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주요 내용 및 논지
제4장 1960년대 경제 위기 : 성장 전략의 한계와 외적 자원 제약
제1절 국가의 내포적 성장 전략과 기업의 외연적 성장 전략의 모순
제1차 5개년 계획 기간 동안 북한의 공업 생산액은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으나 이것은 기술 혁신을 통한 효율성 증대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자원 투입량의 증대, 즉 외연적 성장에 기초한 것이었다. 1959년 하반기를 지나 1960년대로 들면서 내적 한계가 표출되기 시작해 북한의 공업 생산액 성장률이 둔화되기 시작했다. 대중운동에 따른 속도 경쟁은 실적주의로 인해 외연적 성장 방식을 더욱 조장했다.
1960년대 원자재 생산에 대한 투자 증대와 더불어 자원의 효율적 이용을 위해 기술 혁신과 생산 조직 혁신을 추구하는 내포적 성장을 추구했고, 대중 운동의 비효율성을 극복하기 위해 1959년 이후 다시 조직 지도 사업, 생산 조직 사업을 강조했다. 이 때 1956년 이전보다 행정 경제 사업에 대한 당적 통제와 생산 조직 사업에 대한 당 조직의 역할이 강화되었다. 생산 조직 사업을 개선하기 위해 물질적 자극이 아니라 정치 도덕적 자극을 위주로 하는 대안의 사업 체계를 확립하였다. 기업소마다 담당지도원제가 실시되었고, 특히 도당위원회의 역할이 강화되어 도내 중앙 공업을 직접 책임지고 지도하게 했다. 농업 관리 체계도 개편되어 농업 생산에 대한 당의 지도적 역할이 더욱 강화되었다.
대안의 사업 체계는 생산 지도에 역량을 집중하는 데 목적이 있고, 최고 지도기관으로 하는 집체적 지도 체계가 결정적으로 강화되어 스탈린식 모델인 지배인 유일관리제가 폐지되었다. 공장당위원회가 당과 대중, 행정기술 역량을 통일적으로 장악 지도하는 체계로 생산에서 당 정책이 잘 관철되도록 지도 감독하며, 당 정책 관철에 당원과 근로 대중을 조직 동원하도록 했다. 또한, 생산에 대한 기술적 지도를 강화하고 통일적, 종합적, 집중적 생산 지도 체계를 확립했다. 종전에 생산 지도와 기술 지도가 별도의 지도 체계로 분산되었으나, 대안의 사업 체계는 모든 부서를 통합해 단일 지도 체계를 확립하고 함께 책임지는 제도를 수립했다.
대안의 사업 체계는 기업 관리에 있어 군중 노선을 제도화해 생산자 대중을 기업 관리에 직접 참가시켰다. 종래에 생산협의회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참여가 이루어졌으나, 당 조직을 통해, 작업반의 관리 운영 사업에 대한 노동자의 집단적 물질적 관심성을 자극해 기업 관리에 적극적으로 참가시켰다.
생산성 향상을 위해 기술 혁신을 했는데, 과학 기술 발전을 자력 갱생의 혁명 정신과 결부시켜 진행하고, 전인민적 운동으로 기술혁신을 추구하고자 했다. 모두가 한 가지 이상의 기술을 소유하는 전군중적 운동이 전개되었다. 1960년대 원자재 공급 부족 현상은 노동 생산성 둔화를 증가시켰고 1965년 이후 북한의 노동 생산성 증가율을 더욱 둔화되었다.
제2절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갈등과 외적 자원 제약 현상의 심화
1960년대 자원 공급 부족 현상이 심화되어 자원 투입량의 증대에 기초한 외연적 성장 방식과, 생산 조직 혁신과 기술 혁신을 통한 내포적 상장이 한계에 직면해 노동 생산성과 경제 성장률이 점차 둔화되었다. 1960년대 북한과 소련의 갈등은 자원 부족 현상을 더욱 심화시켰다. 1961년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4기 제2차 확대 전원회의에서 김일성은 “자력 갱생의 정신”을 특별히 강조하고 반수정주의를 강화할 것을 역설했다. 1962년 하반기를 지나며 북한과 소련의 갈등이 더욱 심화되어 북한이 독자 노선을 모색했다. ‘주체’의 개념을 사회 각 분야에 보다 구체화하여 경제에서 자립 노선, 국방에서 자위 노선, 정치에서 자주 노선을 천명했다.
1960년대 중반을 지나며 북한과 중국의 갈등이 발생했다. 중국의 교조주의를 비판하며 자주 노선을 재천명했다. 북한은 사대주의를 배격하고 주체를 확립하기 위해 자기 것에 대한 민족적 긍지와 자부심을 높이는 사회주의적 애국주의 교양을 강화했다. 항일 빨치산의 혁명 전통 교양은 밖으로는 수정주의, 대국주의, 안으로는 사대주의를 배격해 민족적 자주성과 주체성을 확립하는 중요한 이데올로기적 수단이 되었다.
1950년대 중반까지 북한의 자립 경제 건설은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유기적 연관성을 전제로 했으나 1957년 경제 자립성을 보다 강화하는 방향으로 인식 변화가 이루어졌다. 자립 경제는 당시 소련과 중국의 내정 간섭에 대한 대응 전략으로 평가된다. 소련은 반제 투쟁, 코메콘 경제 통합 등과 관련해 북한에 정치적, 경제적 압력을 행사했으나 북한은 이에 굴복하지 않아, 민족적 자주성을 위해 경제 발전을 희생시키는 쪽을 택했다. 자력 갱생이 북한 경제 건설의 기본 원칙이 되어,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국제적 분업과 유기적 연관성이 사라지고, 북한 자체의 내적인 유기적 연관성인 내적 분업과 전문화에 기초한 자기 완결적 재생산 구조가 추구되었다. 1960년 중후반 북한의 원자재 부족 현상은 대외 협력 확대를 추구하며, 외화 부족과 같은 현실적 제약으로 자력 갱생을 더욱 강조하게 만들었다.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