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방법론] 선교부 문서의 유용성과 한계
1. 들어가며
사료는 “인간의 존재에 의해서 생기는 일체의 흔적으로, 역사적 현실의 일부, 인간의 관념 형태의 일부를 이루고 있었던 것이 물적인 모습으로 남겨진 일체의 것이다.” 太田秀通, 『歷史科學論』방기중 譯, (서울: 총아출판사, 1985) 73.
역사는 사료 없이 쓰일 수 없다. 역사에 있어서는 사료만이 진리라고도 한다. 사료 없이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는 것이 역사의 특징이기도 하다. 사료 없이 아무 말도 못하는 것이 역사의 약점이기는 하지만 사료에 근거해서 말하는 것이 역사의 강점이기도 하다. 과거의 사실 중에 사료로 남아 있는 것이 일부에 지나지 않고 또 그 사료마저 기록한 사람의 편견과 좁은 안목 때문에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제한된 범위 안에서 만이라도 근거를 가지고 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李成茂, “한국사연구에 있어서의 史料와 實證” 91호 (1995, 12) 169.
역사가는 역사연구를 통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미래에 후대의 연구가들이 사용할 사료를 결정한다. 즉 현재의 역사연구는 현재와 미래의 이해방식을 규정할 뿐 아니라, 미래의 역사연구-그 방향과 사료-를 규정한다. 그것은 현재의 역사 연구의 추세와 맥락에서 미래의 사료가 선별 보존되기 때문이다. 역사의 풍파를 견디고 살아남은 기존 기록의 연구만으로도 역사연구는 가능하다. 만약 생존하고 있는 기록이 불충하고 미비하다면 그 역사 역시 빈곤하고 부실한 역사가 될 수밖에 없다. 역사가가 수많은 기록과 사건 중에서 선택하여 역사서술의 자료로 사용된 것은 이제 역사에 영원히 남는 사실이 된다. 전명혁, “기록과 역사-역사서술에서 기록물과 사료, 역사이론의 관계” 11호 (2005,4) 133-34.
그렇기에 역사는 중립적이고 불가피한 기술적 변화의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인간의 가치가 적극적으로 개입되는 과정이며 이와 같이 역사가 스스로가 지니는 가치나 태도들을 명확히 밝힘으로써 오히려 객관성이 확보될 수 있는 것이다. 김경일, 『E.P. 톰슨의 사회사와 계급이론』, 『사회사연구의 이론과 방법』, 한국사회사연구회 논문집 제10집, 1988, 137-38. 전명혁 위의 글에서 재 인용
최석우는 일찍이 한국 교회사의 서술의 역사를 개관하며 “이제 한국 교회사의 연구도 국산 벽돌로 바꾸어야 할 때가 왔다” 최석우, “韓國敎會史는 어떻게 敍述되어 왔는가” 34호 (1974,7) 14-15.
라고 장래의 희망을 표명했었다. 그것은 한국교회사 서술의 토착화를 이루기 위한 그의 바램이었다. 그는 또 다른 글에서 그의 스승이었던 에딘(H. Jedin) 교수의 글을 인용하였는데 “어떤 장소에 차곡차곡 쌓아 올린 벽돌들이 있다. 그 벽돌들은 아직은 집의 벽들이지 집 자체는 아니다. 집을 지으려면 지을 집의 사용 목적에 따라 그려진 건축 설계와 도면이 필요하다. 이와 같이 쌓아 올려진 자료들이나, 일련의 사건의 서술까지도 아직은 벽돌에 지나지 않는다. 거기에 구세사적인 해석이 기초로 놓여 있을 때에만 교회사는 가능하고, 그래야만 진정한 교회사이다.” 최석우, “교회사 연구와 교회사 서술의 문제” 23집, 7.
이처럼 역사와 신학의 교집합인 교회사 서술에 있어서 자료는 끊임없이 교회사가들이 교회사를 서술해 감에 있어 범위를 설정하고 그에 맞는 자료를 수집하며 또한 그것을 평가하고 분류해 내어 보전해 가고 활용해 탁지일, “역사기술을 위한 사료 정리” (6권 제1호 2007) 261.
가야하는 짐이며 또한 힘이다.
본 발제에서는 한국 교회사에 있어서 첫 삽을 푸고 주춧돌을 놓아갔던 선교사들이 우리에게 남기고 난 자료이며 유산인 선교부 문서의 유용성과 한계를 짚어보고자 하는데 이미 우리에게 통사뿐 아니라 많은 선배 학자들의 글을 통해 풍부히 사용된 선교부 문서의 유용성 보다는 한계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추어 본 발제를 진행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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