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속의 인간 심리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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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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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사회복지학 개론
스크린 속에 비춰진 인간의 심리
스크린 속에 비춰진 인간의 심리의 저자는 이 책을 펴낼때 3가지 이유를 제시했다. 첫째는 일반인들이 부담없이 읽을수 있는 심리학책을 쓰고 싶어서다. 심리학이란게 많이 난해한 인상을 주기 때문에 영화라는 소재를 삼아 부담덜어 엮은 책이다. 두 번째 이유는 영화평론가나 비평가들이 심리학적 영화를 정신분석적으로 풀이하기 때문이다. 심리학은 정신분적학 보다 훨씬 더 포괄적인 개념이며 인간 이해에 있어서 과학적 방법을 견지하는 학문이라고 설명한다. 세 번째 이유는 심리학 강의나 수업에 유용한 쓰임을 주고싶어서 이다. 그로인해 심리하에 한발짝 더 다가가는 계기를 주고 더 쉽게 느낄수 있게 도움을 주고 있다.
▲굿 윌 헌팅
빈민가의 고아 윌 헌팅은 MIT 대학의 청소부이다. 자신을 괴롭힌 사내를 폭행해서 징역형을 선고 받아야 하지만 수학천재임을 안 램보교수가 수학공부와 심리치료를 받는다는 대신으로 판사로부터 집행유예를 받아낸다. 수학천재인 윌은 하버드 여대생 스카일라와 사랑에 빠진다. 램보교수는 옛친구이자 심리학 교수인 숀 교수 에게 윌을 부탁한다. 하지만 윌은 자신이 좋아하는 수학공부에만 열중할 뿐이지 심리치료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더러 윌은 양아버지로부터 학대와 수차례 고난과 버림받고 자랐기 때문에 누구에게든지 쉽게 마음을 열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둘은 잦은 충돌만이 있을뿐이다. 그런데 숀 교수 역시 부인과 사별하고 가슴아픈 이별의 이야기를 듣고 그사실을 안 윌은 그를 이해하고 서로의 마음을 열어가기 시작한다. 램보 교수는 윌은 하고싶은 일을 할수 있는데로 도움을 주었지만 아직 인생에 자신이 없는 윌은 스카일라의 사랑을 안받아 주자 상처받은 스카일라는 윌을 떠나 버렸다. 윌은 숀교수 품에 안겨 눈물을 하염없이 흘린다. 그리고 곧장 스카일라를 찾으러 떠난다. 이렇게 영화가 막을 내린다. 이영화는 윌과 스카일라의 사랑을 다루는게 아니라 윌과 숀 교수의 마음에 상처있는 그들이 서로를 이해한다는 점이다. 상처받은 그들은 쉽게 마음문을 열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상대방의 망므을 이해하긴 어렵다. 이해는 경험에서 비롯된다. 자신이 먼저 아픈 경험이나 이별의 슬픔을 겨어 봐야 타인의 마음을 이해할수 있지 경험하지도 안았는데 애써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 하다고 생각한다. 윌과 숀 교수도 마찬가지다. 서로에겐 마음의 아픔이 있었고 상처가 있었다. 그래서 인지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다.
▲인생은 아름다워
레스토랑 웨이터인 귀도는 미모의 교수 도라와 우연을 가장한 만남을 연개했다. 도라는 물론 약혼남이 있었고 결혼식날 도라는 귀도와 함께 말을 타고 도망친다 . 그들은 결혼하여 아들 조수아를 낳고 서점을 꾸려가며 행복하게 지낸다. 그런데 어느날 유태인들이 강제 수용소로 끌려가게 되었다. 물론 귀도도 유태인이 였기 때문에 아들 수아와 함께 끌려간다. 도라는 유태인이 아니지만 자원하여 함께 수용소행 기차에 오른다. 아들 조수아는 수용소를 모른다. 그냥 의아해 할 뿐이고 신세계를 만난듯 하며 호기심에 가득찼다. 귀도는 수용소를 수용소라고 하지 않는다. 수아에게 이곳은 좋은 곳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수용소에서는 가티 이으나 만날 수 없는 아내 도라에게 어떤식으로든 애정표현을 하는 귀도. 세식구는 여러 위기를 만나지만 요령껏 다 피해다닌다. 독일이 패망했다고 소문이 돌며 수용소가 혼란스러워 질때 귀도는 탈출하기 위해 아내를 빼내려다 독일군에게 잡혀 사살되고 만다. 결국 수아와 유태인이 아닌 도라는 품에 안기며 영화는 끝이 난다. 이영화에서 귀도는 너무나 낙관적인 모습을 보이며 가족들을 지켜내려 한다. 절망적인 상황이 닥쳐와도 삶을 져버리지 않고 꿋꿋이 버텨낸다. 그가 용기와 품위를 잃지 않고 꿋꿋하게 버텨내 이유가 이다. 그건 삶에 대한 의미를 정확히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삶에 대해 무엇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느냐가 중요하다. 귀도의 삶에 대한 이런 힘들은 어디서 나왔나면 낙천적인 생각에서 나온 힘이라고 생각한다. 간단하게 말하면 긍정적이고 항상 밝은 생각을 가지는 것이다. 고통과 죄악 그리고 희망이라곤 찾아볼수 없는 비극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해 예스라고 말 할수 있는 낙관성을 중요시 한다. 귀도는 가장 비참한 상황에서도 삶이라는 잠재력으로 의미있는 것이며 인간을 부정적인 삶을 역설적으로 변화 시킬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다.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고려하는 것이 낙관적인 것이다. 그렇게 떄문에 낙관주의자들의 긍정적인 생각 덕분에 비관주의자들에 비해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더욱 건강하다. 비관주의 자들이 어려운 상황에 부딪히거나 역경이 있을때 그 문제를 부정하려 하거나 회피하려 한다 비관주의자들이 항상 하는 말이 불평불만이 가득한 말, 암울한 미래를 암시하는 말, 타인을 험담 하거나 심각한 표정만을 짓고있다. 그들은 항상 그 자리에 머물 수밖에 없다 이에 반해 낙관주의자 들이 큰 어려움이나 고난이 닥쳐와도 그문제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차근차근 해결해 나가는 것이다. 이들의 긍적적인 말들을 보면 상황을 유리하게 해석하는말, 희망이 가득찬 말, 타인을 칭찬하는 말과 항상 웃는 얼굴이다. 따라서 언어습관이나 사상을 변화시킨다면 낙관주의자가 되는 일은 어려운 일이 결코 아니다. 반면에 나는 무엇인가 생각해본다. 나는 비관적인가, 아니면 낙관적인가? 나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미지근한 물처럼 그 한 가운데 있는것 같다. 하지만 이런 말 또한 낙관적이지 못하기 떄문에 이제는 변화를 주어야 할때가 된것 같다 윤대선의 인생은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