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 히로시마 - 히로시마의 비극과 소외된 사람들
히로시마의 비극과 소외된 사람들
히로시마에 핵폭탄이 폭발한지 벌써 70년이 지났다. 『1945 히로시마』, 이 책은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되면서 그곳에 있던 시민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생생하게 그렸다. 특히 책의 저자인 존 허시는 여섯 명의 생존자들이 겪은 충격적인 체험들을 다룸으로써 그날 있었던 일들을 기술하고 이를 독자들이 체험할 수 있게 하였다.
그런데 책에 소개된 여섯 명은 군인, 정치가, 영웅도 아니었으며 그렇다고 해서 당시 시대를 비판하는 깨어있는 시민도 아니었다. 단지 폭격을 받지 않았던 운이 좋은 도시에 살아가던 사람들이자 평범한 노동자, 종교인, 의사들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 운이 좋은 도시에 살았다는 이유로 인해 그들이 겪은 ‘핵폭탄’이라는 지옥은 너무나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이 책에는 반전·반핵과 같은 평화주의적 메시지는 직접 표현되지는 않았다. 다만, 히로시마에 있었던 끔찍한 상황들 속에 살아남기 위해 분투한, 정말 날것 그대로인 사람들의 모습을 담았다. 책에서 히로시마의 사람들이 가족을 잃고, 찾아 헤매는 것과 힘든 상황 속에서도 서로를 돕는 모습은 슬픔과 감동을 하게 한다. 하지만 천황의 발표가 있기 전까지 패전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과 천황을 향한 광신도적인 피폭자들은 읽는 내내 나에게 의아함과 섬뜩함을 자아내기도 했다. 책을 마지막까지 읽은 우리는 여기서 질문을 가짐과 동시에 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왜 전쟁이 일어났으며, 이로 인해 수많은 목숨이 사라져야 했는가를. 그의 무의미함과 비정당성을.
이렇게 거창하게 쓰긴 했지만, 솔직히 책을 읽으면서 나는 양심이 찔렸다.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있었던 핵폭발을 바라봄에 있어 저자의 관점과 나의 관점은 분명히 다르기 때문이다. 나에게 있어 핵폭발이라는 일본의 비극은 두 가지의 의미를 지녔다. 하나는 일본이 여러 나라에 못된 짓을 했으므로 마땅한 대가를 받았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한국의 자주적인 광복 계획을 엎은 시기상조의 안타까운 사건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내의 생각에서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있던 사람들의 죽음과 고통은 단지 77만이라는 통계적인 숫자에 불과했다. 책을 덮으며 아태전쟁, 2차 세계대전이라는 커다란 역사적 틀만 보았을 뿐, 은연중에 그 역사 속에 존재하고 살고 있던 사람들을 지나친 나의 편협한 관점에 대해 반성하였다. 물론, 나의 맹목적인 반일감정과 민족주의식 사고도 서서히 고쳐나가야 함이 분명하다.
1945년 8월 6일을 기점으로 책에서 등장한 여섯 명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그들은 원폭으로 인해 주변인들이 죽고 자신도 다치는 끔찍한 경험을 겪었다. 그리고 원폭 후유증인 피폭, 출혈, 빈혈, 무기력증, 우울증 등 수많은 병이 그들의 몸을 갉아먹었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원폭 1세이기 때문에 복지 지원을 받았다는 점이 있다는 정도일까.
그런데 이들 여섯 명의 끔찍한 경험담이 담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무엇인가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있던 조선인, 이들은 어떻게 된 것일까. 『일본인 학자가 본 제주인의 삶』을 보면 생계를 위해 도일을 하였던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일제 말기는 본격적인 수탈이 시작됐을 때이기에 전국적으로 생계형 도일을 선택한 사람들이 있었을 것으로 예상한다. 그리고 일제강점기인 당시 상황을 고려해보면 일제의 강제징집으로 징용·징병되어 일본에 머문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여러 이유로 도일한 조선인들 가운데, 일부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있었으며, 이들이 원폭의 피해를 받았을 것은 충분히 예상되는 바이다. 따라서 『1945 히로시마』에서 역사의 거대한 흐름 아래 가려진 일본에 있던 소시민을 다루었다면, 나는 이 책에서 다루지 않은 피폭 조선인에 대해 더 얘기해보도록 하겠다.
일본 내무성 경보국(警保局)이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1945년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으로 인해 두 도시에서 죽거나 다친 사람은 약 77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이 중 10만 명에 달하는 사람이 징병·징용으로 끌려가거나 생계로 인해 도일한 조선인이었다. 조선인 중 5만 명이 현장에서 사망하였고 4만3000명은 조선으로 돌아왔으며, 7,000명은 일본에 남았다.
여기서 히로시마에서만 조선인 3만 명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었다. 한반도의 다사다난했던 역사 중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죽은 날이 있을까. 내가 알기로는 없다. 이처럼 원폭 투하는 일본 못지않게 우리 역사에도 지울 수 없는 상흔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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