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론
사무엘상은 사사 통치 체제로부터 왕이 통치하는 ‘왕정 체제’로의 전환을 다루고 있다. 물론 여기서 지향하는 왕정 체제란 단순히 이방 국가의 그것처럼 전제 군주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구현되는 신정적 군주제를 말한다. 이 점에 있어서 사울의 왕정은 실패로 끝났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 다윗이 신정적 군주정치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사울 왕의 죽음으로 끝나는 사무엘상은 곧 다윗의 오랜 도피 생활이 마감되었음을 뜻하고, 나아가 이제 다윗의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할 시기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사무엘하는 다윗의 등극으로부터 시작하여, 그의 영도하에 이스라엘 왕국이 굳게 다져지고 견고히 세워지는 과정이 서술되어 있다.
사무엘상 27장
사무엘엘상 27장에는 다윗이 자기 목숨을 노리고 있는 사울을 피해 블레셋 땅으로 도망치면서 한 지역에 정착하는 모습을 기록을 하고 있다. 이러한 행동은 사울의 변덕에 언제 피해를 당할까 하는 다윗의 판단이다.
1. 다윗의 블레셋으로의 피신 (27장 1~7)
다윗을 따르는 지지자가 육백 명이었다. 이는 당시의 상황으로 20세 이상의 전쟁이 가능한 장정으로 보고 있을 때, 그들의 식구들 까지 합하면 3000명은 되었을 것이다. 이들의 안전은 다윗으로서는 중요한 일이었다. 다윗은 급기야 블레셋 땅 가드로 도피하게 된다(1-4절). 여기서 이스라엘을 싫어하는 아기스가 다윗을 반가이 영접한 것은(5-6절)은 의아심을 갖게 된다. 우리는 몇가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시간도 어느정도 지났고, 다윗은 사울에게 오랜 시간 쫒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과, 아기스는 다윗이 자신의 백성을 많이 죽여서가 아니라 옆에 있다가 자신을 죽일까라는 의심이 있었던 것이다.
아기스가 다윗을 반가이 받아 들인 이유는 군사력의 확장의 이유도 있었다. 그러므로 다윗을 용병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다윗이 가드에서 머물지 않고 시골로 가는 이유는 신앙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수도인 가드는 우상숭배가 극정하던 곳이기 때문이다.(5:1-9) 또한 가드에 있게 된다면 피하는 이유가 아닌 아기스와 손을 잡고 사울에게 등을 돌리게 되어 보일수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2. 블레셋에서의 다윗의 전쟁과 아기스와의 관계(27장 8-12)
다윗이 시글락에서 그술 사람, 기르스 사람, 아말렉 사람을 침노하여 남녀를 몰살하고 가축과 옷도 약탈했다. ‘그술사람’은 요단강 동부(신3:14)와 가사 부조에 분산되어(신3:14) 거주한 족속으로 생각된다. ‘기르스 사람’은 블레셋과 이스라엘의 경계에 위치한 게셀의 주민으로 생각된다(Ewold). 이들 족속은 이스라엘의 대적으로 진작에 멸졀되어야 마땅했다. (창 15:16-21참조). 즉 다윗은 그들이 디스라엘 백성을 괴롭혀 왔기 때문에 진멸했던 것이다.(keil).
다윗은 아기스에게 보고하기를 그가 공격한 것은 자기 족속인 유다나 여라무엘이나 겐 사람이라 했다. 이러한 거짓말로 블레셋 사람들은 더욱 그를 총애했으며 그가 진실되고 충성된 신하라고 믿게 되었다.(1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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