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사의 제문제] 한국 민족교회의 재평가 문제 한국민족교회의 새로운 서술에 대한 제시
한국민족교회의 새로운 서술에 대한 제시
1. 서론
한국민족교회와 독일민족교회, 그리고 천황제 시기의 일본기독교에게 공통되는 것은 ‘국가’이다. 3개의 교회들은 모두 국가가 제시한 국가정책에 대해서 협력하여 때로는 대항하면서 관련성을 갖고 왔다. 본 발제에서는 ‘국가와 교회관계’에 중점을 두고 민족교회를 분석하려고 한다. 서로에게 공통되는 ‘국가’를 통해서 국가정책에 대한 각 교회가 보인 방응을 통해서 나라마다 서술된 민족교회의 차이를 발견하고자 한다. 더 나아가 어떤 패러다임과 사관 속에서 민족교회를 서술하고 이해하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인지에 대해서도 살펴보려고 한다.
2. 본론
1) 반유대주의를 토대로 한 민족교회와 나치스
독일민족교회와 나치스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이념은 ‘반유대주의’이라고 할 수 있다. 독일민족교회의 ‘반유대주의’에 배경에는 유대인들의 선민사상에 있다. 유대인들은 유일신인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민족이었으며 때문에 그 어느 민족들보다 우월한 민족으로 이해되고 있었다. 이 사상은 유대인들 사이에서만 이해된 것이 아니라 만민복음 사상을 소유한 기독교에서도 이질적인 사상과 민족으로 이해되었다. 로버트 S. 위스트리치, 『히틀러와 홀로코스트』(을유문화사, 2004.4.30),28
독일의 정신이자 전통인 기독교로 인해 독일전체에서 유대인들은 이질적인 존재로 여겨졌으며, 우수한 게르만 민족은 유대인들에 대해 열등감을 항상 갖고 있었음을 볼 수 있다. 로버트 S. 위스트리치, 『히틀러와 홀로코스트』, 32
나치스 즉 히틀러도 마찬가지로 반유대주의의 입장이었다. 그러나 히틀러의 경우 기독교와는 다른 배경을 찾아 볼 수 있는데, 히틀러의 반유대주의 사상은 유대인혐오증으로 인상 것이었으며 기독교적 사상으로 인한 것은 아니었다. 당시 유대인들은 독일에서 그들의 유능함을 다 반면에서 보이고 있었다. 독일증상계층의 반유대주의 정서는 의사, 변호사, 소상점주, 수공업자, 중소기업, 학자 그리고 학생사이에서 강했으며, 이는 직업상의 질투와 시기심에 의래 촉발된 것이었다. 그당시 유대인들은 출판, 언론, 예술, 자유전문직, 무역, 사은행업이나 백화점업계 등 판매업에서 특출한 재능을 보였다. (로버트 S. 위스트리치, 『히틀러와 홀로코스트』, 65)
유대인의 경제적 차지가 심해지자 독일에 유대인혐오증은 더 심화되었으며 결국에는 말살정책까지 이루게 되었다.
독일민족교회와 나치스는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었지만 ‘반유대주의’와 ‘유대인혐오증’으로 결합하게 되었다. 독일민족교회는 유대인의 선민사상이 박해로 인해 살아지고 예수를 받아드릴 것을 원했고 미셀 옹프레,『무신학의 탄생』, (서울: 모티브북, 2006.6.19), 260
나치스는 우수한 게르만 민족의 각성과 방해가 되는 유대인이 파멸하며 나치스의 세력을 확장하려고 했다. 즉 히틀러의 기독교적 언어와 형성을 이용한 정책에 독일민족교회가 대응하고 지지하는 식으로 전개된 것이다. 로버트 S. 위스트리치, 『히틀러와 홀로코스트』(을유문화사, 2004.4.30), 186
우리는 또한 독일이 십자가를 지게하고 싶지 않다. 차라리 우리가 비인간적으로 되자. 그러나 만약 우리가 독일을 구하면,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큰 불의를 제거한 셈이된다. 우리가 차라리 비도덕적이 되자. 그러나 우리가 우리 민족을 귀하면 우리는 다시 도덕적으로 되는 길을 닦은 셈이다. 로버트 S. 위스트리치, 『히틀러와 홀로코스트』, 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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