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석헌/ 친일경찰-
1.함석헌
해방 전후사의 인식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 한 사람을 골라 그에 대해 자세히 조사하라는 과제가 주어졌을 때 저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등장하는 인물 모두 한 시대를 풍미한 사람들로 각각의 독특한 특성을 지닌 인사들이어서 선택하기가 매우 어려웠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인물들의 명단 중에서 ‘함석헌’이라는 상대적으로 생소한 이름이 보였습니다. 함석헌에 대해 제가 기억하는 것은 예전 초등학교 시절, ‘다큐멘터리 성공시대’ 라는 프로그램에서 그의 인생에 대해 방영한 적이 있는데 그 때 얼핏 노벨상 후보로도 추천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생각이 떠오르자 이왕 하는 것 생소한 인물에 대해 알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저는 ‘함석헌’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조사를 하다 보니 사실 ‘한국의 간디’ 라 불릴 정도의 인물이고 씨알이라는 철학적 사상을 정립하기까지 했는데 다소 과소평가된 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를 알고 나니 간단하게 인터넷의 자료를 찾는 것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고 철학과 학생으로서 그의 사상을 보다 심도 있게 조사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함석헌 선생에 대해 참고문헌을 통해서 생애/사상/역사관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1) 생애(1901∼1989)
함석헌은 평북 용천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적 그의 가정적 배경은 굉장히 독특해서, 전통적인 한문학과 서양학을 동시에 익힐 수 있었다. 1919년 관립 평양고보 졸업반 때 3.1만세사건에 적극 참여한 후 3.1만세사건에 참여한 잘못을 뉘우치라는 학교당국의 반성문 제출조건을 거부하고 자퇴하였다. 그 후, 평안도 정주에 남강 이승훈 선생이 설립한 오산학교에 편입하여 남강 이승훈과 다석 유영모를 만나 새로운 길을 걷게 되었다. 오산학교에 다니면서 보다 폭넓은 공부를 학고 싶었던 그는 일본 동경사범학교에 입학하고, 동경 유학시절 우찌무라 간죠의 무교회 성서연구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를 통해 그는 본격적으로 ‘기독교’, 그중에서도 퀘이커 교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1928년 귀국 후에는 모교인 오산학교에서 역사교사로 강단에 섰으며, 1933년 를 집필하였다. 그는 일제 강점기 여러 차례 감옥생활을 경험하였으나 감옥을 인생대학이라고 스스로 생각하였다. 이러한 그의 사상을 구성하는 세 가지 핵심은 민족, 종교, 과학으로, 민족사랑, 진리사랑, 이성적 사고를 강조하였다.
조국해방 후, 해방정국에서 함석헌은 평북문교부장관에 추대되었으나 소련군에 의해 수감되었고 1947년 남하하였다. 여기서 1950년 6. 25한국전쟁을 계기로 함석헌의 사상은 껍질을 벗고 근본적인 깊이와 높이를 더하게 되었다. 그의 사상의 밑바탕에는 늘 성서사상 곧 기독교적인 요소가 있으나 정통주의 기독교의 교리주의나 형식주의에 반대하고 노장사상, 공맹사상, 화엄사상 등에도 깊은 종교적 진리와 구원의 지혜가 있음을 인정하고 공동으로 평화운동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남하한 후 함석헌은 자유당정권, 군사정부치하에서 민주주의 운동, 인권운동측면에서재야의 중심인물로서 시민운동의 최전선에서 활동하였다. 비폭력주의를 내걸어 ‘한국의 간디’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것도 이 당시의 일이다. 1970년부터는 월간 를 창간하여 그의 독특한 씨알사상을 본격적으로 서술하기 시작했고, 1976년 소위 명동 3.1 사건에 참여하여 윤보선, 김대중, 정일형, 윤반웅, 문익환, 안병무, 이문영 등 여러 사람과 함께 민주수호 양심세력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함석헌은 종교시 300여편을 남긴 탁월한 종교시인이며 문필가였지만, 그의 핵심은 행동하는 지성인, 진리구도의 종교사상가, 거짓과 비겁에 저항하는 시대의 양심이었다. 그의 중심사상은 씨알사상으로 대표되는데 씨알은 민중 중에서도 순수한 사람됨을 지향하는 순수 우리말 표현이다. 그의 역사관은 영웅사관이거나 유물사관이거나 유심사관이 아니고, 역사의 담지자의 주인은 씨알이다.고 보는 민중사관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1989년 8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총체적으로 볼 때, 함석헌은 개신교가 한국에 전래된 후, 주체적으로 기독교 신앙을 소화 흡수하여 동양의 고전과 대화시키면서 독창적이고 토착화된 기독교 사상을 이룩하였다. 그는 역사를 가르친 교육자였고 인생의 진리를 추구한 종교사상가였으며 언론인이면서 민주인권운동가였다.
(2) 사상 (씨알사상)
함석헌의 사상의 첫 번째 중심은 씨알사상이다. 일단 씨알은 민(民), 즉 민중의 순수한 우리말이다. 그러나 씨알을 정의내리는 것은 매우 어렵다. 학문적으로 명확한 정의가 내려져있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씨알은 "모든 자람의 끝이면서 동시에 모든 형상의 어머니" 라는 함석헌 선생의 말이 있듯이, 씨알사상은 씨알(민중)각자의 나름대로의 이해에 따라 달리 해석되는 만큼 씨알사상에 대한 획일적 답안은 없다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과거에 행해졌고, 지금도 행해지고 있으며 미래에도 행해질 그 시대의 민중들의 삶 자체. 그것을 씨알로 보는 것이 가장 적합할 것이다. 이러한 씨알사상은 고난사관과 맥락을 같이 한다. 우리민족은 동아시아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험난한 삶을 살아왔다. 이러한 고난 속에서 민족과 나라를 지켜낸 것은 소수가 아니라 다수의 민중 즉 씨알이다. 씨알이 민족의 삶을 지탱하고 이끌어온 민족의 실질적인 주체이다. 또한 민족의 고유성을 지켜 온 것도 소수의 지배계층이 아니라 다수의 씨알이다. 여기에서 씨알사상이 출발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관은 일제 치하에서 피폐해져가는 우리 민족의 가슴에 한줄기 희망이 되어 주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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