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일제 말 한국 기독교 수난구도의 이해를 민경배는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이를 극히 단순화시켜 본다면 교회와 불의한 세속권력과의 갈등문제로 집약시켜 이해할 수 있다. 즉 교회가 세속권력의 불의한 강요에 어떻게 대응하느냐? 다시 말하면 타협ㆍ순응하여 신앙의 본질을 왜곡시키면서까지 존립을 추구하느냐, 아니면 탄압과 순교를 각오하고라도 이에 대항하여 신앙의 본질을 지켜 가느냐 하는 것이다. 이렇게 이해한다면 이 문제의 핵심적인 내용은 정도와 상황의 차이는 있겠지만 시대를 초월하여 종교계와 세속권력 사이에 나타날 수 있는 보편적인 갈등 문제라고 보아도 무리가 아니다" 김승태 편, 『한국기독교와 신사참배문제』서정민,『한일 기독교 관계사 연구』(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2), p.288.
즉, 한국기독교의 수난은 ‘신사 참배’의 강요로 이해 할 수 있다. 이것은 하나의 국가권력의 실체로서 존재한 일제 한국통치체제가 국가목표의 총력 수행이라는 목적 하에 실시한 기독교 탄압의 실체로 상징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정교갈등’의 지평 위에 일단의 새로운 측면으로, ‘교교갈등’의 성격을 참가하는 일도 가능할 것이다.
1. ‘천황제 이데올로기’와 ‘국가신도’의 종교성 검토 서정민, 『한일 기독교 관계사 연구』(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2), p.291-296.
일제 말기에 절정에 이른 천황제 이데롤로기의 특정을 분석하는 해석 준거에는 집약적으로 다음 세 관점, 혹은 세 단계의 판단이 우세하다.
첫째, 표면적으로만 천황제를 이해하는 방식이다. 즉 “근대 일본에 있어서의 천황제는, 정치기구로서는 천황이 유일 절대의 주권자로서 통치의 대권으로 장악하고, 문무관료가 그 대권을 보필하고 행사하는 기구이다.” 도히 아키오, 서정민 역, 『일본기독교의 사론적 이해』(서울: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1993),p197.
라는 대외명분에 동의하는 일이다.
들째, 정신구조와의 관련, 혹은 이데올로기의 문제로까지 확대해 보는 논의이다. “천황제 이데올로기는 끝없이 포근하고 경탄할 만한 은총의 방법으로 민중에게 접근하다. 임금의 권력이 아니고 임금의 은혜, 곧 매와 채찍이 아니고 눈물의 징계요 사랑의 책벌인 것이다. 그것이 가족국가론인 것이며 의제적인 부락공동체로서의 국가였다. 천황제는 정체가 아니고 국체였다고 하는 것이다.” 도히 아키오, 서정민 역, 『일본기독교의 사론적 이해』(서울: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1993),p183.
셋째, 내용적 상상대로 그 성격을, 종교체제로 파악하는 입장이다. “천황은 수호신인 황조신(皇祖神)의 자손으로서 국민 위에 군림하는 현인신(現人神)으로 되었다. 천황이 집행하는 황조신도적 제의는 국가적 행사가 되어 버렸다. 일본이 마침내 나라 밖으로 평창하고 군사적 침략을 감행했을 때, 천황은 그러한 행위를 뒷받침하고 정리하는 역할을 담당했다.ㆍㆍㆍㆍ천황이 이와 같이 만민 위에 선 종교적 권위자가 된다고 한다면, 국민은 그 밑에서 서로 평등한 존재가 된다. 일군만민(一君万民)이라든지 시민평등(四民平等)이라고 하는 관념이 주창되었다.” 도히 하키오 역, 『일본기독교의 사론적 이해』(서울: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1993),pp.197-198.
천황제 이데올로기의 ‘종교성’파악을 위해서는 근대 천황제국가의 종교정책을 살피는 일이 유효한 방법이다. 제1단계는 ‘신도국교황정책’과 기독교 금교령 유지이다. 그러나 이는 곧 기독교를 비롯한 서구 문물의 유입 허용 기조와 ‘신도국교화’에 대한 내부적 저항에 부딪혀 실패하고, 제2단계인 ‘신사비종교론’과 ‘초종교로서의 국가신도론’으로 이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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