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마이클 코르레오네 - 유건명 - 이자성 - 그들은 왜 스스로 파멸할 수밖에 없었나
그들은 왜 스스로 파멸할 수밖에 없었나?
하나, 둘 씩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고전 영화를 종종 찾아보곤 하는 게 주말을 보내는 하나의 낙이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 처음 접하게 된 대부 시리즈. 평소 느와르물을 즐겨 보지 않았던 나에게 대부는 하나의 신선한 충격이었다. 마음을 잔잔하게 여며오는 배경음악을 영화 전반에 깔면서, 대부는 강렬한 메시지를 나에게 전달했다. 바로 “가족에 대한 남자의 사랑” 이었다. 그 누가 나를 욕할지라도, 설령 가족마저 나에게 등을 돌릴지라도, 가족에 대한 남자의 사랑은 깊고 크다. 가족을 지키고 싶기에, 묵묵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형과 동생의 남편 살해까지-을 해내려 한다. 그 일이 결국 자신을 점점 파괴시켜 나갈 것임을 알면서, 스스로 그 고독 속으로 걸어들어 간다. 무거운 책임감, 그 것을 짊어져야 하는 남자의 숙명, 바로 “남자의 법”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부의 알파치노는 결국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손에 넣지 못했다. 그토록 치열하게 자신을 파괴하고 조각내고 상처 입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 맥락은 무간도와 신세계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진다. 대부가 말하고자 했던 “남자”란 존재에 대해 서로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방식으로 표현해 내고 있는 두 영화지만 결론은 똑같다. 두 남자는 자신이 소망하던 바를 손에 넣지 못한 채 한명은 죽음으로, 한명은 고독으로 인생을 맞이하게 된다. 지금부터 유건명과 이자성에 대해 조망해보자.
유건명은 한 여인을 갖기를 소망했다. 보스의 아내 “메리”다. 전형적인 그레이트 마더의 모습을 보여주는 메리는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 한침의 성공을 위해 주변의 모든 남자를 이용한다. 한침도, 황국장도, 유건명도 결국 메리의 가슴 속에 안겨 있길 원했던 아들일 뿐이다. 자신이 이용당하는 줄 알면서도,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기꺼이 그 역할을 감수한 유건명이 메리를 살해하는 것은 무간도의 백미 중 하나다. 가질 수 없다면 누구도 갖지 못하게 하겠다는 욕망, 그 사랑의 병적인 집착이 메리를 죽음으로 내몰고 유건명은 영원한 무간지옥에 빠져든다. 메리와 동명이인인 메리와 다시 사랑을 하는 장면은 그가 영원한 지옥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반복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유건명은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이자성은 밝은 세상에서 나와 살기를 꿈꿨다. 그는 행복한 삶을 살기를 소망한 죄밖에 없다. 하지만 그는 단순한 사실을 몰랐다. 행복은 손에서 잡으려 하면 잡을 수 없지만, 항상 내 옆에 있다는 간단한 사실을 말이다. 134분의 시간 동안, 이자성은 항상 불안하고 가식된 모습만을 스크린에 보여준다. 가장 가까운 정청 앞에서도, 자신의 아내 앞에서도 그는 거짓된 자아를 연기하고 있을 뿐이었다. 진정 그가 바라던 신세계는 멀리 있지 않았다. 언제나 가장 가까이에, 손짓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다만, 그가 그것을 외면했다. 그것은 신세계가 아니라고 단정지었다. 자신이 마음속으로 구축해 놓은 신세계만이 진짜 신세계라고 믿었다. 그 결과, 그는 진정한 행복을 잃어버린다.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신세계도, 자신이 상상하던 신세계도 영원히 사라져 버리고 영원한 가짜 이자성으로 존재하게 된다. 정청과 밑바닥 생활을 하던 6년 전, 담뱃불이 붙지 않아도 환하게 웃을 수 있었던 이자성은 이제 담배가 있어도 웃지 못한다. 그의 신세계는 죽어버렸다.
돈 마이클 코르레오네에서 유건명, 이자성으로 이어지는 남자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무엇인가를 강하게 소망했다는 것이다. 그것들을 성취하기 위해 그들은 모두 자신을 버렸고, 엄청난 고통을 인내해 가며 그것을 얻기 위해, 혹은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그것에 다가갈수록, 집착할수록 자신들에게서 점점 멀어져갔고, 세 남자는 결국 자신 때문에 자신이 소망한 바를 파괴하는 고통을 겪게 된다.
그들이 파멸한 이유는 무엇일까?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