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2월25일부터 5년 간 대한민국을 이끌 제16대 대통령에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당선되었다. ‘참여정부’를 출범한 21세기 첫 국가지도자로 선택된 노무현의 리더십에 대해 알아보고, 또한 더 나아가 그의 교과서이자 그가 존경하는 인물인 링컨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노무현과 링컨은 정치생활에 있어서 중요한 비율을 차지하는 주위환경에서부터 원칙과 신뢰를 우선시하는 ‘국민의 정부’출범 까지, 정치적 철학뿐만 아니라 개인적 삶의 과정에서도 비슷한 면을 보이고 있다. 반면에 그들의 신체와 기질 등의 몇 가지 면에서는 차이점을 띈다. 이에 노무현과 링컨 각각의 삶과 리더십에 대해 짚어보고, 그들에 대해 비교분석 해보도록 하겠다.
먼저, 노무현에 대해 살펴보자.
그의 삶은 서너 토막으로 묶인다.
-부상상고를 졸업할 때까지의 청소년기, 변호사로 활동하던 시기 그리고 정계진출이후-
그는 가족, 친인척을 둘러봐도 내노라할 명망가 하나 없는 ‘보통사람’ 이다. 가정형편 때문에 생활고를 겪으면서 힘든 생활을 했지만, 그의 학창시절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굽히지 않고 행동할 정도로 당차기만 했다. 이러한 성격은 성장기엔 ‘반항기’로 표출되었고, 정계입문 후에도 ‘돌출행동’의 원인이 되었다. 그의 화법 역시 하고픈 말을 곧바로 꺼내는 스타일이다. 이러한 ‘직선적’인 화법은 ‘시원하고 찡하다’는 평을 받지만 때론 ‘거칠고, 인기 영합주의적’이라는 비판도 받는다. 하지만 사람들이 듣기 쉽고 호소력이 강하다는 것은 그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는 사실이다. 또한 그는 즉석화술에 강하며 비유나 수사에도 능란한 편이다. 이는 훗날 그가 ‘청문회 스타’로 부상하게된 원동력이 된다. 그의 연예는 ‘경상도 사내’ 식으로 로맨스나 낭만은 찾아볼 수 없다. 그의 가족들 역시 그가 ‘자상하지는 않지만 합리적인 사람’ 이라 전한다. 자녀교육에 있어서도 ‘자율’을 강조하며, 뒤에 따르는 ‘책임감’에 대해 직접 느끼도록 하는 행동파이기도 하다.
그는 부산상고 졸업후 1975년 제17회 사법고시합격, 대선지방법원 판사를 역임했다. 본격적으로 그를 의식화시킨 것은 1981년 5월의 ‘부림사건’이다. 이 사건 변론 이후 자칭 ‘돈 잘 벌던 변호사’ 노무현은 ‘ 운동하는 변호사’로 변화한다. 그 후 여러 투쟁과 사건 속에서 구속이 되기도 하고, 변호사 업무 정지 처분까지 받는다.
그가 세상에 처음 얼굴을 알린 것은 1988년 5공비리조사 특별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청문회에 등장했을 때이다. 그가 청문회에서 돋보인 것은 새로운 사실을 잘 밝혀내서가 아니라, 증인들의 기를 꺾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는 국민들의 정서와 서민들의 아픔을 잘 아는 그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후 그는 92년 총선, 95년 부산시장 선거, 96년과 2000년 총선에서도 계속 떨어졌다. 2000년 8월부터 2001년 4월까지 해양수산부 장관 재임 후 2002년 국민이 함께 참여한 선거를 통해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됐다.
21세기를 시작하는 첫 번째 화두는 ‘리더십’이다. 기업경영에서의 신뢰 경영, 공사 구분 등의 원칙 경영은 국가경영과도 상통된다. 새로운 리더십에 대한 대중의 열망을 반영한 노무현의 리더십은 제왕적 리더십을 거부하고 기존 지도력에 대한 ‘신뢰의 위기’가 만들어낸 정치 현상이라 말할 수 있다. 노무현은 지금까지 우리가 익히 보아왔던, 카리스마형 리더십, 제왕적 리더십, 피라미드형 리더십과는 다른 겸손하고 민주적인 리더십, 네트워크형 리더십, 그리고 친구같은 리더십, 눈높이 리더십이라는 새로운 리더십 원리와 최고의 경영기법으로 평가된다. 그가 말하는 리더십이란 비단 정치나 국가행정뿐만 아니라 경제경영 분야에서도 얼마든지 응용할 수 있는 것으로 행정가, 공무원 그리고 기업의 CEO에서부터 중간관리자까지 누구든 금방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다.
그가 말하는 네트워크형 리더십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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