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보장론] 자원봉사를 마치며
인간은 흙에서 태어나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고 했던가!
노인복지센터에서 자원봉사를 마치며 돌아오는 길에 홀연히 나는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우리나라 노인문제에 대해서도 많은 질문들을 내 자신에게 던져 보았다. 이에 대한 답은 현재 우리나라가 국면하고 있는 노인문제가 개별가정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면서 사회적 지원의 필요성이 불가피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내 고향 영덕에 자리 잡은 이 센터는 사회적 보살핌이 일차적으로 잘 진행되고 있는 한 예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이 세상 우리들은 모두 인간이다‘라는 것이다. 즉 인간은 삶을 살아가다 언젠가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논리이고 이런 의미에서 나는 삶의 방식을 항상 내안의 만족감을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고자 한다. 그 중에 하나가 되는 자원봉사는 가장 으뜸이 되어야 하는 것이 자발성으로써 나는 이러한 정신을 바탕으로 함께, 부끄럽지만 교육의 일환으로 노인복지센터로 발걸음을 옮기게 된 것이다.
영해면 어느 언덕에 자리 잡고 있는 이 복지센터에 우리는 오전 9시에 도착했다. 도착당시 아침식사는 끝나 있었기에 나는 밀대를 들었고 어차피 해야 하는 것이라면 멋지게 도와드리고 오자는 마음에 의욕이 가득 생겼다. 내부 1, 2층을 부지런히 닦아드린 직후 나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왔고 물론 땀도 흐른다. 하지만 이 얼굴은 힘듦의 표시가 아니라 마치 이제야 자원봉사를 하게 되었냐고 질책하는 내 내면의 부끄러움 같았고 땀은 기쁨의 분출처럼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이런 미묘한 감정으로 잠시 휴식을 마친 후 점심식사 수발 및 세안 도움을 드리기로 했다. 식사로는 미음이 들어왔고 거동이 불편한 분들은 도저히 혼자 힘만으로는 식사가 불가능하였기에 어르신께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옆에서 음식을 떠 먹여 드렸다. 나는 두 분에게 식사를 도와 드렸는데 한분을 떠 먹여 드릴 때 다른 한분이 못 드시는 것이 안타까워 나의 몸과 손이 바쁘게 옮겨 다니게 되었다. 그때 뒤에 한 할머니께서 눈물을 흘리시는 것이 보였다. 무언가 가슴에서 북받쳐 올라오신 것처럼 그렇게 조용히 눈물을 흘리신다. 왜일까! 고마움에 표시일까! 아님 당신의 핏줄이 보고 싶은 그 어떤 사연 때문일까! 눈시울이 덩달아 달아오른 나는 할머니께서 보시지 못하도록 그렇게 눈물을 훔치며 다시 식사시간에 열중하였다. 동정이 아니었다. 그 눈물의 의미가 내 머릿속에서 반짝 힌트를 주었다. 나는 그 곳에 계신 모든 어르신들에게서 자식에 대한 보고픔과 연민이 느껴졌고 외로움이 보였으며 ‘이제 생을 그만 마감했으면 한다‘라는 그 알 수 없는 묘한 기분마저 느끼게 해주셨다. 사람의 정을 가득 드리고 싶었지만 내가 그러고 나면 남은 이 분
들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잠시 주춤거리게 된 것도 사실이다. 왜냐면 본래 사람은 떠나는 사람보다 남은 이가 더 힘들며 외롭고 서글프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에서일까! 우리 할머니가 하늘나라로 훌쩍 가버리실 때 그 심정을 그 어떤 말로 표현 할 수 있을까! 사랑하는 우리 할머니가 나를 두고 그 먼 길을 가실 때 적적하셨는지 꿈에 나를 보러 오신 모든 장면이 생생함에 그 날을 잊지 못함이다. 이런 많은 감정을 뒤로 한 채 시간은 자꾸만 흘러가고 있었고 이 분들과 이별 아닌 이별을 할 시간도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복지시설이나 협회에 가입되어 있지 않은 사람으로서 그냥 단순히 주위에서 나의 힘이 필요한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그 사람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를 파악하여 순간적으로 도와 드린 적은 많았던 것 같다. 그러나 이 날 만큼은 교육의 일환이라는 점도 약간은 작용했지만 시간이 흘러갈수록 아쉬움과 뿌듯함 등, 이 모든 심정들이 뒤엉켜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시간. 공간적 만남이 되어 뜻 깊었던 것 같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우리들은 각 방을 다니며 와상 어르신들의 기저귀를 갈아드리는 케어보조를 하였다. 첨엔 비유가 약한지라 ‘잘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도 들었지만 곧 익숙해 졌고 열심히 정성으로 이 일을 마쳤다. 그 후 우리는 잠시 휴식 시간을 가졌고 사회복지사로부터 고맙다는 말을 전해 들으며 우리 역시 어르신들께 고마움의 인사를 드리며 발걸음을 옮기게 되었다. 그렇게 건물을 나오며 뒤를 돌아보니 창문에서 우리를 바라보시는 어떤 할머니께서 “또 오너라” 하는 말씀에서 왠지 모르게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렇게 마지막 인사를 뒤로 한 채 나는 차에 올라타고 그 비탈언덕길을 스르륵 내려왔다.
지금 생각하면 그 곳을 다녀온 것이 나의 사고중심 패턴 중 固定觀念(고정관념) 전환의 계기가 되었고 또한 앞으로 ‘내가 세웠던 계획들을 어떻게 지켜나가야 하지!‘라는 의문점에 대한 적절한 길을 안내해주는 이정표가 되어 주었다는 점에 있어서 커다란 장점으로 작용이 되었다. 또한 봉사활동을 하면서 가장 많이 떠올랐던 것이 인생의 소중함과 건강관리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어르신들을 바라보는 시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동정이 아니라 애정’이라는 심정마저 들게 되었다. 어느덧 다녀온 시간이 훌쩍 흘렀고 현재 나에게 남아 있는 무한한 행복감과 사명감, 그리고 가족에 대한 사랑이 더 깊어졌다고나 할까!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건강관리의 중요성, 이것은 내가 건강해야 남을 지켜봐 줄 수 있다는 현실감에서 비롯된 생각이다. 비로써 내가 아직은 젊다는 것에 대한 고마움과 조금이라도 더 젊을 때 내가 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실천하고 보여주고자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론의 첫 머리처럼 나 역시 언젠가 노인이 되고 또다시 흙이 되어 자연으로 돌아가는 인간의 한 사람으로써 노인을 공경할 줄 알며 더 나아가 주위의 어려운 사람들에겐 모닥불과 같이 활활 타 올라 그들의 얼어있는 몸과 마음을 녹여줄 수 있는 빛과 그림자 같은 존재가 되자는 것이다. 나는 자연과 더불어 자원봉사를 통해 세상 살아가는 이치도 충분히 익혀 나갈 것이며 내 삶의 자원봉사만큼은 무지개 같이 끝없는 빛으로 다가 갈 것을 다짐한다. 그리고 그 어르신들에게 주어진 삶에 네잎클로바 같은 행운이 가득 할 것을 기원 드리면서 이를 뒤로 한 채 글을 그만 끝내고자 한다. 오늘 따라 13년 전 임종을 지켜드리지 못해 항상 죄스러운 이 손녀딸이 할머니 생각에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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