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비스트로스 Claude Levi Strauss 레비스트로스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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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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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Claude Levi-Strauss
1. 삶과 저작들
- 클로드 레비스트로스(Claude Levi-Strauss)는 1908년 벨기에의 브뤼셀에서 프랑스 국적의 유태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지 두 달 만에 그의 가족은 다시 파리의 푸쌩가에 이후 20여 년 동안 살게 될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유년기에는 사회주의 운동을 하는 벨기에 출신의 한 청년을 만났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동안에 묻고 배우면서 마르크스에 관해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의 저작들을 탐독하게 되었다. 이것은 그가 사회와 정치 문제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데 기여했으며, 곧 당 시의 프랑스 사회당이었던 SFIO에 가입하여 활동했다. 이후로 그는 고등사범학교 ‘고등사범학교’(Ecoles normales superieures)는 프랑스의 인문계 특수 대학으로서 가장 권위를 인정받는 명문 대학이다. 주경복, 『레비스트로스: 슬픈 열대와 구조주의자의 길』(서울:건국대학교 출판부,1996년), p.17
학생이 아니면서도 ‘고등사범학교 사회주의 연구반’의 간사를 맡기도 하였고, 뒤이어 사회주의 대학생 연맹의 총무도 맡았다. 그 후에는 지방자치단체 선거 때 군 의회 사회당 후보로 출마한 일도 있으나 여의치 못한 사정으로 정계진출 계획은 포기했다. 고등학교 과정을 마친 뒤, 일반 대학인 파리 대학 법학부에 입학한 뒤 소르본느 대학에서 철학도 함께 공부했다. 스무 살 무렵 철학 교원자격시험 준비하는 과정에서 메를로뽕띠(MauriceMerleau-Ponty), 시몬느 드 보봐르(Simone de Beauvoir)를 알게 되었으며, 1931년 3등으로 최연소 합격했다. 1932년 10월 1일 스물네 살의 나이로 고등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침으로써 직장생활을 시작했는데 이듬해부터 그 일에 실증을 느끼고, 돌아다니면서 세계를 구경하고 싶은 생각에 빠진다. 이 시점에서 그는 좋은 기회를 얻게 된다. 부글레 교수가 그를 브라질의 상파 울루 대학에 사회학교수로 추천함으로써 1935년 2월에 브라질 땅을 밟게 된다. 그는 1938년까지 상파울루 대학에서 사회학을 강의하였다. 브라질에서 돌아온 레비스트로스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 자 군에 동원되어 연락장교로 근무한다. 얼마 후, 프랑스 전체가 독일 점령 아래에 들어감에 따라 그는 곧 병역이 해제되고 뒤이어 대입자격고시의 철학 시험관으로 일했다. 그러나 유태인으로서 신변의 불안을 느끼던 중 미국 록펠러 재단에서 추진하는 ‘유럽학자 구명계획’의 혜택을 받아 미국으로 망명하게 된다. 미국에 도착하여 유럽 난민들을 위해 설립된 ‘신사회연구학교’에서 강의할 기회를 얻었으며, 곧이어 프랑스인들을 위한 ‘뉴욕고등연구자유학교’가 설립되어 프랑스어로 강의할 기회도 얻는다. 그가 미국 망명 생활 동안 알게 된 사람 중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은 로만 야콥슨(Roman Jakobson) 로만 야콥슨(Roman Jakobson)은 러시아에서 태어난 유태계 언어학자로서 미국에 먼저 망명해 있는 유명 인사였다. 야콥슨은 미국에 오기 전에 체코에서 망명하던 시절 구조주의 언어학의 형성에 밑거름이 된 프라하 언어학파를 트루베츠코이(Troubetzkoy N. S.)와 함께 주도한 사람이다, 주경복,『레비스트로스:슬픈 열대와 구조주의자의 길』(서울: 건국대학교 출판부,1996), p.25
