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문왕 설화와 이제하의 임금님의 귀 두 작품의 비교를 통해 어떠한 관련성이 있는지와 두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것들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Ⅱ. 본론 (경문왕 설화에 대한 분석)
먼저 텍스트를 이해하기 위해 경문왕에 대한 역사적 사실과 에 나오는 이야기를 다섯 단락으로 구분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1) 경문왕 「네이버 지식백과」 경문왕 참조 http://100.naver.com/100.php?id=10235
신라 제48대 왕(861∼875). 성은 김씨, 이름은 응렴(膺廉), 혹은 의렴(疑廉)으로 부르기도 한다. 아찬(阿飡) 계명(啓明)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광화부인(光和夫人)이다. 할아버지는 희강왕이며, 할머니는 충공(忠恭)의 딸인 문목부인(文穆夫人) 김씨이다. 왕비는 헌안왕의 큰 딸인 영화부인(寧花夫人) 김씨이고, 뒤에 헌안왕의 작은 딸도 왕비로 삼았다. 아들은 황(晃: 정강왕), 정(晸: 헌강왕), 윤(胤)이고, 딸은 만(曼: 진성여왕)이며, 동생으로 위홍(魏弘)이 있었다.
헌안왕에게 아들이 없었고, 여왕 선덕(善德), 진덕(眞德)의 예를 따르지 않게 됨으로써 왕위를 계승하였다. 왕위에 오르기 전에 일찍이 국선(國仙)이 되었으며 불교에 관심이 많아 871년에는 황룡사 구층탑(皇龍寺 九層塔)을 개조하였다. 또한 국학(國學)에 관심을 보여 864년에는 국학에 행차하여 박사로 하여금 경전의 뜻을 강론하게 하였다.
866년 왕자 정을 태자로 삼는 등 열의를 가지고 치국(治國)에 임하였지만 진골귀족간의 오랜 분쟁은 일시에 바로잡을 수 없었다. 그 결과 중기 이후에는 반란사건이 계속 일어났다. 866년 이찬 윤흥(允興)과 그 동생 숙흥(叔興), 계흥(季興)의 모역과, 868년 이찬 김예(金銳), 김현(金鉉) 등의 모반, 874년 근종(近宗) 등의 모역이 있었다.
사신을 당(唐)나라에 파견하여 긴밀한 유대를 맺었고, 황룡사 구층탑(皇龍寺 九層塔)을 수축하는 등의 업적도 남겼으나, 재위 중에 천재지변(天災地變)이 많아 백성이 곤궁하였다. 그리하여 경문왕은 하대(下代)사회의 혼란을 수습하지 못하고 죽었다.
(2) 삼국유사에 들어있는 텍스트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