는데 성공한 나라는 진(秦). 진나라는 일찍이 법가 사상가 ‘상앙’의 개혁 정책을 받아들여 통일 제국으로서의 기반을 닦았으며, 시황제 또한 그 자신이 철저한 법가였다. 변방의 약소국에 불과한 진나라를 부흥시키는 데에는 상앙이 제정한 법의 힘이 절대적이었으나 그의 변법 또한 다수의 민중을 억압하는 한계를 분명히 노출시키고 있었다. 상앙의 진언 중에 이런 것이 있다. “다섯 집과 열 집을 한 조로 만들어, 서로가 서로의 잘못을 고발하여 연대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합니다. 문학이니 역사니 하는 책들을 불살라 버리고 법령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대신들의 청원을 듣지 말고 나라를 위해 일하는 사람을 소중히 해야 합니다. 백성이 집을 떠나 벼슬을 찾아다니는 것을 금지하고, 변이 있을 때 병역(兵役)에 종사하는 농민을 표창해야 합니다.” 진 효공이 그의 말을 따르자 국력은 가파른 성장을 거듭하였으나 가혹한 법력에 시달리던 민중들이 진 효공 사후에 들고 일어나 상앙을 죽이고 말았다. 이렇든 예로부터 법은 공동체의 이익과 구성원의 이익이 상충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현재의 법은 앞에서 예를 든 것과 같이 공동체의 발전을 담보로 구성원의 희생을 강요하는 성격은 많이 약해졌다고 볼 수 있다. 시민 혁명 이래 서구의 학자들에 의한 것이지만 자연권 사상, 천부 인권 사상 등이 빠르게 확산되고 민주화가 진전 되면서 나폴레옹 법전 이래 대부분 나라들의 법들이 그러한 권리들을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법이 구성원의 권리를 강조하는 쪽으로 많이 변했다고는 하지만 그 것 또한 그 자체로 완전한 것은 아니다. 지배층, 피지배층이라는 관념은 많이 사라졌지만, 기득권을 가진 부류는 언제나 있어왔고 지금도 없다고는 하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기득권층은 다른 누구보다 법의 보호를 잘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법망을 교묘하게 피해나가기도 쉽게 된다. 일단 그렇게 되면 부패하기가 쉽지만 법적인 장치로 걸러내기가 힘들어지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큰 문제거리가 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이러한 기득권층을 법적인 장치로 견제하는 데에는 크고 작은 진통을 동반하게 되는데 이것이 성공하는가 실패하는가에 따라서 그 사회의 발전 여부가 판가름 나기도 했다. 로마시대 때의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 고려 말 공민왕 · 신돈의 개혁 정치, 중국 캉유웨이의 변법자강운동은 기득권층이 반발함으로서 실패했던 예요, (뒤의 두 개는 실패한 후 나라가 망했을 정도로) 메이지유신은 기득권층을 몰아내고 근대적인 법으로의 개혁에 성공함으로서 나라가 부강해진 예다. 굳이 다른 나라나 옛날로까지 가지 않더라도 우리나라도 6월 민주화 항쟁의 결과로 대통령 직선제를 채택하게 됨으로서 비로소 문민정부시절 군부 쿠테타의 주역들을 법의 심판을 받게 하였고 민주화에 큰 기여를 하게 되었다. 요는, 법이라고 하는 것은 그 자체로 항상 절대적으로 옳은 것만은 아니며 아무리 잘 만든 법이라고 해도 걸러내지 못하거나 빈틈이 있기 마련이므로 항상 깨어있는 정신으로 감시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앞에서 논의했듯이 법은 절대선도 아니고 불가피한 필요악도 아니다. 다만 그 법이 마련되어 있는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그 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지키며, 적용시키고 또 그때그때 변하는 상황에 따라 공동선을 추구할 수 있도록 만들어 가느냐에 따라 달린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다시 말하자면 구성원들이 하기에 따라 법은 통치자에 의한 강압적인 통치 수단이 될 수도 있는 것이고 어두운 과거를 털어내고 정의를 구현하는 횃불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법과 법 집행을 두고 여러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주로 불만의 목소리인 것 같다. 똑같은 일을 저질러도 어떤 사람은 형이 너무 과하다하고 어떤 사람은 형이 너무 가볍다하는 일도 많이 벌어지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 대한 불신의 골도 깊어지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때에 우리에게 법을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추상적이지만, 시사하는 내용이 들어 있는 것이 있어 여기에 옮겨본다. 중국 진나라시대 역사가 진수가 편찬한 삼국지(정사) 촉서 제갈량전에 실린 평이다. “.....(전략)충의를 다하고 시대에 이익을 준 자에게는 비록 원수라도 반드시 상을 주었고, 법을 범하고 태만한 자에게는 비록 가까운 사람이라도 반드시 벌을 주었다. 죄를 인정하고 반성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 자에게는 무거운 죄를 지었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석방했으며, 진실을 말하지 않고 말을 교묘하게 꾸미는 자에게는 비록 가벼운 죄를 지었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사형에 처했다. 선행을 하면 작은 일이라도 상을 주지 않은 적이 없었으며, 사악한 행동을 하면 섬세한 것이라도 처벌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중략).......그 결과, 촉 경내에 사람들은 모두 그를 존경하고 아꼈으며, 형법과 정치는 비록 엄격하였지만 원망하는 자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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