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학에서 바라본 세종
우선 행정에 대한 개념이 무엇이고 어떠한 이론적 방법으로 접근 할 것인가에 대해 먼저 알아보도록 하겠다. 행정이란 간단하게 말해서 “경영 + 정치“이다. 행정이란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국가를 이끌어 나가며(경영),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고 공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정부에서 정책결정· 정책집행을 하는 것(정치)이다. 정부가 행정활동을 할 때 추구해야 할 여러 가지 가치들이 있는데 본질적인 가치와 수단적인 가치가 있다. 나는 본질적인 가치를 통해 세종대의 정치를 살펴보려고 한다. 본질적인 가치야 말로 과거나 현재나 변함없이 추구되어야 하는 가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제 현대행정학에서 추구하는 가치를 조선시대 세종대왕의 국가경영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1)공익(公益)
첫 번째로 공익은 행정이 추구해야 할 본질적 가치로서 행정 행위의 주요한 규범적 기준이다. 공익이란 공공의 이익라고 말할 수 있다. 공공의 이익이란 무엇인가? 조선시대 때의 공공의 이익이야 말로 바로 백성들의 이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 백성들의 이익이란 무엇일까? 백성들에게 살아가는 생존수단이자 제일 고통스러웠던 문제는 조세제도이다. 이를 위해서 세종대왕이 취했던 입장은 바로 공법제도의 개혁이었다. 세종대왕의 집권초기에는 손실담헙법이라고 하여 경차관들이 백성들의 토지를 일일이 측정하여 그에 대한 세금제도를 부과하는 것인데, 이것은 경차관들의 재량과 아전 등의 농간으로 공정성을 상실함으로써 백성들에게 큰 불편과 피해를 주었다. 그리하여 세종대왕은 객관적 기준에 의하여 비옥도에 따라 6등분으로 나누고 농사의 풍·흉년에 따라 9등분으로 나누어 세금을 내게 하였다. 세종대왕은 공법세도를 시행하기 전에 앞서 백성들의 의견을 물어보는 여론조사도 시행하였는데 이것 또한 궁극적으로 백성들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적인 방법이 된 것이다. 이리하여 세종대왕은 백성들의 의견을 반영한 공법제도를 시행함으로써 공익을 실현했다고 볼 수 있다.
(2)정의(正義)
정의는 그 어원을 이루고 있는 “just"이라는 의미 이외에 ‘공정한‘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정의는 그 속에 ’공정‘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세종대왕때에 이 개념이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까? 세종 15년때 약노의 상황을 살펴보자. 약노는 주문을 외어 사람을 살해했다는 혐의로 투옥되었다. 사람을 주문을 외워 살해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형조는 살인죄로 처리하기를 요청했다. 하지만 현명한 세종대왕은 ”그런 이치가 있을 수 없다’고 말하고 이를 좌부승지 정분을 파견하여 다시 조사하게 한다. 이를 조사함으로써 약노는 “고문과 매를 견디지 못하여 거짓 자복했습니다. 태장을 당하는 것이 한번 죽는 것만 같지 못하니, 빨리 나를 죽여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한다. 즉 약노는 죄 없이 고문을 이기지 못하여 억울하게 죽을 수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세종이 이 사건을 그냥 무심하게 지나쳤다면 무고한 생명이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세종은 백성들의 사건에 대해 현명하게 판단하여 약노에 대하여 공정한 판단을 내린 것이다. 즉 죄를 짓지 않은 사람에게는 죄를 주지 않는 정의로운 결정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3)형평성(衡平性)
형평성의 원리는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여러 개인들 간의 관계에서 사물의 적절하고 마땅한 분배로 이루어진 공정한 평등을 뜻한다. 세종대왕은 과연 각자의 몫을 각자에게 공정한 배분을 해주었을까? 이것 또한 위에서 살펴 본 것과 같이 공법제도의 개혁에서 찾아 볼 수가 있다. 공법제도는 토지의 비옥도와 풍·흉년에 따라 세금을 부여하는 것이다. 즉 토지가 비옥할수록 풍년일수록 세금을 많이 부과하고 토지의 비옥도가 그보다 낫다면 흉년이었다면 세금을 더 작게 부과하는 것이다. 이것은 각자의 몫은 각자에게로 주는 로마의 격언과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공법제도는 현재에 누진세와도 원리가 비슷하다. 500년전에 세종대왕이 얼마나 앞선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고 개혁적이었는가를 짐작해 볼 수 있다
(4)자유(自由)
자유란 제약과 간섭이 없는 소극적 의미와 무엇을 할 수 있는 적극적인 개념으로 나눌 수 있다. 세종대왕의 시대에서는 적극적 개념인 자유의 개념을 가치로 적용시킬 수 있는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훈민정음이 바로 그러한 예이다. 양반의 경우에는 한문을 사용하고 중인들은 이두문자를 사용하고 있었지만 조선시대 백성들에게는 말만 존재했을 뿐 문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쓰고 싶지만 쓸 수 없다는 고통은 얼마나 큰 것일까? (글이 없었다면 내가 지금 레포트도 쓰고 있지 않겠지 하는 생각과 다시 한번 한글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게 된다.) 다시 말해서 백성들에게 글을 쓸 수 있다는 적극적인 개념의 자유를 준 것이다. 이로 인해 백성들은 법조문과 관련된 억울함을 없애고, 백성들의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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