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전범 후세인은 이라크 특별 전범 재판소에 맡겨야한다
뜨거운 감자. 국제 사회는 지금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를 두고 논란이 뜨겁다. 이라크 특별 전범재판소냐, 아니면 국제재판소냐. 미국, 영국과 이라크 과도통치위원회는 이라크에서 이라크 국민에 의해 재판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후세인의 딸들과 국제 인권단체 및 이슬람단체 등은 국제 법정을 주장하고 있다. 먼저, 도대체 그는 무슨 죄를 지었는지 그의 죄목을 파헤쳐 보자.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은 이란 혁명 직후인 1980년 9월 국경분쟁 끝에 이란을 전격 침공했다. 이라크 군은 1983년과 1985년 두 차례 겨자가스, 신경작용제, 수포작용제 등 생화학무기를 사용했고 이 때문에 이란 군 2만 명이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양측은 1988년 7월 휴전협정에 조인할 때까지 1백여 만 명의 인명 피해를 냈다. 후세인은 휴전 직전인 1988년 2월 북부 쿠르드족의 반란을 진압한다며 할라브자 마을에 사린과 청산가리가스등을 살포해 주민 5천여 명을 학살하는 등 그 해 9월까지 쿠르드족 주민 5만~10만여 명을 학살한 혐의도 받고 있다. 후세인은 이란과의 종전 2년 뒤인 1990년 8월에는 쿠웨이트를 침공했다. 다음해 2월 미, 영 다국적군이 참전하자 이라크 군은 수도 쿠웨이트시티를 약탈하고 7백여 개의 유정에 방화를 저질렀다. 당시 쿠웨이트인 6백~1천여 명도 실종됐다. 후세인은 또 걸프전 때 제3국인 이스라엘에 스커드미사일 39기 발사를 명령해 민간인 두 명을 숨지게 했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사울 모파즈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후세인이 재임 중 팔레스타인 자폭 공격범과 유족들에게 수만 달러에 이르는 보상금을 주는 등 테러를 후원한 혐의도 추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걸프전 이후 후세인은 남부 시아파의 민중봉기를 진압하면서 시아파 반체제인사들에 대한 무차별 고문, 처형을 일삼았다. 지금까지 이라크 전역에서 2백70여 개의 집단매장지가 발견되는 등 당시 학살된 시아파 주민 수가 3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또 1991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량살상무기 폐기결의안(687호), 지난해 11월 무장해제결의안(1441호) 등 다수의 유엔 결의안을 위반한 혐의도 전범재판 과정에서 추가될 것으로 보인다. 이 수없이 많은 죄를 짓고 살아온 극악무도한 ‘범죄자’인 사담 후세인은 그러나 한때 한 국가의 대통령이었다. 그의 처벌 문제를 두고 우리는 국제 전범으로 보되 이라크 국내의 특별 전범재판소에 맡겨야 한다는 입장이다.
우리가 사담 후세인을 국제 전범 평화에 대한 죄, 일반적인 전쟁범죄, 인도(人道)에 대한 죄를 범한 자.
전범(戰犯)이라 약칭하기도 한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연합국의 국제군사재판에서
전쟁범죄에 대하여 뉘른베르크 재판과 도쿄[東京] 재판에서 소추(訴追)되어 처벌된 자로
A급 B급 C급의 구별이 있다.
(naver 백과사전, http://100.naver.com/100.php?id=135023&cid=AD1070875069645&adflag=1)
으로 보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이유는 사담 후세인이 저지른 국제적 만행이다. 후세인 정권은 1980년 일련의 국경분쟁 끝에 이란을 침공하였다. 이라크가 이란에게 선제 공격을 해서 전면전이 발발하게 된 것이다. 이 전쟁의 사상자는 100만 명에 달했고 이라크는 전쟁에서 화학 무기 화학 약품을 사용하여 인명을 살상하거나 초목을 말려 죽이고 발연 효과를 내게 되어 있는 모든 무기를 가리킨다. 이란-이라크전쟁, 아프가니스탄 분쟁 등에서 사용되었다.
『DON-A ENCYCLOPEDIA』(東亞出版社, 1993년판), 20:425, s.v. “화학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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