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흥-윤선도 레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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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만흥-윤선도
작품을 선택한 계기윤선도란 이름을 들어본 것 같아서빨리하고 싶어서아는게 없어서
윤선도[ 尹善道 ](1587 ~ 1671)본관 해남(海南). 자 약이(約而). 호 고산(孤山) ·해옹(海翁). 시호 충헌(忠憲). 1612년(광해군 4) 진사가 되고, 1616년 성균관 유생으로 권신(權臣) 이이첨(李爾瞻) 등의 횡포를 상소했다가 함경도 경원(慶源)과 경상도 기장(機張)에 유배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으로 풀려나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가 되었으나 곧 사직하고 낙향, 여러 관직에 임명된 것을 모두 사퇴했다. 1628년 42세 때 별시문과(別試文科) 초시(初試)에 장원, 왕자사부(王子師傅)가 되어 봉림대군(鳳林大君:孝宗)을 보도(輔導)했다. 1629년 형조정랑(刑曹正郞) 등을 거쳐 1632년 한성부서윤(漢城府庶尹)을 지내고 1633년 증광문과(增廣文科)에 급제, 문학(文學)에 올랐으나 모함을 받고 파직되었다. 1636년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의병을 이끌고 강화도로 갔으나 청나라와 화의를 맺었다는 소식을 듣고 제주도로 항해하다 풍랑을 만나 보길도에서 은거하였다. 하지만 병자호란 당시 왕을 호종하지 않았다 하여 1638년 영덕(盈德)에 유배되었다가 1년 뒤에 풀려나 해남으로 돌아갔다. 1652년(효종 3) 왕명으로 복직하여 동부승지(同副承旨) 때 남인(南人) 정개청(鄭介淸)의 서원(書院) 철폐를 놓고 서인 송시열(宋時烈) 등과 논쟁, 탄핵을 받고 삭직당했다. 1657년 중추부첨지사(中樞府僉知事)에 복직되었다. 1659년 남인의 거두로서 효종의 장지문제와 자의대비(慈懿大妃)의 복상문제(服喪問題)를 가지고 송시열이 영수로 있는 서인의 세력을 꺾으려다가 실패하여 1660년 삼수(三水)에 유배당하였다. 치열한 당쟁으로 일생을 거의 벽지의 유배지에서 보냈으나 경사(經史)에 해박하고 의약 ·복서(卜筮) ·음양 ·지리에도 통하였으며, 특히 시조(時調)에 더욱 뛰어났다. 그의 작품은 한국어에 새로운 뜻을 창조하였으며 시조는 정철(鄭澈)의 가사(歌辭)와 더불어 조선시가에서 쌍벽을 이루고 있다. 사후인 1675년(숙종 1) 남인의 집권으로 신원(伸寃)되어 이조판서가 추증되었다. 저서에 《고산유고(孤山遺稿)》가 있다.
만흥-두보지은이 : 두보봄의 흥취와 서정을 읊은 작품으로 봄날의 느낌을 감각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격호양류약뇨뇨십사십오아녀요수위조래불작의광풍만단최장조외짝문을 사이한 버들이 보드라와 하늘거리니, 마치 열 다섯 살 난 어린 여자의 허리같도다. 누가 이르되, 아침이 오매 (봄이) 뜻을 일으켜 아니한다 하는가? 미친 바람이 가장 긴 가지를 잡아 당기어 끊어버린다.
만흥(漫興)은 작자가 병자호란 때(1642년, 56세) , 왕을 호종(扈從:임금이 탄 수레를 호위하여 따르던 일. 또는 그런 사람)하지 않았다 하여 영덕에 유배되었다가 풀려나 해남 금쇄동에 은거하고 있을 때 지은 것인데, 산중 신곡(山中新曲) 속에 있는 전 6수로 된 연시조로서, 귀양살이에서 풀려나 산중생활을 흐뭇하게 즐기는 심정을 읊으면서도 임금님의 은혜를 잊지 않는 지극한 충심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고, 그것을 모두 성은으로 돌리고 있음은 조선 시대 선비들의 공통된 의식 구조라 할 수 있겠다.‘만흥’은 산중생활에서 문득 느껴지는 ‘부질없는 흥(만흥)’을 소박하게 표현한 작품이다漫(흩어질 만), 興(일 흥,피 바를 흔)
만흥[ 漫興 ] -윤선도
산수간 바위 아래에 띠풀로 이은 집을 짓고 살려고 하니,나의 뜻을 모르는 사람들은 비웃고들 있지만,나같이 어리석은 시골뜨기의 마음에는 이것이 분수에 맞는 것이라 생각하노라.보리밥과 풋나물을 알맞게 먹은 뒤에,바위 끝이나 물가에서 실컷 노니노라.그 밖에 다른 일이야 부러워할 것이 있으랴.술잔을 들고 혼자 앉아서 산을 바라보니 그리워하던 임이 찾아온다고 한들 반가움이 이보다 더하겠는가산이 말씀하거나 웃지 아니하여도 나는 그를 한없이 좋아하노라.누군가가 삼공보다 낫다고 하지마는 만승천자라고 한들 이만큼 좋겠는가이제 생각해보니 소부와 허유가 영악했도다. 아마도 자연속에서 노니는 즐거움은 비길 데가 없어라.내 천성이 게으른 것을 하늘이 아시고서,인간 만사를 하나도 맡기지 않으시고, 다만 한 가지 다툴 것이 없는 강산(江山)을 지키라 하시도다.강산이 좋다고 한들 내 분수로 이렇게 편안히 누워 있겠는가이 모두가 임금님의 은혜인 것을 이제야 더욱 알겠노라.하지만 아무리 갚고자 하여도 내가 해드릴 일이 없구나.
갈래평시조, 연시조(전 6수)성격한정가, 자연친화적제재자연 속에서의 생활주제자연에 묻혀 사는 즐거움과 임금의 은혜표현상 특징1.속세와 거리를 두고 자연과 혼연일체되어 자연 친화적 삶을 노래하고 있으며, 유유자적하게 자연을 즐기며 살아가는 모습을 그리는 강호 한정가의 대표작2.안분지족에 대한 소망과 연군지정의 태도가 나타남3.한문 투의 표현이 거의 없고 우리말의 아름다움이 돋보임, 설의법 사용4.인간사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통해 현실 도피적 태도를 드러냄출전<고산유고> 중 ‘산중산곡’
정계와 떨어진 곳산수간 바위 아래에 띠풀로 이은 집을 짓고 살려고 하니,나의 뜻을 모르는 사람들은 비웃고들 있지만나같이 어리석은 시골뜨기의 마음에는 이것이 분수에 맞는 것이라 생각하노라.햐암은 향암, 자기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속세의 사람들자연 귀의, 안빈낙도의 사상자연 속에서 세속적 명리를 잊고 안분지족하려는 작자의 초탈한 심정
안분지족의 자세보리밥과 풋나물을 알맞게 먹은 뒤에,바위 끝이나 물가에서 실컷 노니노라.그 밖에 다른 일이야 부러워할 것이 있으랴.현실의 벼슬살이자연 친화 사상자연의 대유적 표현가난한 생활이지만 자연을 벗하는 유유자적하는 마음은 세속이 부럽지 않다는 심정 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