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과학 한 미 동맹과 앞으로의 동맹관계의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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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사회과학 한 미 동맹과 앞으로의 동맹관계의 방향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한국 현대사 개인보고서
- 한 미 동맹과 앞으로의 동맹관계의 방향 -
1. 한 미 동맹의 성립과 현재까지의 과정
1945년 일본이 패한 뒤 한반도에는 38선을 기준으로 북측에는 소비에트 연방이, 남측에는 미합중국의 군대가 주둔하게 되었다.
1949년에 미국은 한반도의 문제를 UN에 상정키로 결정한 뒤 주둔군의 철수를 시작하였고, 1949년 6월 29일을 기해 한국의 주둔군은 모두 철수하였다. 이후 1950년 1월 12일의 애치슨 국무장관의 연설에서는 극동지역의 방어선을 설정하였는데, 여기서 한반도는 제외되었다. 그러나 1950년 6월 25일을 기해 북한이 남한에 공격을 시작해 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은 한반도 전역이 공산화 되었을 때의 파급 효과를 염려하여 한반도에 다시 군대를 파견하여 전쟁을 수행하였다.
이렇게 대한한국과 미합중국과의 공식적인 동맹체제는 한국전쟁 직후인 1953년 10월 1일에 한 미 상호방위조약의 체결과 동시에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 동맹관계는 애초부터 미국의 주도로 일방적인 진행이 되었고, 또한 전쟁 직후의 상황으로 국토의 대부분이 황폐화 된 남한 측에서는 미국에 대한 일방적인 의존을 할 수 밖에는 없는 상황이었고, 이 때문에 전시작전통제권까지 넘겨주게 되어 더욱 미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게 되었다. 이후의 이승만 정권은 이런 상황 때문에 미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다.
1961년의 5.16 군사 쿠데타로 등장한 박정희 정권은 ‘정통성’의 문제로 미국과의 마찰이 없잖아 있었다. 게다가 이에 따른 미국에 내정간섭의 움직임에 대한 반발, 이후의 경제적 발전과 관련하여 박정희 정권은 이전까지의 일방적 대미의존 관계에 대한 탈피를 모색하였다. 이때 즈음 하여 월남전이 발발하자 1965년을 기해 한국군도 월남전에 참전하였고, 이것을 계기로 하여 한국과 미국의 안보동맹관계는 종전까지의 일방적 의존 관계가 아닌 상호보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이후에 월남전이 결국에 실패로 끝나자 미국에서는 아시아 지역의 분쟁문제와 관련하여 자국의 개입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수립하고 이 정책에 따라 한국에서도 1971년에 제 7사단의 병력 중 2만여 명이 철수하였다. 이때부터 한국에 대한 무상 군사원조를 삭감하였고, 이로 인해 주한미군의 주둔비용 중 일부가 한국의 국방비에서 지출되기 시작하여, 방위비 분담 관계가 시작되었다.
이를 계기로 박정희 정권은 1970년대 초를 기해 남북한의 긴장 완화를 위한 새로운 대 북한 정책을 추진하였다. 이와 관련해서 유신체제를 구축하였고, 방위산업 육성, 독자적 무기체계의 개발 등 자주국방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고, 핵무기를 개발하려는 시도도 하였다.
이후에 주한미군의 철수를 공약으로 내세웠던 카터가 미국 대통령이 되면서, 1977년에 주한미군의 완전철군계획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이 계획은 남북한의 군사적 균형 문제와 의회 및 군부의 반대로 인해 1978년에 6000여명 수준의 감축에 그쳤고 이 때 이후 한 미 연합사 체제가 발족하였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카터 행정부 이후 출범한 레이건 행정부는 대외정책의 강화를 모색하였고, 이로 인해 한국과 미국과의 안보 유대관계도 강화되어서 한국에 대한 미국의 군사장비 판매와 방위산업기술의 협력이 강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