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극-‘ 아는만큼 즐긴다.’
경극이란?
중국의 대표적인 전통연극으로써, 베이징[北京]에서 발전하였다 하여 경극이라고 하며, 서피(西皮) ·이황(二黃) 2가지의 곡조를 기초로 하므로 피황희(皮黃戱)라고도 한다. 14세기부터 널리 성행했던 중국 전통가극인 곤곡(崑曲)의 요소가 가미되어 만들어졌다.
경극이란 양자강 연안 지방에서 시작되어 북경에서 완성된 예술의 한 장르이다. 서양에서는 이것을 Beijing Opera라고 부르고 있어서 이것을 음악의 한 장르로 간주한다. 그러나 경극은 서양의 오페라와는 다른 여러 가지 면이 있다. 중국에서는 경극을 희곡(戱曲)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관극하는 것을 청희(聽戱)라고 한다. 이것은 보는 것 못지않게 듣는 것도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극은 중국에서 영향력이 가장 크고 가장 대표성을 띤 극의 종류이다. 경극의 전신은 휘조(徽調 : 안휘성에서 유행되던 곡조)인데 통칭 피황극(皮黃劇)이라 부른다. 한때 평극(平劇)이라고도 불렀다가 후에 경극으로 고쳤는데 약 2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청조 건륭 시기에 휘조가 북경에 진입해 곤강(昆腔 : 하북 북경 일대에 유행했던 곡조)과 진강(섬서성 일대에 유행했던 곡조)의 극내용, 음악곡조, 표현방법 등에서 부분적으로 수정하여 발전한 것이다. 표현 면에서 춤과 노래가 동시에 진행되고 기교가 있으며 허의성(虛疑性)의 동작을 많이 사용하여 강렬한 인상을 준다. 경극은 극본 연기 음악 노래 소도구 분장 의상 등의 예술적 요소를 다채롭게 결합한 총체적 예술인 동시에, 서양의 공연예술駭?달리 이러한 다양한 예술적인 요소를 사실적이 아닌 상징적 원리 아래 세련시켰다는 점에서 최고의 약속적 예술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희곡은 극도로 양식화되어 있고 지키고 따라야 할 요소가 많다. 우선 창(唱, 노래), 과(科, 연기), 백(白, 대사)의 삼위일체를 요구하면서 춤이 곁들여지는 것이 특징이다. 경극은 중국의 전통적인 음악, 노래, 낭독, 춤, 서커스, 무술 등을 교묘하게 융합시킨 것으로서 서양의 노래, 춤, 연극이 각각 분리되어 있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따라서 경극은 중국 고유의 전통적인 종합무대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경극의 역사
원(元)나라 때의 잡극(雜劇:元曲)의 뒤를 이어 명나라에서 청나라에 걸친 300년 동안은 쑤저우[蘇州] 곤산(崑山)에서 일어난 곤곡(崑曲)이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으나, 왕후 ·귀족의 위안물이 되고 형식에 치우쳐 쇠퇴하게 되자 18세기 중엽(청나라 중기)에는 많은 지방극이 앞을 다투게 되었다. 그 무렵 안후이성 ·후베이성 등 양쯔강 연안지방에 남곡(南曲)의 익양강(陽腔) 계통을 이은 이황조(二黃調)가 성행하여, 안후이성의 여자역 남자배우 고낭정(高朗亭)의 일단과 함께 베이징에 들어왔다. 이때가 1790년 고종(高宗:乾隆帝)의 80세 생일축하 잔치가 벌어진 해이다. ‘휘반(徽班)’이라는 안후이성 극단이 당시 난해하고 장황한 저음인 곤곡에 비하여, 명랑하고 쉽고 동작이 많은 이황조를 상연하자 곧 대중의 호평을 받아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신흥극종(新興劇種)인 데다가 형식상의 융통성도 있던 당시의 이황조는 곤곡을 비롯한 많은 선행 극종의 기술과 형식을 최대한 받아들여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특히 1830년경 청나라 말의 북곡계(北曲系)인 진강(秦腔)의 흐름을 이은 서피라는 곡조와 합쳐 《피황희(皮黃戱)》, 즉 경극으로 발전하여 곤곡의 위치를 대신하였다. 초창기에는 정장경(程長庚), 그 후 담흠배(譚培) 등의 명우가 배출되어 부단히 개혁에 개혁을 거듭하여 격조를 높였으며, 근세에 와서는 여자역 남자배우 메이란팡[梅蘭芳]이 한층 빛을 내었다. 해외에도 ‘베이징 오페라’로 알려져 그 독특한 예술성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독일의 브레히트가 서사연극론(敍事演劇論)을 창안하는 데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패왕별희의 여주인공.
경극의 내용형식
다른 많은 전통극종과 마찬가지로 노래·대사·동작·액션 등으로 구성되는 형식연극으로, 노래가 중시되고 무용에 가까운 동작은 격렬하면서도 아름답다. 호궁과 징·북을 중심으로 한 반주의 선율과 리듬이 극의 기조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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