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블랙스완을 보고
1.
좋은 작품이 나오기 위해선 예술가들에게 시련과 고뇌가 불가피하다고 보는 견해는 오래 전부터 일종의 편견처럼 자리잡고 있다. 예를 들면 결별 후에 나오는 가슴을 찢는 슬픈 사랑 노래나 약물 중독 상태에서 나오는 광적인 연기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런데 매번 이런 외부적인 작용, -즉 환경적인 변화에만 의존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스스로 마이너스 에너지를 자가발전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소라는 왜 노래를 잘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노래를 못하는 것처럼 (의식적으로) 느껴버리는 것일까?
2.
의 표면적인 메세지는 그다지 어렵지 않게 다가온다. 스스로의 틀(백조)을 깨뜨림으로써 마침내 예술적 승화(흑조)를 이루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오랜 시간 누적되어 형성된 가치관 혹은 관념(또는 에고)을 부수는 작업은 너무나 가혹하며, 이를 시각적으로 납득시키기 위해 영상은 시종일관 니나(나탈리 포트만)의 자학 행위를 크로테스크하게 담아낸다.욕망에 충실한 흑조의 페르소나는 본래 니나(백조)의 자아와 갭이 너무 크기 때문에 결국 정신분열의 양상을 띄게 되고, 이 분열의 전개 과정에서 엄마(바바라 허쉬)와 릴리(밀라 쿠니스)는 니나의 양면을 통제하고 자극하는 일종의 오브제처럼 배치되어 있다. 헛구역질을 하고, 살갗을 뜯어내고, 손톱이 빠지고, 자기 얼굴을 칼로 찔러대고, -이 정도로 가학적인 상황이니 단순히 스스로의 틀을 깨뜨린다라는 정도의 말로 포장해둘 수는 없을 것이다. 발레라는 한정적인 상황에서 한 발 벗어나 살펴보면 이 영화의 메세지는, 자아를 파괴해야만 비로소 자아의 발견에 이를 수 있다라는 섬뜩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3.
그래서 [블랙 스완]은 결말의 마지막 씬까지도 철저하게 불편한 영화다. 니나가 마침내 완벽한 경지의 황홀경을 맛보았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갈등 구조가 해소된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과연 그 과정은 자아가 보존되는 상태에서의 진화인가? 그녀가 각성한 마이너스 에너지는 스스로의 육체와 정신으로 버텨낼 수 없을 만큼 너무 강력한 것이었고, -이때의 유일한 해방구는 죽음 밖에 없다. 종반부 니나가 릴리라고 착각하며 자기자신을 찌른 것은 결코 정신착란에 의한 우발적 사고가 아니었다. 그것은 명백한 자살이었던 것이다. 화려하지만 치명적인 악마의 재능, 정점에서 사그라들어버린 조커와 히스 레저를 떠올리게 되는 지점이다.
4.
영화를 이끌어가는 또 한 명의 중요한 인물은 발레단의 단장인 르로이(벵상 카셀)다.초반까지는 얼핏 영화에 섹스와 권력 코드를 심어놓는 속물적 인물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더 위험하고 지독한 그의 진면목들은 후반부로 넘어가면서 드러나기 시작한다. 요컨데 그는 현대 쇼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수완가들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가 바라는 것은 오직 공연의(엔터테인먼트 사업의) 성공이며 이를 위해 언제라도 발레리나(아티스트)라는 장기말을 희생시킬 준비가 되어있다. 심지어 전 프리마돈나인 베스(위노나 라이더)가 자살 기도를 한 이유마저 정확하게 간파해내지만, 그와 같은 결과를 불러올 것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또 한번 니나를 통해 똑같은 방식으로 악마의 재능을 끌어내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기획자의 열망 혹은 상업성의 논리, -어느 쪽으로 보더라도 대단히 위험하고 무서운 생각이다. 섹스와 권력은 니나를 흔들기 위해 르로이가 사용한 자극이자 암시일 뿐이며 정작 그의 시선은 더 위험한 지점을 향해 있었던 것이다.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