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나마라의 말처럼, 절대빈곤 때문에 수많은 생명이 죽어가고 있다. 1억 8천만 명의 다섯 살 이하 어린이들이 심각한 영양실조를 겪고 있고, 수백만의 사람들이 빈약한 음식으로 인해 영양소 부족으로 인한 질병에 걸린다. 죽음이나 질병 말고도, 절대빈곤은 고통스러운 삶의 조건이며, 세계감시기구가 12억의 사람들이 절대빈곤 속에서 살고 있다고 평가할 때 사용되는 절대빈곤에 대한 정의는, 음식, 의복, 주거와 관련된 가장 기본적인 생물학적 필요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한 수입의 결여 이다. 절대빈곤은 아마도 오늘날 인류가 겪고 있는 불행의 주요원인일 것이다.
제 2 절. 부에 관한 몇 가지 사실들
문제는 세계가 세계 인구를 먹이고 재울 음식과 거처를 생산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은 일 년 평균 180킬로그램의 곡물을 소비하는 반면, 북미의 사람들은 평균 900킬로그램 정도를 소비한다. 이러한 차이는, 부유한 나라에서는 고기와 우유, 달걀을 얻기 위해 동물들에게 많은 양의 곡물을 소비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만약, 우리가 동물에게 먹일 곡물을 절약하여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에게 분배할 수 있다면, 전 세계의 기아를 종식시키고도 남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들은 세계의 식량문제가 생산의 문제가 아닌, 분배의 문제임을 보여 준다. 세계는 충분한 식량을 생산하고 있으며, 부유한 나라의 약간의 부를 가난한 나라들로 옮기기만 하여도 식량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맥나마라의 절대빈곤과 대립되는 ‘절대풍요’의 모습을 제시할 수 있다. 이는 사람들이 모든 기본적인 생활필수품들을 적절히 구할 수 있는 수준 이상의 수입을 올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절대적으로 풍요로운 사람들은 음식, 주거, 의복, 필수적인 의료혜택과 교육을 사들이고 난 다음에도 사치품에 까지 돈을 들일 수 있다. 이러한 절대풍요를 규정하는 특징은 자신과 자신의 피보호자들의 기본적인 인간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필요한 수준을 초과하는 상당량의 수입이 있다는 것이다.
제 3 절. 살인과 도덕적으로 동일한 것이 아닌가?
※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는 데 사용하지 않고 사치품을 사는 데에 사용하는 것과, 고의로 사람을 죽이는 것 간에의 중요한 차이들
① 통상적으로 동기가 다르다. 살인자는 악의를 품고 좋지 못한 동기에서 희생자들이 죽기를 원하지만, 돈을 기부하는 대신 사치품에 돈을 들이는 것은 이기심이나 타인의 고통에 대한 무관심을 드러낼 뿐, 이는 바람직하지 못하지만 실제적인 악의나 그와 비슷한 동기에는 미치지 못한다.
②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것을 지키기는 어렵지 않지만, 우리가 구할 수 있는 모든 생명을 구하라는 것은 매우 어렵다. 구할 수 있는 모든 목숨을 구하는 것은 우리를 살아 있도록 하는 데 필요한 아주 필수적인 것만을 누리는 정도로 우리 생활수준을 낮추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의무 수행을 위해서는 도덕적 영웅주의와 같은 수준의 행위가 요청된다.
③ 가난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지 않았을 때보다, 살인을 했을 때 훨씬 확실한 결과가 생긴다. 어떤 사람을 죽일 때, 그 사람이 죽을 것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반면에 기부할 돈이 실패로 판명될 계획에 쓰여 지게 된다면, 아무도 도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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