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을 앞둔 각 당의 위기상황
주제: 탄핵 사태이후 총선을 앞둔 각 당의 위기상황
탄핵가결 이후 각 당은 예상치 못한 판세에 접어들었고 그 이후에도 크고 작은 사건 속에 총선을 치루었다. 이에 우리는 총선을 앞두고 각 당이 맞이하게 된 위기상황과 그에 대응한 PR활동을 살펴보기로 하였다. 많은 정당이 있지만 우리는 탄핵상황과 직접적인 연결고리로 엮인 열린우리당 한나라당 민주당 3당에 국한해 사례를 분석하기로 하고 각 정당의 총선관련 모든 전략 위주로 대응방향을 분석하는 것이 아닌 탄핵과 관련해 대응했던 총선전략을 위주로 살펴보았다. 국민의 약 70%가 탄핵을 반대했다고 했던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수렴하여 국민의 대부분은 탄핵을 반대했다는 것을 바탕으로 삼았다는 것을 사례분석에 앞서 먼저 밝히는 바이다. 또한 아직 탄핵 정국이 끝나지 않았지만 우리는 총선과 연계해 이번 사례를 분석하여 총선을 이번 탄핵정국 속 각 당 위기현상의 결말로 정의했음을 미리 말하고자 한다.
탄핵 사건의 개요와 발단
먼저, 탄핵의 직접적인 원인과 사건들을 살펴보기 이전에, 탄핵에까지 이르게된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보는 것이 순서이다. 전체적인 이야기를 간략하게 시작하자면,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 대선때부터 각 당들의 접전은 치열했다. 특히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와 민주당의 노무현 후보의 경쟁이 심했다. 결과적으로 노무현 후보가 당선된 후 민주당 내부의 갈등이 시작된다. 이런 상황에서 노풍이 불고, 민주당은 노무현의 정책이 민주당의 의도와 많이 다르다고 판단, 신구파로 갈리는 상황에 이르렀고 결국 노무현 대통령 지지세력이 탈당해 열린우리당을 창궐하게 된다. 이러한 갈등구조는 경선시절부터 시작해서, 이회창 후보와의 대선때와 노무현 대통령 집권 후에도 계속되었다. 반 노파진영은 ‘노무현 대통령의 정책이 민주당이 기대했던 것과 많이 다르다’ 는 측면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배신을 이야기한 것이고 노무현 대통령측은 ‘민주당이 지지를 해주지 않으니 정책을 펼치기가 어렵다. 그러니 지지의원들이 탈당하여 창당한 열린 우리당에 입당, 정책을 추진하는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 뒤 노무현 대통령의 불법 정치자금 문제가 알려졌다. - 대선 직후인 지난해 12월25일쯤 부산의 전직 은행 간부 이모씨와 함께 손길승 회장을 만나 11억원 상당의 양도성예금증서(CD)를 받았다. 또 대선자금과의 관련성 및 청탁의 대가인지 여부에 대해서 검찰이 조사를 벌였고, 검찰은 최씨의 혐의가 확인되어 15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문제는 이 최도술씨 사건을 계기로 노무현 대통령이 국민 앞에 재신임을 묻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노무현 대통령의 대통령 선거이전과 이후에 기업들로 부터 정치자금을 받은 것에 대한 측근(대통령주변사람)의 비리가 들어남에 따라 그것에 대하여 사죄를 하고 국민들이 이를 용서하고 계속 대통령직을 수행하게 할 것인가를 국민투표로 정하여 심판을 받아 보겠다는 말이었다.
그러다가 얼마 후에 한나라당이 SK로부터 100억을 받았다는 의혹이 생기고, 이것이 사실로 확인되자, 기존 검사의 조사에 찬성하던 의견을 거두고 특검을 주장하게된다. 국회에 의해 뽑히는 특검 담당자는 실질적으로 한나라당에 의해서 뽑힌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상황에 노무현 대통령은 거부를 하게 되고, 탄핵 계기가 되었다.
또한, 노무현 대통령은 재임 1주년 기념 노사모행사에 참여하여 열린우리당 당적을 가지지 아니한 국가의 원수로써 그 법에 반하여 "시민혁명을 주창하며 열린우리당을 지지"한 발언과 지난 방송기자 관훈토론회에 참여하여 전국민이 지켜보는 생중계 방송 가운데 "열리우리당을 지지해 줄것"을 다시 공공연히 천명하기도 했다.
이 발언이 문제되어 선관위에서는 야당의 고발에 따라 "공무원의 선거중립규정 위반"이라는 위법성을 지적하고 사전선거운동위반의 부분은 해당되지 않는 다는 유권해석을 내리고 정식으로 공문서를 통해 위반사실을 대통령에게 통고하였다. 프레시안 2004-03-04 참조
사건의 증폭과 조정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