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밀양 감상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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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영화 밀양 감상문2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영화 ‘밀양’을 보고 나서…….
밀양을 보고 난 후 용서라는 것을 여러 면에서 생각하게 되었다. 신애(전도연)의 입장에서도 표현하도록 하겠습니다.
영화의 도입에서 신애라는 캐릭터는 본인이 가지고 있는 약함과 불안감, 단점 등을 자신의 다른 표현 방법으로 극복하려고 합니다. 먼저는 자신의 불안의 심리 상태를 감추기 위한 방법으로 자존심의 위선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 결과가 본인에게 엄청난 슬픔과 삶의 변화를 가져 올지는 전혀 모르는 상태입니다. 시간이 지난 후에 본인은 돈 많은 미망인처럼 보인 행동하나로 인해 그렇게 희망으로 여기며 키워온 ‘준’ 이라는 아들을 남편처럼 먼저 하늘로 보내게 됩니다. 그것도 웅변학원의 원장에게 유괴되어 돈을 주고 아들을 되찾기 보다는 싸늘한 시체로 변한 아들 모습을 보게 됩니다. 희망을 잃고 절망 가운데 살다가 주위의 권유로 기독교라는 종교를 받아들이게 되고 거기서 열심적인 신앙생활을 통해 잠시나마 고통에서 벗어납니다. 하지만 그것은 다시 한 번 위선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그것은 유괴범을 용서해 줌으로써 나는 위대하게 견딥니다 라고 보여주고 싶었지만 이 과정에서 신애는 갈등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것은 종교적 입장에서의 용서와 인간 사이에서의 용서로 인한 갈등입니다. 신애는 본인의 자기 과시적 위선을 되찾고자 자기 아들의 살인범을 용서하기로 합니다. 유괴범이 갇혀 있는 교도소로 찾아가 용서를 해 주기로 결심하지만 이것은 또 다른 신애의 추락의 시작이 됩니다. 신애는 자신의 과정을 기억하면서 유괴범도 괴로울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유괴범의 모습은 괴로웠다기보다는 너무나도 평온한 상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괴범의 한마디 ‘저도 이곳에서 하나님을 영접했고 하나님께 죄의 고백을 했고 용서함을 받았습니다.’ 라고 합니다. 이 장면에서 영화의 장면이 바뀌면서 멍하게 걸어가는 신애를 보여주고 결국은 갈등 속에서 졸도를 하게 됩니다. 이 일 후 신애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보여 줍니다. 이것은 인간이 갖는 갈등을 표현합니다. ‘사고 당사자인 나는 괴로운 시간을 보내며 아파했다. 시간이 지난 후에 하나님께 위로를 받아서 유괴범을 용서하기로 결심을 했는데 죄인은 이미 용서를 받고 평온한 삶을 살고 있다. 그렇다면 나의 용서는 필요 없고 하나님의 용서를 통해 모든 것이 용서될 수 있는 것인가?’ 이러한 갈등 속에서 신애는 용서가 증오로 바뀌게 되면서 서서히 미쳐 갑니다. 이 과정 속에서 신이 있다면 왜 나쁜 일이 일어나는가? 의 고민과 나에게만 일어나는가? 과연 신이 존재하는가? 인간이 인간에게 아무리 많은 죄를 지을 지라도 고통당한 사람이 아닌 신에게만 용서를 구한다면 그 용서가 인정되는가? 이 근심과 갈등 속에서 신애는 신앙과 인간 사이의 이해 관계 속에서 서서히 정신을 놓게 됩니다.
영화 ‘밀양’에서의 신애를 가장 이해하고 지켜보는 캐릭터로 ‘종찬’이라는 인물을 만듭니다. 종찬이라는 캐릭터로 통해 신애의 내면을 들여다보기 위한 노력을 관객에게 보여줍니다. 묵묵히 성냄 하나 없이 뒤에서 신애의 모든 것을 들어주면 받아주는 종찬을 통해 위로의 한면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종찬이라는 인물은 그저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무한 이해심을 표현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종찬은 자신의 주관적으로 타인의 행동을 이해 한다고 보기 보다는 좋아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그저 동참하는 정도라 여겨집니다. 그러나 정신을 점점 잃어가는 신애를 보면서 또 다른 사랑의 완성을 보여줍니다. 끝까지 함께 동행하며 이해하려는 종찬을 통해 신애의 대한 측은지심이 발휘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바라보고 계시면서 우리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에 대한 답변으로는 당하는 당사자에게는 많은 위로가 필요하겠지만 사람과 하나님 입장에서 일을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에게 벌어지는 일들은 인간 즉 주관적인 입장에서의 나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인간에게 고통을 주시며 하나님 또한 그 고통을 당하고 계십니다. 앞으로의 더 좋은 일이 일어나기를 희망하고 또 계획하심을 깨닳기를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일어나는 고통스러운 일들을 할 수밖에 없는 하나님 또한 말없는 고통을 당하고 계시다고 말합니다. 함께 고통스러워하고 그 고통을 견뎌냄을 통해 더 나은 미래를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에반 올마이트’ 라는 영화에서 표현한 구절이 생각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 우리에게 용기를 주세요!’ 라고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짜~안 하면서 용기를 주실까 아니면 용기를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주실까! 라는 것입니다. 이 내용을 인용한다면 하나님에 대한 용서는 이렇게 표현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용서는 ‘하나님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세요!’라고 구한다면 바로 하나님의 용서가 이루어지지만 하나님께서 사람과 사람의 대한 용서를 할 수 있는 환경을 통해 진정한 용서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 영화에서 하나님으로 나온 흑인배우 ‘모건 프리먼’은 이러한 대사를 합니다.
“내가 노아의 홍수를 한 것 또한 인류를 향한 나의 사랑이다. 모든 인간에 대해 일어나는 모든 현상은 어떠한 것이든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전제로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