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머리말
2. 두 사업의 목적
1) 양전지계사업의 목적
(1) 내재적 발전론의 입장과 반박
(2) 식민지 근대화론의 관점과 반박
2) 토지조사사업의 목적
(1) 내재적 발전론의 입장과 반박
(2) 식민지 근대화론의 관점과 반박
3. 두 사업이 끼친 영향
4. 논의에 대한 의견
5. 맺음말
1. 머리말
양전지계사업과 토지조사사업은 근대화시기 조선의 토지제도에 있어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들이다. 당시 조선이 스스로 근대화할 능력을 가지고 있었는지의 여부가 이 사업들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두 사업은 크게 두 가지 관점, 즉 식민지 근대화론과 내재적 발전론의 관점에서 평가되고 있다. 식민지 근대화론의 시각에서 볼 때 양전지계사업은 근대적인 토지제도라고 할 수 없는 제도로, 토지조사사업을 통해 비로소 근대적인 토지제도가 확립되었다고 할 수 있다. 내재적 발전론은 양전지계사업으로도 이룰 수 있었던 근대적 토지제도가 일제에 의해 방해받았고, 일제가 그것과 유사한 형태의 토지조사사업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전개했다고 보고 있다.
보고서에서는 이 두 사업의 목적과 영향을 식민지 근대화론과 내재적 발전론의 관점에서 각각 살펴보고, 그것에 대해 평가해보고자 한다.
2. 두 사업의 목적
1) 양전지계사업의 목적
양전지계사업을 실시한 목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첫 번째는 근대적인 토지소유관계를 국가에서 확인하기 위해 실시되었다는 의견이고 두 번째는 토지가 국가의 것이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한 의도에서 실시되었다는 의견이다.
(1) 내재적 발전론의 입장과 반박
첫 번째 의견은 내재적 발전론의 관점에서 보는 시각으로 개인의 토지소유를 국가에서 근대적인 방식으로 확인해주고, 이것이 근대적인 토지매매의 기초자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1904년 2월 러일전쟁이 발발하고 일본이 조선의 각 관청을 장악하면서 사업 자체가 취소되었지만, 만일 이 사업이 그대로 진행되었다면 토지조사사업과 유사하거나 그보다 더 조선의 현실에 맞는 형태로 진행되었을 것이라 보는 것이다. 이는 토지조사사업은 소작의 개념을 재산권으로 인정하지 않은데 비해 양전 사업은 소작인의 권리도 인정하고 있었다는 점에 근거하고 있다. 일본과는 다르게 소작권이나 도지권도 하나의 권리로 인정되어 오던 조선의 관습에 비추어보면 토지조사사업보다 조선의 현실에 알맞은 제도라는 주장이다.
양전지계사업이 근대적인 토지소유권의 확립에 있어 토지조사사업과 같은 기능, 또는 더 나은 기능을 했다는 의견은 반대 입장에 의해 비판받아왔다. 근대적인 토지소유권의 확립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양전 사업은 그다지 근대적이지 않은 면모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시행주체가 대한제국이라는 점에서 우선 그러하다. 대한제국은 조선을 황실의 통치 아래에서 단결시키고 그 권력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삼기위해 양전 사업을 실시했다. 양전 사업을 통해 토지소유자들의 권리를 인정해 주기는 하였으나, 그 땅은 대한제국의 영토로 백성들에게 빌려준 것이라는 사상이 바탕에 깔려 있었다. 또 양안에 한 번 기재된 소유권은 다시 고칠 수 없게 되어있어 실질적으로 매매가 일어났을 때에는 소용없어지는 문제가 있다. 이것은 양안이 상품화폐경제에 따른 근대적인 의미로서의 토지소유권을 보장 한다기보다는 이전까지의 관습적인 개념을 문서를 통해 정리한다는 의미를 더 크게 지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시기가 다를 뿐, 이전까지 조선에서 해왔던 토지소유와 소작에 대한 권리를 나타내는 문기와 비슷한 내용을 가지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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