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 마나부 (1892~1953) 약력
1910 중학4년 교장배척시위 주도후 퇴학
1914 동경제국대학 법학과 입학
1918 러시아 혁명사회주의 연구회 활동
1918 동경대 사회주의 단체 창립
1920 와세다 대학 강사
1922 일본공산당 창립 멤버
1926 제1차 공산당 사건으로 수배
1929 체포
1931~1932 공산당 공판에서 재판투쟁 주도
1932 무기징역 선고
1933 전향발표
1943 출옥
1946 노동전위당 결성
1946 와세다대학 교수
전향이란 자기의 사상을 그 사회에 맞추어 바꾼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외부의 탄압으로 어쩔수 없이 운동을 중지해야 하는 의미의 전향도 있지만, 단순히 표면적인 말로 끝나지 않고 그 본질을 내면으로까지 수용되는 경우도 있다.
일본 공산주의는 초기에 천황제와 전쟁에 대해 전면 부정을 표면적으로 내세웠지만 사노 마나부의 전향 이후 검거자의 90%가 전향의사를 밝히고, 천황제와 전쟁에 대해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입장으로 돌변하게 된다.
사노 마나부는 공산당 최고 중앙 위원으로 공산당 내 대표적인 이론가였으며, 코민테른의 집행위원을 역임한 경력이 있을 정도로 국제적인 인물이었다. 그의 전향 논리는 천황제 수용의 측면이 거의 완벽(?)하게 포함되어 있다. 그들이 받아들였던 천황제 논리는 일반 국민들에게도 강하게 어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여기서 그의 전향 논리를 통하여 당시 대중들에게 천황이 어떻게 인식되고 있었는지를 짚어보기로 하자
1933년 전향성명 시기의 천황제 인식
1933년 사노 마나부는 공산당 중앙위원이었던 나베야마 사다치카와 함께 전향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이 두 사람의 전향을 계기로 일반 공산당원들의 전향이 줄을 이루었다. 전향 이전 사노는 1922년 공산당창립 직후 당원이 된 이래 공산당 중앙위원장, 코민테른 집행위원등을 역임할 정도로 공산당 내에서 대표적인 이론가이며 국제적인 인물이었다. 그만큼 공산당에 대한 사노의 이론과 신념은 대단했다. 사노는 공산주의에 대한 신념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만약, 내가 공산당이 필연적으로 붕괴될 것이라고 예견하지 못하고, 여전히 이것을 광신했다면, 공산당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고통도 즐겁게 감수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공산당원이 되었을 때, 신념을 위해서라면 언제라도 죽을 각오를 하고 있었다. 자신이 믿고 있는 사랑을 위해 단두대에 오르고, 고문으로 죽고, 자객의 손에 죽는다는 것을 환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러한 그가 공산당을 버리고 전향해 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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