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문] 야구장이 많아 행복한 일본-박성호 지음(일본 야구영웅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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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문] 야구장이 많아 행복한 일본-박성호 지음(일본 야구영웅의 이야기)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야구장이 많아 행복한 일본-박성호 지음
- 일본 야구영웅의 이야기 -
스포츠 경기는 예측불허의 영화와 같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전략이 우세한 팀이 이기는 것도 아니고, 이기던 게임이 언제 뒤집힐지 모른다. 그 중에서도 특히 야구란 스포츠가 그러하다. 수많은 반전 영화가 상영된다. 3:1로 뒤지던 구회말에 역전극이 펼쳐지기도 하고, 말도 안되는 스코어를 뒤집고 역전하기도 한다. 8.26. 수요일 한화 대 삼성의 경기. 삼성은 1위 독주 하고 있는 팀이었으며, 한화는 5위에 머무르는 중위권의 팀이었다. 3:8로 삼성이 이기고 있었고, 불펜이 강한 삼성을 한화가 도저히 이기리라 생각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 경기의 셋 스코어는 10 : 9 한화가 승리했다. 연장 11회 말. 끝내기로 한화가 역전승을 거둔 것이다! 이렇듯 정말 예측불허의 결과가 나오는 이 스포츠가 야구이고, 그 짜릿한 재미에 나는 야구를 사랑한다. 영화 같은 야구 속의 등장인물들, 야구선수들 또한 매우 극적인 스토리들이 많다. 그 중에서 ‘야구장이 많아 행복한 일본’이란 책에 등장한 ‘노모 히데오’에 대해 이야기 해볼까한다.
‘노모 히데오’란 이름은 사실 아다치 미츠루의 만화책에서 먼저 접하게 되었다. ‘크로스 게임’이라는 만화책에 보면 ‘노모’라는 이름의 고양이가 나오는데, 작가가 좋아하는 선수인 ‘노모 히데오’에서 따왔다고 한다. 그 후에도 야구 경기나 일본 야구관련 소식을 접하다보니 노모 히데오를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직접적으로 그의 생애에 대해 읽게 된 것은 ‘야구장이 많아 행복한 일본’을 통해서이다. 1968년 8월 31일 일본의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오사카 부립 세이조 공업 고등학교에서 야구를 하였는데, 고등학교 때 이름을 날리며 프로 선수 생활에 접어들게 되는 보통의 선수들과 달리 특출난 부분이 없었다. 노모는 고교졸업 후 신일본제철의 사회인 야구단에 들어가게 된다. 일본의 경우 우리나라와 달리 사회인 야구단이 발달 되어있는데, 고등학교나 대학교 졸업 시 프로 발탁이 되지 않은 선수들이 프로 선수로서의 꿈을 안고 사회인 야구단에 들어가기도 한다. 하지만 사회인 야구단에서 프로로 올라가는 경우는 드물고 매우 어렵다. 그는 사회인 야구단에서 끊임 없이 노력하며, 독자적으로 투구 폼을 개발하고, 그의 강력한 무기가 되는 포크볼을 익히게 된다. 고된 노력 끝에 사회인 야구 리그에서 명성을 날리게 되고 1988년 서울 올림픽 때 일본 대표팀 선수로 출전, 팀의 은메달 획득에 공헌 한다. 그 결과 1989년 드래프트 당시 무려 8구단의 러브콜이 쇄도하였다. 그리고 1순위 지명을 받아 긴테쓰 버팔로스에 입단하게 된다. 노모는 데뷔 첫 해인 1990년에 무려 시즌 최다 승인 18승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2.91의 평균차잭점과 287탈삼진, 0.692의 승률로 신인왕과 mvp를 차지하였다. 이것은 그의 신화의 시작에 불과했다. 5년 동안의 NPB(일본 야구리그) 선수활동 동안 4회의 다승왕과 최고 승률 1회, 최우수 평균 자책점 1회, 최다 탈삼진 4회를 기록했으며, 신인왕, mvp, 베스트 나인, 사와무라 에이지상 등 각종 상을 휩쓸었다. 일본에서의 그의 인기와 활약상은 엄청났으며, 이대로 일본에서 선수생활을 하여도 그는 충분히 역사적인 선수로 기록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노모는 안주하지 않았다. 최고의 선수라는 꿈을 위해 비행기를 타고 아메리카로 날아간다. 모든 야구선수들의 꿈의 무대인 메이저리그의 그라운드에 서게 된 것이다. 그가 입단한 구단은 박찬호 선수와 류현진 선수로 친숙한 LA다저스였다. 노모 히데오가 LA 다저스에 1955년에 입단해서 선수 생활을 할 당시에 박찬호 선수 또한 LA다저스에서 투수로서 활약하고 있었다. 박찬호 선수가 모 프로그램에서 말한 거에 의하면 박찬호 선수의 바로 옆 로커가 노모 히데오의 로커였으며, 박찬호 선수에게는 동료이자 라이벌이며, 멘토였다고 한다. 메이저 리그에서도 그의 신화는 계속 되었다. 노모 히데오는 입단 첫해에 13승 6패의 성적과 평균 자책점 2.54의 좋은 성적을 거뒀고, 그 해 신인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그 후에도 좋은 성적을 냈으며, 무엇보다 역사에 남을 만한 기록을 남겼다. 바로 2회의 노히트 노런의 기록과 아시아인으로서 123승의 기록, 그리고 한 경기 17K의 대기록이다. 물론 123승의 기록은 박찬호 선수가 124승의 기록을 달성하면서 갱신되었지만, 2회의 노히트 노런 그것도 아메리칸 리그와 내셔널 리그, 양 대 리그 달성의 기록은 정말 야구역사에 길이 남을 기록이다. 아쉽게도 3년간의 다저스에서의 좋은 기록 이후로는 침체가 계속되어 2008년 캔자스시티 로열스에서의 선수생활을 끝으로 은퇴하게 된다. 그는 선수로서 은퇴하였지만, 야구 역사 속에서 그리고 야구를 사랑하는 팬들 속에서는 살아 숨 쉬는 기록이며, 야구 영웅으로 남아있다. 일본 야구전당에도 기록되는 대선수로서 말이다.
그의 일대기를 보면서, 우리는 야구를 볼 때 한 경기 한 경기의 일면만을 보지만, 그 안에서 플레이하는 선수들에게도 각자의 인생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노모 히데오의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정신과 노력을 보면 단순한 유명 야구선수로써가 아니라 본 받을 만한 훌륭한 위인이라 생각한다. 그가 2015년이 되는 현제에도 왜 회자 되며, 기억 되는 가. 그것은 바로 그의 강인한 정신과 끊임없는 노력으로 점철된 야구 인생 때문이 아닐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