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I. 서론
소설의 주제
-당신이 말하고 싶은 것, 우리가 듣고 싶은 것
II. 본론
1. 인물과 사건
1) 달콤한 몰락의 고통 : 몽유(夢遊)속의 ‘혁명’
2) 고립, 단절, 어긋난 사랑 : 아미의 ‘높고 거대한 장벽’
3) 존재의 개별성이 무시된 의미 없는 관계 : ‘의사소통이 배제된 섹스’
2. 주제의 형상화(배경) - 분위기, 이미지
1) 분위기
(1) 우울의 분위기
① 공간-집
② 물 (비, 안개, 구름)
(2) 몽환적 분위기
① 꿈
② 시점
2) 이미지
(1) 단절의 이미지
① 벽
② 어둠
(2) 시청각적 이미지
① 시각
② 청각
III. 결론
90년대의 사랑, 그 탈낭만성에 대하여
I. 서론
소설의 주제
-당신이 말하고 싶은 것, 우리가 듣고 싶은 것
비단 소설에서 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 작품의 수용 과정에서, 혹은 더 나아가 광범위한 의사소통 과정에서 ‘주제’를 표현하고 그 주제를 파악하는 일은 단연 중심에 있을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무엇인가를 말하고자 하는 욕구와 무엇인가를 듣고자 (혹은 보고자) 하는 욕구가 소통할 수 있는 경로가 원칙적으로는 ‘주제’에 있다는 것이다. 하여 어떠한 종류의 텍스트라도 각각의 요소들은 스스로 자신의 자리를 빛냄과 동시에 유기적이면서도 효과적으로 주제에 공헌해야 한다. 이것은 마치 “너를 사랑해”라는 구구 절절한 주제를 담고 있는 연애 편지에 DJ. DOC 노래보다는 신승훈 노래의 한 소절이, (군대 간 남자 친구에게 받을 때라는 예외는 있겠으나) 규격 편지지 보다는 꽃 한 송이라도 들어가 있는 편지지가 더 주제를 효과적으로 구현하는 것과 같다 하겠다.
우리가 다루어야 할 소설이라는 대상에 있어서도 ‘주제’는 결국 말하고 싶은 욕구와 듣고 싶은 욕구를 만나게 한다. 허드슨의 말처럼 소설의 주제가 인생이라고 한다면 소설을 통해 작가와 독자는 결국 인생에 대한 사적이면서도 공적인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들이 하려는 말, 인생에 대한 사적이면서도 공적인 대화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까? 브룩스와 웨렌은 주제라는 것은 사상이요 의미이고, 인물과 사건에 대한 해석이며 전체적 서술 속에 구체화된 침투적이고 단일화된 인생관이라고 정의했다. 즉, 앞서도 이야기 한 바와 같이 소설의 모든 요소들은 문장 부호 하나 까지도 소설의 주제에 공헌해야 하며, 더욱이 인물과 사건 및 전체적 서술은 주제의 구체화인 동시에 잘 녹아든 주제를 향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내용형식’이라는 말과도 그 지향을 같이 한다. 어떠한 문학 장르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내용과 형식은 결코 이분화될 수 있는 것이 아닌, 상호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하나의 유기체로 작품을 형성한다는 주장은 결국 ‘주제’의 측면에서 내용과 형식은 (작가의 개성에 따른 차이는 있겠으나) 동등한 무게로 주제에 기여하고 있으며, 주제에는 이 내용과 형식이 분리되지 않도록 유기적으로 연결 해 주는 척추의 역할을 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즉, 주제는 모든 내용과 모든 형식을 아우를 수 있는 그 어떤 ‘하나’ 이어야 한다.
이와 같은 주제에 대한 견해들을 바탕으로 우리는 어떻게 우리가 주제에 닿을 수 있는가를 생각 해 볼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전체 소설을 구성하고 있는 각각의 요소들이자 내용이자 형식인 그 모든 것들이 소설 속에서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는가를 파악함으로써 주제를 읽어내는 방법이다.
본 발표에서는 배수아의 를 통해 작가가 어떠한 방식으로 ‘주제’를 형상화하고 있는가를 소설의 각 구성 요소들을 통해 읽어내는 과정을 보여주고자 한다.
II. 본론
90년대 인물들, 사랑을 말하다.
배수아 소설 속에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 불행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독자의 입장에서 그들은 분명 불행하다. 하지만 그들 스스로는 그런 불행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이 오히려 그들을 불행하게 비추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고독과 외로움에 익숙해진 배수아의 인물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아무런 의미도 되지 않기 때문에, 이선옥. 「올바른 여성 문학의 정립을 위하여: 가족, 그 영원한 안식처에 대한 도전-이혜경, 윤영수, 배수아의 작품을 중심으로」. 『여성과 사회』. 1996
서로가 서로를 표면적으로 대하기 때문에 사랑하지 못한다. 사랑의 전제가 되는 타자성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존중이 깔려 있지 않기 때문이다. 김미영, 「질주하는 양철북의 후예들, 그 우울한 풍속화」,『문예중앙』 1998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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