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1 단군에서 김두한까지
역사를 서술함에 있어서 ‘객관적 서술’은 존재할까? 『대한민국 史』를 읽기 전이라면 이 물음에 대해 당연히 ‘존재한다.’라고 대답하였을 것이다. 전공수업인 ‘동아시아 중세사’시간에 역사라는 것은 전체 중 극히 일부분을 가지고 전체를 추론하는 것이며 ‘어떻게 설득력 있게 설명할 것인가’가 중요하며 사료를 통해 어떤 근거로 서술되었는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배웠다. 당시에는 역사란 ‘사료’를 통해 당시의 상황이나 역사적 사실을 추론하는 것이기 때문에 막연히 객관적일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그 자료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도 그를 해석하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는 것이다. 곧 자신의 입장에 따라 객관적이 될수도, 혹은 주관적이 될 수도 있다.
책의 말머리의 ‘네 말도 옳고, 내 말도 옳고’라 말한 황희 정승의 말은 하나의 사건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제각기 해석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머리말에서는 황희정승의 이야기 이외에도 영화 ‘라쇼몽’과 ‘안중근’, ‘신채호’ 등을 예로 들어 역사란 이해관계나 시대상황에 따라 해석이 달라 질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역사’라고 배워왔던 것들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매번 ‘역사’과목 시험을 볼 때 다른 과목과 마찬가지로 정해진 답을 찾았고, 교과서를 통해 답을 맞추어 보기도 했기 때문이다. 역사가 이해관계나 시대상황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면, 우리가 고등학교 과정까지 배웠던 역사는 무엇이란 말인가? 교과서는 ‘승리자의 시각’에서 본 역사를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한홍구의 『대한민국 史』에서는 승리자의 시각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것을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다. 곧 역사라는 것은 객관적이 되지 못하며 그 시대의 상황이나 입장 차이에 따라 해석하는 데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안중근은 의사(義士)로 불리기도하고 혹은 테러리스트가 되기도 하고, 신채호는 유가증권을 위조한 파렴치범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史 』에서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 의문을 품고, 질문을 할 수 있는, 자신과 끊임없이 대화 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려 한 것 같다.
책의 부제인 ‘단군에서 김두한’까지를 보았을 때 시대 순으로 역사적 사실만을 기술한 책인 줄 알았다. 그러나, 개별적 사실에 대한 설명 보다는 하나의 주제와 관련된 여러 가지 역사적 사실을 제시하고, 기존의 시각과는 다른 관점으로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책을 읽는 내내 학교교육으로 배워왔던 것들은 무엇이었는지, 과연 진실인지 또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은 사실이 맞는가에 대해 수많은 생각이 들자 책의 내용들이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고 있는 것 마냥 불편해졌다. 기존의 관점과 다른 시각에서 살펴보기 때문에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을 넓히는 데 많은 도움을 줄 수도 있지만 그로인해 독자가 자칫 편향된 시각을 가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시대 순의 인과관계에 따라 정리하지 않고, 각 주제에 맞는 사건들을 연관시켰기 때문인 듯하다.
잘 들어보지 못한 생소한 사건들이 있는가 하면, 우리에게 익숙한 ‘단군신화’라든지 드라마로 인기를 끌었던 ‘야인시대’를 제시하며 흥미를 끌기도 했다. 2002년 방영된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김두한은 장군의 아들로 시대를 잘 못 타고난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초등학생일 때 이 드라마를 보면서 실제로 그렇게 믿었고, 김두한을 ‘영웅’처럼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두한은 항일영웅의 아들일 뿐 김두한 그 자신은 항일영웅이 아니다.
단군신화로 ‘한민족’으로 묶고 있지만, 사실은 우리사회에 퍼져있는 단일민족 신화의 허상을 따끔하게 꼬집어 내고 있다. 이주해 간 동포들은 포함하고 있지 않으면서, 우리나라로 이주해 온 외국인에 대해서는 백인에게는 관대하며, 유색인종에 대해서는 우월감을 느끼며 인종 차별을 해 왔다. 즉, 부자와 가난한 자를 나누어 차별하고 있었던 것이다. 단군신화는 우리 민족을 하나로 모으는 것을 주장했지만 그 이면을 살펴보면, 사실 차별해 오고 있었던 것이다. 또, 책에서는 일제강점기 때 일제가 우리 민족을 ‘2등신민’으로 취급한 것의 잔재로 인식하고 있다. 지금 까지 환인-환웅-단군으로 이어지는 삼신사상이나 천손사상으로 우리 민족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정도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른 관점에서 바라 볼 때 일제강점기의 잔재가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 할 수도 있지만 너무 확대 해석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가 ‘단일민족’인 것에 대해 자랑스럽게 여겼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는 단일민족이 아니다. 지금까지의 역사만 보아도 이는 쉽게 알 수 있다. 이제 왜곡된 현실을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할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답답했던 부분은 여전히 끝나지 않은 ‘친일파청산’문제였다. 일제강점기가 끝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반공’을 앞세워 친일파들은 고위관료가 되어 떵떵거렸으며 급기야는 ‘나라를 위해서’였다고 말하기 까지 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서술뿐만 아니라 앞으로 우리가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할지에 대한 방향성을 좀 더 제시해 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누구나 친일잔재 청산을 동의하고 있지만, 고위 관료직에 있었던 친일파들에 의해 암묵적으로 반대되거나 숨겨져 왔던 사실 들을 꼬집어 내 주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양민학살과 민간인학살의 용어에 대한 부분은 충격 그 자체였다. 흔히 양민학살과 민간인학살 두 가지 용어를 섞어서 사용한다. 양민이 아닌 자, 빨갱이, 통비분자, 불순분자, 좌익가족들은 죽여도 된다는 부당한 가해자의 논리가 들어간 것이다. 8.15 해방이후 한국전쟁과 그 후 이어진 민간인학살에 대해 ‘뜨거운 프라이팬을 벗어나니 불구덩이 속이더라.’라는 책의 표현이 딱 들어맞는다. 한국전쟁을 두고 ‘Forgotten War이라 말하기도 하는데, 드러나지 않은 수만은 민간인학살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그러나 실제 이 시기를 겪어 보지 않아 교과서에서 배울 때에는 ’도대체 왜?‘ 이런 생각도 했고, 잘 와 닿지 않았던 부분이었다. 『대한민국 史』 책에 삽입된 몇 개의 사진들로 얼마나 끔찍했는지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잘린 목을 보고 기쁜 듯 웃고 있는 남한 병사의 모습이라든가 좌익 사범들의 처형장면은 곧 분단의 현실을 말해 주는 것 같아 먹먹해지기도 했고, 단 두장의 사진만으로 당시 얼마나 끔찍했는가를 알기에 충분했다. 이어서 ’연좌제‘와 ’국가보안법‘으로 인해 유골은 있지만 유족은 존재하지 않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졌다. 기득권 세력이 자신과 뜻이 맞지 않으면 ’좌파‘니 ’빨갱이‘니 하며 몰아버린 결과가 아닐까? 예나 지금이나 ’모 아니면 도‘라고 여기는 흑백논리는 여전한 것 같아 안타까웠다.
이외에도 우리나라의 ‘비운의 역사’에 대해 어디로 가야하는지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하려고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었다. 주제나 그 주제에 따라 제시된 역사적 사실은 제각기 달랐지만, 결국 『대한민국 史』에서 저자가 말하려 했던 것은 남·북한의 현재 혹은 다음 세대의 화해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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