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와 정치문화의 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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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대중문화와 정치문화의 결합
각종 대중매체가 정치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승만의 하야성명, 더 올라가면 일본 왕의 무조건 항복 선언이 전해진 것도 라디오를 통해서 였고, 매스 미디어의 놀라운 전파력은 텔레비전의 출현 이후 더욱 그 위력을 발휘하여왔다. 유신시대 이후 우리나라의 대중매체는 노골적으로 또는 은밀하게 정치의 선동, 선전 역할을 담당해왔고, 대중매체에 의해 전파되는 대중문화는 때로는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때로는 지배층의 이데올로기를 확산시키는 도구로 이용되어왔다. 적극적으로 정치문화 일선에 서서 국민들을 계도하거나 압박하던 시대 또한 있었으며, 지금도 고도의 정치술을 활용하는 데 가장 효율적인 도구가 대중매체임은 명백하다.
비자금 파문을 가져온 노태우의 사과성명 장면에서 동정심을 겨냥해 일부러 초췌한 화장을 했다는 대목은 ‘보이는’ 것의 중요성에 얼마나 매달리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설명해주는 예이다. 이승만이나 일본 왕이 보이지 않는 라디오를 통해 성명을 낭독하던 때와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왜 정치인들은 대중매체를 통한 얼굴 알리기에 급급하고, 집권당은 언론을 장악하기 위해 다수의 우수 인재를 투자하는가? 텔레비전 뉴스와 각종 프로그램에 숨겨 있는 이데올로기는 무엇이고, 정치의 하이라이트인 선거 대목에서 대중매체는 어떻게 이용되고 있는가?
1987년 대선으로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한 대중매체, 특히 영상매체와 정치문화의 관계를 살펴보도록 하자.
1987년 제 13대 대통령 선거
6.29로 얻어낸 1987년 대선은 노태우와 3김의 격전장이었다. 야권 후보 단일화를 성공시키지 못한 김영삼, 김대중에 대한 국민들의 질타는 결국 노태우 후보의 승리로 끝이 났고, 관권 개입과 언론의 편파보도, 금권선거, 고질적인 지역감정 등 우리 선거사의 폐해가 고스란히 나타난 선거였다.
1987년 대선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대선후보들의 텔레비전연설이다. 후보 모두가 함께 하는 텔레비전 토론이나 라이오 토론이 아직껏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우리의 선거문화 풍토에서 그나마 후보들의 모습을 텔레비전을 통해 볼 수 있고 그들의 주장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한 걸음 진보한 선거문화라고 볼 수 있었다. 더욱이 직접 유세장을 찾을 수 없는 대부분의 유권자들은 텔레비전을 통해 후보자들의 면면을 관찰할 수 있다는 이점을 지니고 있다. 재미있는 현상은 여당인 민정당의 후보가 텔레비전 토론은 반대한 것과는 달리 야당의 세 후보들은 한결같이 찬성을 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후보들의 토론회는 무산되고 본인 연선 5회, 기타 연설을 5회로 일정이 짜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