이었다. 그는 야콥슨을 알게 되면서 구조언어학의 방법론에 흥미를 갖게 된다. 이는 후 에 레비스트로스가 구조주의의 대표적 인물이 되는 효시가 된다. 그는 야콥슨의 권유로 강의 내용을 토대로 『친족의 기본 구조』 레비스트로스에게 구조주의자로서 깊은 인상을 심어 준 책이기도 하다. 결혼을 바탕으로 맺어지는 친족관계의 법칙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려고 시도하였다. 수학적 원리로 공식화하려고 애쓰는 한편 구조언어학의 ‘체계’ 또는 ‘구조’ 개념을 응용하여 획기적인 분석 방법을 선보였다. 주경복, 『레비스트로스:슬픈 열대와 구조주의자의 길』(서울: 건국대학교 출판부,1996), pp.26~27
라는 박사 학위논문을 제출한 뒤 다시 책으로 출판하였다. 전쟁이 끝나고 프랑스에 귀국했던 레비스트로스는 문정관 자격으로 다시 뉴욕에 파견되었다. 3년 정도 뉴욕에 머문 뒤 1947년 귀국하여 국립연구원 교수와 박물관 부관장 직을 맡으면서 그 이듬해에는 「친족의 기본 구조」로 박사 학위를 받는다. 1950년 파리 대학 부설 ‘고등연구실용학교’(Ecole Pratique des Hautes Etudes)에서 원시종교에 대해 강의하면서 사회인류학 연구소를 신설하여 주관하게 된다. 1955년에 『슬픈열대』 브라질 체류를 전후해서 자신의 체험을 회고하면서 수필 형식으로 쓴 글이다. 책은 출판되자마자 큰 반향을 일으켰다. 프랑스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공꾸르(Goncourt)문학상 위원회에서 문제의 책이 소설이 아닌 탓에 수상작으로 선정할 수 없어 애석해한 반면, 학계에서는 본격적 학술서적이 아니라 대중적 냄새가 많이 풍기는 글이라는 이유로 곱지 않은 시각으로 바라봤다. 주경복, 『레비스트로스:슬픈 열대와 구조주의자의 길』(서울: 건국대학교 출판부,1996), p.27
를 출간했다. 1958년에는 『구조인류학』(Anthropologie structurale) 구조적 방법론에 따라 인류학적 문제들을 다룬 내용이다. 주경복, 『레비스트로스: 슬픈 열대와 구조주의자의 길』(서울: 건국대학교 출판부.1996). p.28
을 발표했다.
뒤 이어 ‘꼴레쥬 드 프랑스’(College de France)라는 권위 있는 학술 기관에 석좌교수로 임명되어 사회인류학 강좌를 창설하고, 프랑스 인류학을 대변하는 학술지 《사람》(LHomme)을 창간한다. 1962년에는 『오늘날 토테미즘』 (Totemisme aujourdhui), 『야생적사유』(Pensee sauvage)를 출간한다. 그 뒤로는 ‘신화론’에 관한 책을 연이어 출간한다. 이는 모두 그의 독특한 구조주의 방법론에 따라 넓은 뜻의 신화적 문화요소들을 분석하고 설명한 글들이다.
1973년 레비스트로스는 프랑스 최고의 전통과 권위를 누리는 한림원 한림원(Academie Francaise)은 루이 13세 때 1634년에 리쉴리외 재상이 설립한 것으로 학계의 원로 가운데 학문적 공로를 인정받는 소수에게 회원 자격을 부여한다. 보수 성향을 띠어서 진보적 계층에게는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곳이지만, 그 전통과 권위에서 매우 유명한 지위를 지키고 있다. 주경복, 『레비스트로스: 슬픈 열대와 구조주의자의길』(서울: 건국대학교 출판부,1996), pp.29~30
회원이된다. 85세인 1993년에는 『보기, 듣기, 읽기』라는 수필식 예술비평서를 내놓아 다시 한 번 대중의 찬사를 받았다.
2. 영향을 준 요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