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과학 사회사업 실천의 이념과 비전
한마디로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말 같다. 예전엔 가족과 친척, 이웃들이 복지체계로 자연스럽게 서로 도우며 가정의 유지와 발전을 도왔다. 그들은 서로를 낙인 지우지도 않았고 서로를 돕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었다. 그것은 누군가 조직한 인위적인 집단도 아니었고 이웃과 함께 누리고자 하는 것이 었다. 어찌보면 이것런한 것들이 다시 부활되거나 활성화 된다면 복지는 필요가 없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사회복지를 공부하는 사람들의 궁극적인 목적이 복지사 보편화 되어 복지사가 필요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러한 기능을 국가의 책임 하에 사회복지 단체나 관공서에서 하고 있다. 시스템을 갖춘 복지를 삶의 현장에 다시 돌려보내는 것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그 만큼 많이 수정되고 가공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복지관에서 하는 서비스의 내용이 과연 사회복지의 전부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때도 있다. 지역 주민의 접근성과 욕구를 파악해서 프로그램을 만든다고하지만 결국은 주민보다는 제공자의 편의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복지가 보이지 않기 위해서는 복지서비스를 받는 사람이나 제공하는 사람에게나 들어나지 말아야 한다고 했지만 난 오히려 그들이 복지를 권리로 받아들이고 자립할 수 있도록 그들의 역량을 키워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냄비속의 개구리가 물이 천천히 끊으면 자신의 몸이 익는 것도 모른체 가만히 있는 것 같이 그들 스스로도 현제의 상황에서 벋어 날 수 있는 동기부여와 희망을 주어야 한다고 본다. 어쩌면 그들에게 보이지 않는 서비스가 더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삶의 질이 경제적인 것과 반드시 연관되어 있다고 볼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낙인이나 자존심의 상처를 받지 않고 주체성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할때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의 기금모금이나 후원금 모금 방식을 볼 때 대부분 마케팅이론을 적용하여 복지 수혜자를 상품화 하고 있다. 그들이 사회의 도움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존재이며 국민들의 도움을 바라고 있다는 식의 카피문구와 홍보물은 더 많은 재원 확보를 위한 노력이라 할 것이다. 이것은 낙인을 지양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재원을 만들기 위해선 낙인을 시킬 수 밖에 없는 모순 투성이인 것이다. 어찌 보면 복지는 사회의 흐름과 문화에 영향을 받고 그에 맞게 변화해 왔다고 볼 수도 있다.
누구나 누릴 수 있는 복지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수많은 재원이 필요할 것이고 재원의 부족으로 질이 떨어지고 보편적인 서비스에 머물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현제 보편적인 것과 선별적인 서비스를 병행하고 있다고 볼 수있다. 앞에서 우리는 사회복지 서비스를 받는 사람들이 격게되는 주체성의 문제와 스티그마등을 우려했다. 그라나 보편적인 서비스로 이해서 더 많은 서비스를 받고 있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공적인 부조에 대해서는 자신의 돈이 아니기 때문에 쉽게 병원을 다니게 될 수도 있고 정작 서비스가 필요하지 않는 일반인들에게 집중될 수 있는 우려가 있다. 복지는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기 위해 하는 것임에도 서비스가 필요한 사람들은 필요한 정보를 접하는 데 제약이 있다. 낮에 출근하고 밤늦게 퇴근하는 그들이 과연 중산층 이나 여하 계층보다 정보를 접하는 정도와 사용하는 것에 대해 쉽게 다가 갈 수 있는 가에 대해 조금은 의심이 든다.
복지는 평범해야 한다. 우리가 주변의 이웃 만나 듯 버스를 타듯이, 지하철을 타는 것과 걷는 겉과 같이 평범해야 한다. 공기를 의식하지 못하듯 옷을 입듯이 평범한 것이 어찌보면 가장 필요한 것이라는 말로 바꿔서 말 할 수 있다고 본다.
복지관에서만 서비스를 제공하는 센터보다는 서비스를 가지고 지역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옳은 것을 모르는 복지사는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단지 국가가 담당하는 역할이고 그것을 수행하기 위한 방법으로 센터나 복지관이 활용되는 것이라 본다. 복지가 주민들의견으로 가기위해서는 주민들의 조직하고 그들의 의식을 고양시키는 것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본다. 지역주민들의 지역의 리더로 세우고 조직화 과정을 통해 지역주민들이 자신들의 복지에 대해 원하는 것들이 무언지를 깨닫고 자신을 볼 수 있도록 안내해 주는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작은 불씨가 큰 불로 편화하듯 복지라는 작은 씨앗을 뿌리고 주민들과 함게 가꾸어 나가는 것이다.
복지는 흔해야 함에도 그렇지 못하고 가까이에 주민들과 불리되어 기관의 의지와 정부의,계획에 맞추어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시스템은 복지를 받는 사람들의 입장보다는 제공하는 자 측면에서 정해진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하루 아침에 모든 것을 바꿀 수는 없다. 그러나 빗물에 바위가 깎이듯 복지를 위해 노력하는 많은 사회복지사와 학생, 주민들이 있는 이상 변화의 물결은 반드시 오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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