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본론 :
1. 정치-지배수단의 반공이데올로기와
분단사회 고착화
2. 경제․사회
․외형성장과 現경제문제와의 관계
․재벌위주의 성장과 정경유착 그리고 빈부격차
․노동정책과 노동자 희생
․외국자본 도입의 문제
․공업집중의 現산업구조 문제와 농촌문제
Ⅲ. 결론 : 의견정리와 질문
Ⅳ. 붙임 :참고문헌
1997년 3월, 몇 개의 일간지 귀퉁이에 『고대신문』에서 실시했던 한 설문조사결과가 실렸다. “가장 복제하고 싶은 인물”로 김구, 테레사 수녀에 이어 박정희가 6표를 얻어 3위를 했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이 내용만으로 세인의 관심을 끌 만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가장 복제하고 싶지 않은 인물”로서 김영삼 당시 대통령이 39표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는 같은 기사의 또 다른 내용과 대조를 이루면서 그 내용은 세인들의 관심을 끌었다.
뒤이어 4월 1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직무를 가장 잘 수행한 대통령” 여론조사에서 박정희는 75.9%라는 압도적 지지를 얻었다. 반면 김영삼 대통령의 직무수행능력에 대한 지지는 전두환의 6.6%보다 더 낮은 3.7%를 기록했다. ‘박정희 신드롬’은 이렇든 ‘무능한’ 현직 대통령에 대비되어 강력한 리더쉽을 발휘했던 ‘유능한’ 전직 대통령에 대한 갑작스러운 기억형태로 등장했다.
일단 여론조사를 통해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밝혀지자, 기다렸다는 듯이, 일부 언론 및 출판매체들은 즉각적인 호응을 하게 된다. 우선 『중앙일보』가 20회에 걸쳐 ‘아, 박정희’를 연재하기 시작하고, 물론 이 글에서는 독재의 부정적 측면은 완전히 배제된다. 다음으로 박정희를 영웅화 시킨 이인화의 소설 ‘인간의 길’이 발간되었다는 기사가 모든 신문을 장식하게 된다. 이젠 박정희 대통령을 ‘위인, 영웅’으로 불리워지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 조심스럽게 추진되었던 박정희 기념관을 비롯한 각종 추모사업이 공개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한다. 이런 분위기에 정치권마저 편승하며, 코미디와 같은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김종필의 김종필의 자민련이 박정희의 적자임을 내세운다. 박정권이 경제성장을 통해 나라의 기틀을 닦았고, 5,6공이 이를 발전시킨 바탕위에서 문민정부의 민주화가 이루어졌고, 최종적으로는 자신이 내각제를 통해 이를 마무리할 것이라고 주장--------논쟁으로 본 한국사회 100년,『역사비평사』409p
기승전결론과 신한국당의 대선 경선주자들의 “자신이야말로 박정희의 뒤를 잇는 사람”이다라는 주장들까지 1997년의 짧은 기간에 김영삼 대통령에 대한 실망에서 비롯된 박정희 신드롬이 언론 및 출판매체들에 의해 확산되고, 더 나아가 정치권의 편승현상과 더불어 그 모습을 완비해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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