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반세기만의 도약으로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라왔다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부하고 있다.
하지만 이 땅, 이 나라 백성들은 지난 4천년간 절대군주의 체제하에서 살아왔다. 물론 다른 동양권 국가 모두가 마찬가지 이지만, 백성이 나라의 주인이 된 적은 없었던 것이다.
그런 이 땅의 백성들에게 조선 말기 외세의 침입에 맞서 우리의 자주적인 근대국가 설립을 위해 반상타파 문벌개혁 이라던가 하는 것도 역시 하루아침에 심어지는 것도 아니고 일본제국의 강점 하에 지배를 당하던 버릇도 하루아침에 미군의 주둔 하에 제퍼슨식 민주주의가 심어질 일도 없던 것이다.
그런 대한민국은 정부 수립 초기에 역시나 수많은 독재 권력이 국민들의 무지 하에 탄생하게 되었으며 이것은 지금까지도 잔재가 남아있는 대한민국의 살아있는 사실인 것 이다.
하지만 그런 부정적인 시각도 많은 반면 긍정적인 면도 많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반세기라는 짧은 시간 속에 세계적인 수준으로 도약했다는 평가를 세계의 석학들로부터 듣고 있다. 더군다나 무소불위의 독재정권에 맞서 민중들의 힘으로 자유와 민주를 쟁취했다는 점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국민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민주주의라는 것을 올바르게 사용하고 있는가? 민주주의라는 것을 자유와 방임만을 생각하고 책임이란 것은 생각하지 않고 있는가? 민주주의의 폐단이라고 할 수 있는 책임감 상실이라던지 개인주의의 만연 등이 지금 대한민국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2. 한국 민주주의의 성과와 한계
2.1 건국과 4.19
1945년 8월 15일 식민조선은 태평양전쟁에서 패전한 일본제국으로부터 해방되었다. 그것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첫 발걸음을 내 딛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첫 발걸음부터 짙은 수렁에 빠지고야 말았다. 연합군으로 부터의 대한민국의 지위는 일본으로부터 독립한 국가가 아닌 일본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식민지]였을 뿐이다. 그 이유는 간단명료했다. 식민지가 된 조선을 대표할 망명정부가 없었다는 것이다. 임정의 요인들은 임정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망명정부라고 외쳤지만, 연합군의 주장도 억지는 아니었다. 분명 대한제국은 침공으로 인한 점령이 아닌 정식 외교문서(그것이 협박이건 아니건 간에 양국의 대표가 체결한다면 그 문서는 신이 될 수밖에 없다)에 의한 합병이란 수순을 밟았고. 합병직후 망명정부가 설립되지도 않았고, 대한제국의 주요 요인들이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시점 에서는 임정이 사회주의 계열과 단절된 상태였기 때문에 연합군의 주력 미군입장에서는 여러 정파를 아울러 대한민국에 민주주의를 심어야 했기 때문에 임정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물론 미군정은 소비에트와의 계속되는 의견충돌로, 물론 그 전부터 공산주의 체제를 반대하긴 했지만 동아시아에서의 지배권 획득을 위해 노골적인 지하 공산체제탄압과 친미적인 인사들을 지원하고 있었다.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이 이승만 이었다.
김구를 비롯한 민족주의자들은 미군정의 정책에 대해 상당한 유감을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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