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
중국 3세기에 위(魏)·오(吳)·촉(蜀) 등 세 나라가 정립(鼎立)했던 약 40년간의 시기
각 지방의 독립적인 세력 가운데 산동(山東)에 있던 조조(曹操)는 189년에 군사를 일으켜 河北통일에 성공했으며, 208년 남하를 시도.
유비(劉備)는, 제갈량(諸葛亮)을 얻고, 오(吳)의 손권(孫權)과 동맹하여 조조의 남하를 저지.
유비는 211년 익주를 공략하여 이를 얻고 손권은 형주를 수중에 넣었고 양쯔강 이남을 영토로 확보.
삼국시대
220년 11월 조조의 아들 조비(曹丕)는 낙양을 도읍으로 하여 위나라(魏國)를 개국함.
한중왕(漢中王)을 호칭하던 유비는 이듬해 221년 4월 한의 정통을 계승한다고 칭하여 성도(成都)에 도읍하고, 한제(漢帝) 또는 촉한제(蜀漢帝)라 칭함.
손권은 처음에 위의 오왕(吳王)으로 봉해져 있었으나, 222년에는 스스로 연호(年號)를 세우고, 또한 229년 건업(建業;南京)에서 오제(吳帝)의 제위에 올라, 3국의 분립이 확정됨.
삼국시대
유비는 위나라의 땅을 수복하지 못한 채 죽고, 이에 제갈량은 북방의 수복을 위해 군사를 이끌고 몇차례북벌에 나서나 실패.
제갈량은 234년 오장원 전투 중 과로로 병사.
魏에서는 사마 의(司馬懿)가 중심이 되어 이를 격퇴하였기 때문에 마침내 사마씨가 실권을 장악함.
그의 아들 사마 소(司馬昭)는 263년 촉한을 멸망시킨 공적으로 진왕(晉王)에 봉해짐. 무제는 280년 오나라를 멸망시켜 재차 중국을 통일함.
작가소개
제갈량 (諸葛亮, 181~234) 이름은 량(亮) 시호는 충무(忠武) 또는 무후(武侯) 별칭은 와룡선생.
중국 삼국시대 촉한(蜀漢:220∼263)의 정치가·전략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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