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페스탈로찌의 기본이념
1. 자연관
2. 인간관
3. 종교관
Ⅲ. 페스탈로찌의 교육사상
1. 기본교육사상
2. 안방교육의 원리
3. 생활노작교육
4. 합자연교육
Ⅳ. 결론
페스탈로찌(Johann Heinrich Pestalozzi, 1746∼1827)는 1746년 취리히에서 요한 밥티스트와 봐덴스빌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러나 외과의사였던 아버지가 5살 때 세상을 떠나게 되어 어머니와 충실한 가정부의 보살핌 속에서 성장하였다. 그의 어머니는 매우 신앙심이 깊고 의지가 강해서 의사이던 친정 오빠의 경제적 원조도 거절한 채, 자력으로 자녀들의 교육에 열중하며 살아갔다. 16세 때 취리히 대학에 들어가 목사가 되려고 신학을 공부하였으나 조국 스위스의 정치적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법률학 전공으로 옮겨 공부하였다. 그는 농촌 계몽사업을 하기 위하여 신학공부를 포기하고 농장을 경영하게 되었으나 농장의 경영은 몇 해 안 가서 파탄을 맞게 되었다. 이때 비로소 농민에 대한 측은한 사랑이 관념이 아니고 현실로 느끼게 되어 가난한 처지에 있는 빈곤한 농민들의 자녀를 위한 교육사업을 시작하였다. 페스탈로찌는 문필가와 사상가로서의 역량을 인정받은 후 부르크도르프, 뮌헨부흐제, 클란디, 이페르탠에서 새로운 초등학교를 세워 이 학교들을 국민교육의 전당으로 만들었다. 페스탈로치가 마지막으로 봉사한 이페르탠 빈민학교는 자신의 저작을 발간한 수입으로 설립되었으나 결국 2년밖에 지탱할 수 없었다. 1825년 슬픔에 잠긴 채 소수의 학생만을 데리고 노이호프로 돌아갔으나 결국에는 자신의 교육사상이 승리하리라는 것을 확신하며 자서전과 회고록을 겸한 {백조의 노래(Schwanengesang)}(1826)를 집필했다. 이 저서는 "인생은 스스로 가르친다"는 격언으로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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