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0년 간 추진된 북한의 통일 정책은 상황과 전개 양상에 근거하여 다음과 같이 5시기로 구분 될 수 있다.
1.무력통일시도기(1945~1953년)
이 기간 북한은 냉전 고착화의 국제환경, 주한미군 철수 및 남한군사력의 미약, 북한의 정치 경제적 체제정비 및 군사력의 대남 절대우위 확보 등 3대혁명역량의 전반적 강화 상황 가운데 무역통일을 준비 시도하였다. 이시기 북한이 선택한 통일관 및 통일정책은 다음과 같다.
첫째, 1948년 9월 10일 최고인민회의 제1기 제1차회의에서 당시 내각수상인 김일성은’ 민주주의 자주독립국가‘ 건설을 위한 내각정강을 발표하였는데, 첫째 항에서 분단 지속의 원인으로 ’미국의 장기주둔‘을 거론하고, 외국군대의 철수를 실천하기 위해 투쟁할 것임을 주장했다.
둘째, 북한은 통일방침으로서 ‘자주성’을 강조하는 을 주장하였다. ‘자주성’에 기초하여 통일한다는 것은 외군 철수와 더불어 ‘통일문제 해결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들을(외국의 간섭 없이)조선인민 자신의 힘으로 풀어간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셋째, 북한은 ‘새 조선건설’(한반도에서의 공산국가건설)을 목표로 하는 통일노선으로서 노선을 제시하였다. 노선은 1945년 10월 10일 북조선공산당 중앙조직위원회 창립대회에서 채택되었고, 1948년 8월 29일 북조선공산당과 조선신민당 합동의 북조선로농당 창립대회에서 보다 명확하게 제시되었다.
①‘미제의 남조선강점으로 말미암아 전국적으로 혁명을 밀고 나갈 수 없게 된 조건에서 ...항일무장투쟁시기에 이룩된 혁명근거지 창설방침을 ...새로운 정세에 맞게 발전시킨...로선’
② ‘미제의 침략에 대처한 반제반미투쟁로선이며 나라의 북반부를 강력한 혁명지기로 꾸리고 그에 의거하여 조선인민이 자체의 힘으로 미제를 남조선위에서 몰아내고 조국의 통일과 혁명의 전국적 승리를 이룩하려는 주체적이며 자주적인 로선’
넷째, 북한은 노선에 기초한 통일전력으로서 사업과 무력통일 전략을 선택하였다. 그는 당시 한반도의 사회상황을 봉건적 잔재를 다분히 가진 식민지 사회로 규정하고, 이의 타파를 위해 반제봉건민주주의혁명수행과 민주주의인민공화국창건을 양대 과업으로 하는 조선혁명을 주장하였다.
다섯째, 남북한에 별개의 정권이 수립된 이후 북한은 통일방안으로서 주한미군 철수를 전제로한 ‘남북한 총선거’ 또는 ‘남북한 국회연합’을 제시하였다. 1949년 6월 28일 결성대회에서 북한은 통일방안으로서 선 주한미군 철수 및 유엔조선위원단 해체, 후 남북한 자유총선거 실시와 전조선입법기관 수립등을 포함한 8개항의 통일방안을 채택하였다. 북한의 ‘남북한 총선거’ 통일방안은 당시 남북한의 ‘북한만의 총선거’ 통일방안과 대립되는 것이었다. 한편 동년 6월19일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와 남조선국회를 단일한 전조선립법기관으로 련합하는 방법으로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실현할 것을 주 내용으로 하는 ‘평화적 조국통일추진에 관하여’라는 결정서를 채택, 한국 국회에 제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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