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명의 성공한 CEO
가령 전신국에 전보 배달원으로 취직하자마자 어깨너머로 전신 업무를 익혀 두었다가, 담당자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능숙하게 업무를 대신해 상사에게 인정받고 정식 전신기사가 된 사례가 대표적이었다. 1853년에 카네기는 전신국의 단골손님인 펜실베이니아 철도회사의 피츠버그 지부장 토머스 스콧에게 스카우트되었다.
1856년에는 우연한 기회에 철도 침대차 사업에 투자해 처음으로 거금을 벌어들였다. 217달러 50센트를 대출받아 투자한 결과, 불과 2년 만에 매년 5천 달러의 배당금이 나올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두었던 것이었다. 1859년에 카네기는 스콧의 뒤를 이어 펜실베이니아 철도회사의 피츠버그 지부장으로 승진했다. 1861년에 남북전쟁이 발발하자 카네기는 워싱턴으로 향했고, 자기 분야에서의 경험을 살려 철도와 전신의 복구 업무를 담당했다. 이후 카네기는 미국 석유산업 초기의 산유지로 유명한 ‘타이터스빌’의 석유회사에 거금을 투자해서 막대한 이득을 얻었고, 이는 훗날 그가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하는 밑천이 되었다.
1863년에 카네기는 키스톤 교량 회사를 공동 설립함으로써 철강 분야에 처음으로 뛰어들었다. 30세엔 자기 사업에 전념하기 위해 12년간 몸담았던 펜실베이니아 철도 회사에서 퇴직했다. 이후 유니온 제철소, 루시 용광로 회사를 연이어 설립하며 사업의 폭을 넓혔다. 영국의 헨리 베세머 제강소를 방문한 카네기는 그곳에서 강철의 놀라운 잠재력을 목격한다.
카네기가 훗날 ‘강철왕’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 까닭은 미국에서 강철의 대량 제조 및 유통을 실현시켰기 때문이다. 남북전쟁 이전까지만 해도 미국은 대부분의 철을 외국에서 수입했지만, 이후로는 수요가 급증해서 철강 사업의 미래가 밝았다. 카네기는 1875년에 미국 최초의 강철 공장인 에드거 톰슨 강철 회사를 설립했고, 이 과감한 투자는 곧바로 큰 성공으로 이어졌다. 이후 카네기는 안정적인 원료 공급과 생산 및 유통을 위해 관련 업체를 연이어 합병하거나 매입했다. 가령 프릭 코크스 회사 합병, 홈스테드 제강소 매입 등이 대표적인 사례였다.
은퇴 후 카네기는 여러 분야의 자선사업을 관장할 기구를 조직해서, 1902년에 카네기 협회, 1905년에 카네기 교육진흥재단, 1910년에 카네기 국제평화재단, 1911년에 카네기 재단을 설립했다.
2. 래리 페이지(Larry Page, 1973 ~ )
구글의 창업자이자 現 CEO 래리 페이지를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바로 세르게이 브린(Sergey Brin, 1973 ~ )이다. 1995년, 스탠퍼드 대학 박사과정 중 알게 된 두 사람은 인터넷 검색에 관심을 기울이며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던 참이었다. 둘은 ‘알타비스타’ 검색을 하던 중 학술 논문 이용 기법을 인터넷 검색에 결합시키려는 시도를 하게 되었고, 새로운 프로그램의 이름을 ‘페이지 랭크’라고 붙였다. 그들은 전혀 의도하지 않았지만 인터넷 검색의 새로운 방식을 창안하였다. 처음에는 그것을 박사 학위 논문으로 쓰려고 했지만 곧 새로운 검색 엔진을 개발하였음을 깨닫고, 교내 프로젝트로 활용하기에 이르렀다. 10의 100제곱이라는 뜻을 지닌 ‘구골(Googol)’을 사용하려고 했는데 철자를 잘못 쓰는 바람에 오늘날 우리에게 잘 알려진 ‘구글(Google)’이 되었다.
브린과 페이지는 특허를 신청하고, 100만 달러에 기술을 팔려고 ‘알타비스타’에 거래를 제안했지만 거절을 당했다. 비슷한 조건으로 ‘야후’에도 거래를 제안했지만 거절을 당하고, 이는 결과적으로 그들에게 더 큰 행운을 가져다 주었다.
두 사람은 휴학을 하고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들었다. 굵직한 벤처캐피탈 회사로부터 3,000만 달러에 가까운 금액을 지원받고서 광고 없는 검색 엔진을 만들었습니다. 지금도 비슷하지만 검색 엔진에 광고가 없는 것은 수익을 창출하기 어렵고 그만큼 신선한 시도였다. 여러 담당자들의 항의를 받았지만 ‘클라이너 퍼킨스’와 같은 벤처캐피탈은 그들의 도전에 과감한 투자를 하였다. 이후 기존의 기술들을 조합해보는 시도로 2000년 초반 검색 결과의 목록 형태로서 광고를 제공하는 방식을 도입하게 되었다. 이 방식은 광고주들에게 큰 호응을 얻게 되었고, 마침내 막대한 거금을 벌어들이게 되었다.
하지만 회사 내 관리자들과의 마찰로 ‘에릭 슈미트’의 10년 섭정이 이루어지게 되었고, 그가 구글의 기반을 닦을 동안 페이지는 일선에서 물러나 새로운 연구개발에 몰두하고 있었다. 2012년 4월, 구글 CEO로 돌아온 페이지는 짧은 기간에 구글+런칭, 구글 서비스 통합, 구글 글라스 공개, 안드로이드 에코시스템 확장 등을 추진했고, 룬 프로젝트(Loon Project)를 실시하고 있다. 룬 프로젝트란 전세계 인구의 2/3가 인터넷에 접속할 수 없는 환경에 착안해 아프리카와 같은 드넓은 지역에서 발사하기까지 오랜 시간 지체되는 위성대신 높은 지역에 접속지접을 만드는 ‘룬(Loon)’을 띄우는 것이다. 최종 목표는 지구 전체를 둘러싸는 풍선으로 세계적인 망을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3. 제임스 맥너니 (James McNerney, 194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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