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장. 작가 박경리의 생애
2008년 5월 5일 향년 82세의 나이로 타계한 박경리는 자신의 작품 속 여인들만큼이나 굴곡 많은 생애를 살았다. 1926년 10월28일 경남 통영에서 출생한 박경리는 진주여고를 졸업 후 통영군청 공무원으로 일하다 1946년 전매청 서기였던 김행도와 결혼한다. 그러나 곧 전쟁 중 남편과 아들을 잃고 외동딸 영주를 홀로 키우며 녹록치 않은 20대를 보낸다.
셋방살이를 하며 은행에 다녔던 박경리는 친구의 도움으로 소설가 김동리를 찾아가 두세 편의 습작시를 보여주는데 이때 시인은 상은 좋은데 형체가 갖춰지지 않았다고 평가했다고 한다. 이후 김동리는 박경리에게 시보다 소설을 써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권유했고 이를 받아들여 쓴 단편 소설 계산이 김동리의 추천으로 1955년 8월 현대문학에 실리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듬해 8월 현대문학에 단편 흑흑백백이 추천 완료돼 본격적으로 등단한 후 한해 뒤인 1957년 단편 불신시대로 현대문학 신인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초기에는 주로 단편을 발표하였는데 1958년 첫 장편 연가 이후 표류도, 성녀와 마녀, 김 약국의 딸들, 파시, 시장과 전장 등 굵직굵직한 소설들을 내놓으며 내성문학상, 한국여류문학상 등을 수상하고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도 오르기 시작했다. 1969년에는 한국 문학 최대 걸작인 대하소설 토지를 현대문학 9월호에 연재하기 시작하는데 토지 1부를 집필할 무렵 그에게 시련이 닥친다.
유방암 선고를 받고 암과 사투를 벌여야했던 것이다. 1971년 9월 유방암 수술을 하였고 병마를 이겨낸 후에는 사위 김지하 시인의 투옥으로 또 한 번 마음고생을 겪는다. 그러나 어떤 시련도 창작에 대한 열정은 막지 못했다.
"글을 쓰지 않는 내 삶의 터전은 아무 곳에도 없었다. 목숨이 있는 이상 나는 또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었고, 보름 만에 퇴원한 그날부터 가슴에 붕대를 감은 채 토지 원고를 썼다."
토지는 이후 문학사상(2부), 주부생활, 독서생활, 한국문학(이상 3부), 마당, 정경문화, 월간경향(이상 4부) 등 여러 매체를 전전하는 우여곡절 끝에 1994년 8월 문화일보를 통해 사반세기 만에 5부로 완간됐다. 3부를 마친 후 1980년부터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강원도 원주로 근거지를 옮겨 마지막 순간까지 원주에 머물렀고, 1991년부터 연세대 원주 캠퍼스에서 강의도 시작했다. 토지 완간 이후 간간이 산문을 기고하고 시집을 출간하는 것 외에는 작품 활동은 최소화한 채 토지문화관 건립과 환경에 관심을 기울이기도 하였다. 오랜 침묵 끝에 2003년 현대문학에 나비야 청산가자를 연재하기 시작했으나, 스스로 마지막 작품이 될 것이라고 말했고 건강악화로 연재 세 차례 만에 원고지 440여 매 분량으로 중단되었다.
미완성 소설과 산문들을 묶어 지난해 13년 만에 새 작품집 가설을 위한 망상을 내놓은 박경리는 최근 현대문학 4월호에 까치 설, 어머니, 옛날의 그 집 등 신작시 3편을 8년여 만에 발표하며 시 창작 의욕을 밝히기도 했으나, 그 세 편의 시는 결국 박경리가 생전에 발표한 마지막 작품이 됐다.
● 연보
1926년 10월 28일 경남 충무시 명정리에서 박수영씨 장녀로 출생. 본명 박금이
1945년 진주고등여학교 졸업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