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 청나라 시대의 농업과 경제중심지의 이동
명 청 시대에는 송 대까지의 변화양상을 계승하면서도 몇 가지 변화가 나타났다. 우선 양쯔강 하류, 즉 강남 삼각주 지역의 개발이 고도화되고 상업화와 수공업화가 진척되는 한편, 양쯔강 중류지역이 개발되면서 농업 중심지역이 다원화되었다. 이에 따라 이전보다 경지면적이 4배 정도 증가하고 식량생산이 증대되면서 인구도 급증했다. 그리고 일정한 토지에 노동력을 집중적으로 투입하는 집약농업이 한층 심화되기도 하였다. 더불어 신대륙 작물 등 새로운 작물이 전래되어 전통적인 ‘화북의 밀 강남의 벼’라는 작물생산의 공간적 구조가 변화하고 경작공간도 크게 확대되었다. 또한 강남 삼각주 지역을 비롯하여 전국적으로 인구가 증가하고 도시가 발달함에 따라 환금작물의 생산이 확산되는 등 농업에 대한 여러 변화가 이루어 졌다.
2. 명· 청 시대의 농촌 변화
명초기 실시 된 이갑제는 명 태조 주원장 사후 몇 십 년이 지나지 않아 그 구조가 뿌리째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농촌사회에서는 빈부격차가 심화되어 대토지소유가 늘어났는데 대토지를 점유한 이들은 과거제와 학교제를 기반으로 한 관료와 생원· 진사 등으로 이루어진 신사층이 대부분 이었다. 신사층과 부재지주의 광대한 토지겸병은 명 말기 더욱 확대되는 상황이었다. 이에 농사에 전념해야 할 자작농들이 땅을 잃고 전호가 되어 지배층이자 지주인 신사층의 토지를 소작 받거나 국가의 세역부담을 피할 만한 다른 곳으로 도망가는 일이 빈번해지는 등 호구의 변동 상황이 커졌다. 일조편법이 이러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하여 새롭게 개혁한 제도이지만 사회를 안정시키지는 못하였다.
청조는 다른 부분에서 대체로 그랬던 것처럼 세역부문에 있어서도 명의 제도를 그대로 이어받은 부분이 많았다. 그로 인하여 신사층은 자신들이 점유한 대토지의 대부분을 그대로 소유할 수 있었다. 다만 명 말에 다급해진 군비를 조달하기 위해 부과한 세량의 원액 외에 덧붙여 부과한 가파(加派)의 대부분을 폐지되어 인민들의 고통이 조금 줄어들 수 있었다. 지정은제의 시행으로 명대 이래로 시행해오던 이갑제의 형태가 완전히 무용지물이 되었다. 명대 이래로 부역제도의 시행은 이갑제에 근거하여 운영되도록 하였는데 이제 지정은의 등장으로 이갑제가 필요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향촌 자치적 역할을 하던 이갑제가 없어졌다는 말은 국가의 행정적 운영으로 바뀌어 갔다는 뜻이다. 이로써 향촌은 더 이상 자치적 조직이 아니라 국가의 행정에 의해서 움직이는 향촌단위로 바뀌어 갔다.
3. 명·청 시대의 경제중심지 이동
송 대 강남 개발 이후 중국의 주요 미곡 생산지는 양쯔강 하류였다. 그러나 강남과 같은 전통적인 발전 지역에서는 인구 부양 능력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었다. 인구 압력의 구체적인 징후는 발전 지역의 양자강 하류에서 먼저 나타났다. 인구 압력에 직면한 농민들은 집약적인 농법을 선택하고 경작 면적을 넓히는 것으로 대응했다. 인구 압력 외에도 강남 지역은 국가에 대한 세수 부담이 다른 지역보다 높았다.
명 중엽 이후에는 양쯔강 중류 지역이 개발되어 중국의 주요 곡창 지대로 등장했다. 평야 지대에서는 호수 주변에 새로운 논을 만드는 개발이 가속화 되었고, 이 때문에 일부 수전이 물을 공급받지 못하거나 하천의 부영양화가 가속화되었다. 청 초엽 이래 계속된 평야 지대의 개발은 하천 유역의 지속적인 홍수 피해와 아울러 평야 지대의 성장에 한계를 가져왔다. 성장의 한계와 환경 악화는 자연스럽게 대규모 이민으로 이어졌다. 이민자들은 새로운 경제 활동의 영역인 양쯔강 상류로 몰려들어 다시 그곳을 적극적으로 개발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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