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문화 본 논문에서 “표현문화”라는 말의 의미는 문서, 사진, 영상 및 기타 자료를 통하여 직접 체험하고 확인할 수 있도록 표현되는 문화적 현상들만을 분석의 대상으로 한정하기 위하여 사용된 단어인 것이다.
를 중심으로 본 한국교회 평신도 신앙의식 연구 -해방 이후를 중심으로-
서론
이 글의 시발점 중의 하나는 생활사에 대한 새로운 관심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우리가 관심하는 교회사의 영역에서는 물론이거니와, 일반 사학계의 경우에 있어서도 현대 한국인의 생활사에 대한 관심과 기록이 부족했음은 한국교회사학계와 마찬가지이다. 강준만은 의 머리말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전18권)을 쓰면서 우리가 대중의 생활이나 일상적 삶의 기록에 매우 인색하다는 걸 절감했다. 그런 기록은 매우 희소했고, 대부분의 기록이 정치 중심이었다. 생각해 보니 지금도 우리는 생활 기록을 잘 하지 않는다. 신문이나 잡지가 잘 기록하고 있지 않느냐는 반문도 가능하겠지만, 그런 식으로 따진다면 모든 기록은 신문 잡지가 도맡아서 하면 되지 굳이 역사 연구를 따로 해야 할 이유는 무엇이냐는 재반론도 가능하지 않겠는가.
... 그렇다고 해서 이런 주제들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다. 사회를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있어서 공식 거대담론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갖기도 한다. 강준만, , 서울: 인물과사상사, 2006, p. 4.
이문장은 한국 상황에서 일상의 신학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한국 신학의 방향을 잡기 위해 고심하는 신학자들은 아직 한국 교회 일반 성도들의 차원에서(이미 토착화되고 상황화되어) 자리 잡고 있는 한국적 기독교의 실체가 규명된 적이 없다는 사실에 주목하지 않으면 안된다. 토착화 또는 상황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등장하기 이미 오래 전에 복음은 성도들의 차원에서 토착화되고 상황화되었다는 말이다. 이것을 한국식으로 표현하자면, 이미 성도들은 그들에게 전해진 복음에 대해 각자 알아서 이해하고, 알아서 은혜받고 있었다는 것이다.
한국 신학자들이 간과한 것은 성도들이 각자 알아서 이해하고 은혜 받고 있는 내용이 무엇인지 들여다본 적이 없고, 그것을 신학적 탐구의 대상으로 삼은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단지 임상적으로 한국교회 성도들이 기복신앙을 가지게 된 현상을 나무라고 꾸짖는 정도의 일차원적인 반응만 보였지, 그것이 한국적 이해의 형성과 관련이 있는 해석학적 현상임을 직시하고 그 실체를 규명하는 단계로까지 들어가지 못한 것이다. 이문장, “한국 신학, 어떻게 할 것인가”, 이문장 앤드류 월스 외 지음, , 파주: 청림출판, 2006, pp. 235-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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