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GM의 대우자동차 M&A 성공사례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대우차는 50년대 미군 차량을 개조해 팔던 신진자동차가 모태로, ->72년 도요타의 철수 이후 50%의 지분을 인수한 GM과 손잡고 GM코리아로 사명을 바꿨으나 GM의 모델 시보레1700을 들여다 조립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오일쇼크로 현대의 포니와 기아의 브리사를 당하지 못한 채 76년 산업은행관리체제로 넘어가자 다시 간판을 새한으로 바꿨고-> 대우가 78년 산은의 보유지분을 인수한 뒤 82년 경영권을 장악하면서 대우차가 탄생했다.-> 고유모델 개발 소홀->대우차는 GM의 월드카 오펠 카데트 모델인 르망으로 기회를 엿봤으나 사실상 실패로 돌아가면서-> 91년 경영위기를 맞았고, 92년에는 GM과 결별하고-> 품질관리와 무이자 할부판매로 내수 점유율을 유지하며 이른바 세계경영이란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대우와 대우중공업의 힘을 빌려 동구권과 아시아를 중심으로 완성차 조립공장을 짓고 라노스, 누비라, 레간자 등 3개 모델을 동시에 개발했다.-> 91년 가동에 들어간 창원 국민차공장과 96년 만든 군산공장은 국내 최고는 물론 일본업체에 근접한 생산성을 올렸고 특히 창원공장은 98년 1인당 생산대수 165대로세계 1위의 생산성을 가진 공장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 과도한 무이자할부 판매와 차입경영으로 허점이 생긴 가운데 97년 12월 쌍용차를 인수하는 모험을 또다시 감행했다. ->규모의 경제에 대한 김우중 회장의 맹신과 도박에 가까웠던 해외투자는 결국 99년 8월 대우 계열사까지 끌어들여 동반 워크아웃을 맞이하게 됐다.
(2) 대우자동차의 워크아웃에서 부도
대우차는 99년 8월26일 워크아웃 시작 이후 2002년 11월8일 최종부도를 내기까지 어려운 하루하루를 보냈다. 내수점유율은 포드가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되는 등 매각 작업이 본격화되면서 2002년 6월 27.5%로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으나 포드의 인수 포기선언으로 연말까지20% 안팎을 오르내리다 2003년 20% 밑으로 떨어졌다.
2. GM과 대우자동차 M&A 과정
‘99.8 대우계열사 워크아웃 결정 후 ’01.5월 GM-채권단 공식협상 돌입
대우자동차의 해외매각에 대한 우려 확산 및 노조를 중심으로 해외매각 반대 운동 격화
대우차의 GM 편입은 R&D기능 위축, 대대적 생산감축 및 대량해고 초래 주장
’01.9월 GM-채권단간 인수양해각서 체결 및 ‘02.10월 GM대우 공식출범
3. GM과 대우자동차 M&A 효과
‘02.10월 출범후 GM 대우는 생산, 수출, 투자, R&D, 노사안정 등 모든 면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루어 국가 경제에 많은 기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